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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0 23:09:38

엘 파실 독립정부

엘 파실 혁명정부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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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및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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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파실 독립정부
エル・ファシル独立政府 | El Facil Independent Gover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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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dd,#222> 국가 개괄
국명 엘 파실 독립정부
국가 체제 민주공화제[1]
국가 원수 의장
수도성 엘 파실 성계
행성 엘 파실[2]

알테나 성계
이제르론 요새[3]
국가 정보
인구 300만[4]
공용어 동맹 표준어[5]
군사 엘 파실 혁명군
기년법 우주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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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dd,#222> 건국자 프란체스크 롬스키
국가
존속기간
서기(A.D.): 3599. 8. 13.~ 3600. 6. 06.
우주력(SE): 799. 8. 13. ~ 800. 6. 06.
신제국력(NRC): 001. 8. 13.~ 002. 6. 06.
주요 사건[6] · SE 799. 8. 13. 독립선언
· SE 799. 12. 9. 양 비정규함대 합류
· SE 800. 1. 12 ~ 14. 제10차 이제르론 공방전
· SE 800 4. 29. ~ 5.17. 회랑 전투
· SE 800. 6. 1. 양 웬리 암살사건
· SE 800. 6. 6. 정부 해산
건국 이전 자유행성동맹
멸망 이후 이제르론 공화정부
은하제국 로엔그람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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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정부 수립2.2. 양 웬리의 합류2.3. 혁명전쟁2.4. 해산
3. 국가 개괄
3.1. 정치3.2. 외교3.3. 영토 및 인구3.4. 군사
4.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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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은하영웅전설에 등장하는 세력. 수도성은 엘 파실. 엘 파실 혁명정부, 엘 파실 독립혁명정부라고도 한다.

2. 역사

2.1. 정부 수립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에서 패배한 자유행성동맹 은하제국의 의지에 따라 존속하는 속국으로 전락하였다. 동맹정부는 바라트 화약 제6조에 의거하여 동맹헌장 7조에 명기한 "언론과 결사의 자유"를 유기한 정지하고, 반평화활동방지법을 제정하여 동맹시민의 반제국 운동을 단속하였다. 분노한 시민들은 "민주주의의 자기부정이다"라고 정부에 항의하였고, 지방 성계에서는 자유행성동맹을 이탈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자유행성동맹의 변방 엘 파실 자치정부 주석 프란체스크 롬스키는 이런 분노한 동맹 시민 중 한 사람으로 전제주의의 굴복해 민주주의를 내버린 자유행성동맹 대신 민주공화주의 정신을 진정으로 계승한 진짜 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하고 지지자들을 모아 우주력 799년 8월 13일 동맹 탈퇴와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자유행성동맹 말기의 꼬라지에 분노해서 롬스키를 중심으로 엘 파실의 주요인사들이 독립을 선언한 것에 불과했기에 신생 '엘 파실 독립정부'는 이렇다할 힘도 영향력도 없었다.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 백작영애는 우주에 있는 정치세력들을 정리하면서 엘 파실 독립정부에 대해 "젖먹이처럼 무력하다"는 박한 평가를 내렸다. 기실 엘 파실 자체도 변방중의 변방인데다가 엘 파실을 시작으로 잇달아 동맹탈퇴 행렬이 잇달은 것도 아니니 말만 독립했다 뿐이지 레벨로가 제정신만 차리고 있었다면 얼마 못가 동맹군에게 소리소문없이 짓밟혔을지도 모를 일.

2.2. 양 웬리의 합류

하지만 독립정부가 수립되기 약 3주 전에 제국 고등판무관 헬무트 렌넨캄프 상급대장이 폭주하여 양 웬리 퇴역원수가 렌넨캄프와 동맹정부에게 살해당할 뻔 했고, 동맹에서 뒷처리를 어설프게 하는 바람에 렌넨캄프가 자살해버렸다. 양 웬리 원수는 옛 부하들과 함께 하이네센을 탈출했고, 동맹정부는 위기에 몰렸다.

양 원수가 하이네센을 탈출하여 종적을 감추자 독립정부는 양 원수의 내방을 바라는 성명을 냈다. 이에 동맹정부 의장 조안 레벨로는 독립정부의 행위를 배신으로 규정하는 성명을 내면서 비밀리에 군을 동원하여 우주 어딘가에 숨어있는 양 웬리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양 웬리는 끝내 찾지 못했고, 그 사이 제국이 바라트 화약 파기와 재침공을 선언하면서 동맹정부는 멸망 위기에 몰리게 된다.

사태가 급변하는 동안 양 웬리는 미리 빼돌린 메르카츠의 비밀 함대와 합류하여 '양 비정규함대'를 창설하고 몸을 숨겼다. 더스티 아텐보로 발터 폰 쇤코프는 독립정부 합류를 권유했으나 양은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독립정부와 합류하는 것은 양측 모두에 이득이 되는 매력적인 선택지이지만, 독립정부와 함부로 손잡았다가 위기에 몰린 동맹정부가 제국과 손을 잡고 엘 파실 성계를 침공할 것을 우려했으며 정열에 이끌려 독립을 선언한 독립정부의 행태를 '폭거'라고 비판하는 시선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라인하르트의 재침공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동맹정부가 자신을 불러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에 동맹정부와 완전히 단절하는 것도 시기상조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동맹정부는 마지막까지 웅크리고 있다가 제국의 선전포고를 허용했고, 양은 동맹정부로 돌아갈 길이 사라졌다.

상황이 급변하고 자금도 떨어지자 양은 차선책으로 엘 파실에 합류한 뒤 이제르론 요새를 재탈취, 이후 카이저와 협상을 통해 페잔 자치령처럼 엘 파실 성계의 내정자치권을 얻어내 민주주의의 불씨를 지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우주력 799년 12월 9일 정식으로 엘 파실 독립정부에 합류했다. 독립정부는 양 원수의 합류를 환영했으며, 엘 파실의 언론들은 양 원수의 내방을 대서특필했다. 양 원수의 합류를 환영하는 환영식에는 무려 1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참석했는데, 양은 "양 웬리입니다. 반갑습니다."라고 2초 스피치로 끝내서 참석자들을 낙담하게 했다.

양 웬리의 합류는 엘 파실 독립정부에 큰 이익이 되었다. 일단 고명한 양 웬리와 그의 부하들, 그리고 그동안 빼돌린 함대가 합류했고, 여기에 양 원수의 이름을 듣고 수많은 군인 또는 민간인들이 일제히 망명하여 독립정부의 군사력은 제10차 이제르론 공방전 당시 1천 5백 척 수준에서 회랑 전투 직전 2만 8천여척으로 크게 팽창했다. 여기에 동맹 시민이라면 누구도 모르는 자가 없는 양 웬리가 엘 파실에 합류했다는 것은 동맹군 최고 간부가 엘 파실 독립정부야 말로 민주주의를 따르는 정통 정부라고 인정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양 원수의 합류에 꽤나 자신감을 얻었는지 롬스키는 새 정권에 자유행성동맹 정통정부란 이름을 붙이려 들었다(…). 하지만 안좋은 선례가 하나 있었기 때문에 결국 무산되고[7] 그냥 평범한 엘 파실 독립정부로 이름이 정해졌다. 그리고 롬스키가 군사위원장을 맡고 양 웬리가 사령관을 맡은 엘 파실 독립정부 혁명예비군, 통칭 엘 파실 혁명군이 창설됐다. 하지만 이름만 엘 파실 혁명군이지 실상은 양 웬리 함대의 리네이밍 버전이다(…).어쨌든 있어보이지 않나?

2.3. 혁명전쟁

독립정부에 합류한 양 웬리는 계획대로 이제르론 요새 탈취작전에 착수했다. 그런데 독립정부는 제국과 동맹이 엘 파실을 침공하거나 반혁명파가 무장봉기를 일으키는 사태를 우려하여 양 원수의 출격을 반대했다. 양이 메르카츠 제독이 남을 거라고 하자 독립정부는 더더욱 불안해했다. 당시 독립정부는 양 원수의 합류를 환영하면서도 그가 병력을 동원해 권력을 찬탈할 수 있다고 두려워했다. 메르카츠를 의심한 것도 그가 제국에서 온 객장이라는 것도 있지만 양 원수 개인에게 충성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양 웬리는 엘 파실에 남고 메르카츠가 전선에서 탈취작전을 지휘했다.

우주력 800년 1월 진행된 제10차 이제르론 공방전은 혁명군의 승리로 끝났다. 제국군 지휘관 코르넬리우스 루츠 제독은 예상치 못한 궤계에 휘말려 함대의 10%와 요새를 잃고 회랑에서 쫓겨날 수 밖에 없었다. 승리가 전해지자 엘 파실 성계의 모든 행성은 크게 기뻐했으며, 중앙경기장에서 개최된 전승기념식은 1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운집했다. 독립정부 인사들은 시민들에게 승리를 자축하는 연설을 늘어놓았다.

제10차 이제르론 공방전 이후 동맹이 몰락하면서 무수한 망명자들이 독립정부를 찾았다. 우주력 800년 1월 자유행성동맹군이 양 웬리에게 양도한 함정 5,560척이 독립정부에 도착한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구 동맹군 함정 또는 민간선들이 일제히 '해방회랑'으로 향했다. 독립정부는 이들을 받아들여 군사력을 확충했다.

요새가 탈취된 사실이 알려지자 카이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즉각 재탈취를 선언하고 전쟁을 준비했다. 전쟁은 내국안전보장국 하이드리히 랑이 통수본부총장 오스카 폰 로이엔탈 원수를 반역 혐의로 탄핵하면서 잠시 미루어졌지만 우주력 800년 4월에 접어들어 라인하르트는 전쟁을 선언했고 아달베르트 폰 파렌하이트 상급대장과 프리츠 요제프 비텐펠트 상급대장의 함대가 선봉으로 이제르론 회랑을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갈 때 독립정부 인사들은 여전히 양 원수가 제국을 타도 한다는 꿈에 젖어있었다. 롬스키 의장은 제국의 침공이 가시화되자 허둥지둥대며 양 웬리에게 제국이 침공할 가능성을 논의했는데 양은 카이저의 침공에 벌벌 떨면서 지금까지 잘도 독립정부니 재혁명이니 떠들어댈 수 있었다고 속으로 짜증을 냈다. 여기에 한 독립정부 위원은 양 원수를 팔아넘기는 대가로 엘 파실 성계의 자치를 보장받자고 제안했지만 나름 올곧은 롬스키는 레벨로를 팔아넘겼다가 총살당한 록웰 일당의 일을 들어 반대했다.

전쟁이 임박하자 독립정부 수뇌부들은 엘 파실 성계에 무저항 선언을 발표하고 자신들은 이제르론 회랑으로 피난했다. 라인하르트는 이를 보고 그들의 소심함에 코웃음을 치며 양 웬리와의 전투에 집중했다.

2.4. 해산

우주력 800년 4월 29일, 제국군 선봉이 이제르론 회랑을 침공하면서 회랑 전투가 시작되었다. 19일간 이어진 전투에서 엘 파실 혁명군은 전력비 10:1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아달베르트 폰 파렌하이트 상급대장과 칼 로베르트 슈타인메츠 상급대장을 사살하고, 제국군 함대 몇 개를 무너뜨렸으며 전투 막판 제국군의 파상공세도 모두 막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혁명군 또한 많은 병력과 물자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함대운용을 담당하던 에드윈 피셔 중장이 슈바르츠 란첸라이터의 공격에 전사하면서 제국군이 추가 공격을 가한다면 꼼짝없이 회랑 방어를 포기하고 이제르론 요새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때마침 라인하르트가 앓고 있던 열병이 재발하여 더이상 제국 전군을 지휘할 수 없었고, 라인하르트의 심경 변화로 은하제국을 태도를 바꿔 양 웬리에게 회담을 제안하였다. 양 웬리는 이를 수락하였고, 양 웬리와 롬스키를 비롯한 독립정부의 문무관으로 구성된 사절단이 이제르론을 떠나 회담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민주주의 세력과 제국의 화평을 깨트리려는 지구교의 모략에 의해 사절단이 타고 있던 레다 II호가 제국군 장비를 빼돌린 지구교도에게 습격당해 양 웬리와 롬스키가 암살당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혁명의 정치적 지도자와 군사적 지도자를 잃은 엘 파실 독립정부는 생명력을 잃고 해산의 길을 걸었다. 혁명군 장병들은 양 웬리 없는 양 함대는 자멸할 거라며 이제르론 요새를 빠져나왔고, 독립정부 위원들은 6월 5일 정부 해산을 결의하고 율리안 민츠에게 통보했다. 위원들은 "반제국 혁명운동은 지도자를 잃었으며, 더이상의 대결과 항쟁에는 의미가 없다", "이제는 정치체제에 집착하지 않고 전 인류의 평화와 통일에 공헌해야 할 때"라며 정부를 해산한 이유를 설명했지만 실상은 자기들끼리는 이탈할 용기도 없다가 무라이가 이탈한다니까 따라가는 것뿐이었다. 위원들은 우리는 그저 롬스키가 조성한 분위기에 휘말려 승산 없는 혁명운동에 뛰어들었을 뿐"이라며 죽은 롬스키 의사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위원들은 율리안에게 "죽은 사람의 이상에 고집해 순교자 행세를 하지 말라"고 말했고 율리안은 불쾌감을 참으며 작별인사를 건네고 퇴실했다.

6월 6일 혁명군은 율리안 민츠의 이름으로 전 우주에 양 웬리의 죽음을 공표하고 장례식을 치렀다. 그리고 엘 파실 독립정부도 같은 날 정식으로 해산을 선언하여 10개월에 불과한 짧은 역사를 마쳤다. 독립정부의 소멸과 구심점이었던 양 웬리의 사망, 차세대 군사 지도자인 율리안 민츠의 리더십에 대한 의문, 향후 이제르론의 불투명한 미래 등의 사유로 1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이제르론 요새를 떠났으며, 남은 이들은 두 달 뒤 이제르론 공화정부를 수립했다.

요새를 떠난 사람은 율리안 민츠의 허가를 받아 물자를 일부 챙기고[8] 제국군의 협력 덕분에[9] 하이네센까지 무사히 도착하여 노이에란트 총독부의 처분을 기다렸다. 제국에 투항한 이탈자들은 본래라면 이들은 카이저에게 총을 겨눈 반역자로서 제국의 처벌을 받아야겠지만, 100만 명이라는 막대한 숫자와 구 동맹 시민들의 감정을 고려하여 제국 노이에란트 총독 오스카 폰 로이엔탈 원수는 이탈자들이 탄 수송선이 하이네센 제2군용우주항에 착륙하는 것을 허가하며 민간인 및 비전투원은 풀어주면서 우주력 800년 안에 제국신민 공민권을 부여하고, 장병 및 부사관은 성명을 등록하고 귀가시켰다. 위관급 이상 장교와 독립정부의 공직에 봉사한 자는 이름, 주소, 지문을 등록하고 제국 정부의 공식 조치가 있기 전까지 한 달에 한 번 총독부에 출석하여 등록 카드를 갱신하도록 했다. 그리고 참모장을 역임한 무라이는 특별히 감시가 붙었다.

3. 국가 개괄

3.1. 정치

정치체제는 민주공화정. 본래 제국에 굴종하여 민주주의를 저버린 동맹정부에 반발해서 독립한 세력이니 민주공화정을 채택한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정치구조에 대해서는 언급이 그다지 없기 때문에 알기 힘들다. 그나마 알 수 있는 정보로는 정부수반 및 국가원수를 주석 또는 의장으로 호칭한다는 것과 동맹의 국방위원장에 해당하는 군사위원장에 국가원수가 겸임했다는 것 정도.[10] 의회와 사법부의 존재 및 그 구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애당초 급조한 임시정부 수준이니 뭐... 그래도 굳이 추정하면 아마도 동맹 시절 의회와 법원이 임시로 독립정부의 의회와 법원을 맡았을 가능성이 있긴 하다.

민간인 출신 국가원수가 군사위원장을 겸직하여 군을 통제하는 문민통제는 건재했지만, 사실상 롬스키가 양을 통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한국으로 치면 충무공 이순신 전쟁영웅과 시골 군수, 군의회 의원들이 연립정권을 세운 셈인데, 능력과 인망을 겸비한 양과 엘 파실 내에서만 유명인사였던 롬스키 중 누구한테 권력이 쏠릴 지는 자명한 일이었다. 실제로 양은 독립정부 따위는 단번에 날려버릴 수 있는 무력을 가지고 있었으며[11] 독립정부 측에서도 양이 쿠데타를 일으킬 가능성을 염려했지만, 양은 민주주의자로써 문민통제를 중요시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상관인 롬스키를 존중하고 그의 의견에 따랐다.

3.2. 외교

엘 파실 독립정부는 자유행성동맹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으나 동맹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조안 레벨로는 엘 파실 독립정부의 행동에 대해 "동맹 전체의 이익을 해치고 공화정의 존립을 위협하는 중대한 배신"이라고 규정하면서, "독선을 버리고 국부 알레 하이네센의 이상 아래 돌아올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양 웬리 원수 모살미수사건 이후 동맹정부 및 군부는 혼란에 빠져 있었으므로 레벨로의 비난 성명 외에는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오히려 동맹군 우주함대 사령장관 대리 춘우 지엔 대장은 5,560척의 함정을 양 웬리에게 양도하면서, 독립정부는 군사 전력을 확충했다.

은하제국 역시 겨울장미원의 칙령을 통해 스스로를 은하계 유일 통치체제라 선언했으며, 엘 파실 독립정부를 대등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았다. 아니, 당시 제국 수뇌부는 오로지 양 웬리 생각 뿐이었고 엘 파실 독립정부인가 뭔가 하는 듣보잡 세력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다. 당시 제국군 우주함대 사령장관 볼프강 미터마이어 원수는 독립정부에 대해 '엘 파실 독립정부 어쩌고는 양 웬리라는 닭의 머리를 장식하기 위한 볏에 불과'하다고 표현했으며, 제국군 공식기록에도 엘 파실 독립정부보다 '양 웬리 군'이라고 호칭했다.[12]

이 때문에 제10차 이제르론 공방전 이후 제국군은 엘 파실을 지나면서도 그냥 무시했고 회랑 전투 이후 제국은 엘 파실 독립정부가 아닌 양 웬리하고만 협상하려다가 엘 파실 독립정부측의 요구에 결국 엘 파실 독립정부도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게 되었으며 그마저도 카이저 라인하르트는 엘 파실의 이름은 쏙 빼고 양 웬리의 이름만 언급했고, 양 웬리 암살사건에서 롬스키가 죽은 것도 양 웬리 때문에 협상에서의 엘 파실 측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롬스키가 제국군을 가장한 지구교도들이 자신들과 접촉하자 협상장의 교섭 권한이 양 웬리가 아닌 자신들에게 있음을 확실히 하고자 접촉해서 일어난 일이었다.

이런 처지는 양 웬리 암살사건 이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제국군은 양 웬리의 죽음에 대해서는 강대한 적수가 사라졌다며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했고, 나이트하르트 뮐러 상급대장을 단장으로 한 조문단을 파견하여 조의를 표했지만, 엘 파실 독립정부와 롬스키 따위는 "논평할 가치도 없는 것"으로 치부하여 적으로도 여기지 않았다.

페잔 자치령은 이미 멸망해서 공식적인 외교관계는 없었다. 그러나 양 웬리는 자주독립을 열망하는 페잔 독립상인들과 접촉하여 우군으로 끌어들이고 자금을 조달하려고 했다. 그러나 율리안 민츠 지구교 총본산에서 가져온 지구교의 DB에서 페잔 자치령부가 지구교단의 하수인이었다는 사실이 판명되면서 페잔을 끌어들이는 방안은 재검토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보리스 코네프가 독립상인들을 조직화하고 실종된 아드리안 루빈스키의 정보를 알아보기 위해 페잔으로 파견되었지만 결실을 맺기도 전에 독립정부가 무너지면서 끝까지 관계를 맺지는 못했다.

엘 파실 독립정부는 지구교단이 제국군에게 토벌당해 붕괴된 줄 알았기 때문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지만, 지구교는 자신들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독립정부와 제국이 끝까지 싸워줘야 했기 때문에 회랑 전투 직후 제국과 독립정부가 화의를 맺으려 하자 제국군으로 위장하여 독립정부 수뇌부를 암살하였다. 하지만 이 일로 지구교는 혁명군 간부들에게 찍혔고 1년 뒤 벨제데 임시 황궁 습격사건에서 드 빌리에 가짜 총대주교 이제르론 혁명군 간부들에게 살해당하면서 악연이 끝났다.

3.3. 영토 및 인구

초기 영토는 이제르론 회랑의 동맹측 출구에 위치한 엘 파실 항성계였으며, 이후 양 웬리 함대가 합류한 뒤 이제르론 요새를 탈환하므로써 이제르론 회랑 전역을 손에 넣게 된다. 그러나 제국군이 이제르론 회랑으로 접근하자 엘 파실 성계는 무방비선언을 남기고 사실상 포기함으로써 영토는 이제르론 요새로 국한된다.

인구는 본래 엘 파실 성계에 있던 300만 명으로 출발했으며, 동맹 멸망 이후 군인 및 민간인의 망명이 이어지면서 550만을 넘어섰다. 그러나 회랑 전투에서 수많은 장병들이 전사하면서 인구가 줄었으며, 양 웬리 암살사건 이후 구심점이 무너지면서 약 100만 명이 독립정부를 떠났다.

3.4.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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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평가

양 웬리가 없었다면 진작에 사라졌을 세력이다. 양 웬리가 합류하기 전까지는 치기어린 몽상가들의 아무 힘없는 혁명정부에 불과했고,[13] 양이 합류한 이후로는 양 웬리가 데려온 직속부하들로 구성된 엘 파실 혁명군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양 웬리가 야심가였다면 이름만 빌려주는 허수아비 역만 하다가 쓸려나갔을 것이다. 적국이었던 은하제국 수뇌부도 양 웬리만 생각했지, 무명의 혁명정부 따윈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죽하면 양 웬리 암살사건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벌어졌을 라인하르트와의 화평 자리도 원래는 그냥 라인하르트와 양 웬리가 해먹을 자리인데 롬스키가 자기네들의 지분도 요구해서 끼어들 수 있게 되었을 정도.

아이러니하게도 롬스키는 이 정부를 자유행성동맹 정통정부로 부르려고 했는데 실제로 존재했던 정통정부(?)인 은하제국 정통정부와 엘 파실 독립정부는 닮았다.[14] 어떤 면에서 보면 자유행성동맹 정통정부라는 이름이 붙을 뻔한 건 작외적으로 은하제국 정통정부와 다를 바 없던 모습을 풍자하기 위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고 지도자로서 전면에 나서기 싫어했던 양 웬리에게는 여러모로 좋은 동맹 상대였다.

위의 내용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바라트 성계 자치령의 뿌리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엘 파실 독립정부-이제르론 공화정부-바라트 성계 자치령은 서로 연관이 있는 편이다. 엘 파실 독립정부는 도중에 이제르론 요새로 정부를 옮겼고 이제르론 공화정부가 하이네센으로 옮겨가면서 바라트 성계 자치령으로 바뀐 것이기 때문이다. 이걸 보면 양 웬리는 바라트 성계 자치령의 국부에 버금가는 셈이다.

[1] 어쩔 수 없기는 했지만 정부, 군 모두 군인 출신으로 이루어져 있어 명목상 민주공화제를 내세웠지 실질적으로는 군사독재로 흘러간 이후의 이제르론 공화정부와는 달리 정부 인사들은 확실히 민간 출신이었기에 실질적으로도 민주공화제로 운영되었다. 다만 최고평의회 같은 행정부나 의회 같은 입법부도 언급되지 않는다. [2] SE 799. 8. 13. ~ 800. 4. [3] SE 800. 4. ~ 800. 6. 6. [4] 이 인구는 엘 파실 본성의 인구만이고 양 웬리 함대 구성원까지 합치면 550만은 된다. [5] 사실상 미래 영어 [6] 독립정부 연호인 우주력 (SE)으로 표기함. [7] 아텐보로가 "정통정부란 이름이 어째 불길하군요. 은하제국 정통정부라는 나쁜 사례가 있었잖습니까?" 라고 하자 롬스키도 확실히 불길하다고 생각했다. [8] 쇤코프가 "도적 손에 금화 자루를 쥐어줄 필요는 없다"고 반대했지만 율리안은 어차피 필요한 양보다 많이 쌓아둘 수는 없다고 물자 반출을 허가했다. 그리고 쇤코프는 율리안에게 "어수룩한 놈"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9] 율리안이 조문단 자격으로 요새를 방문한 나이트하르트 뮐러에게 저들이 하이네센에 도착할 때까지 제국군이 항로를 확보해 달라고 요구했고, 뮐러가 수락했다. [10] 사실 동맹의 이념을 감안하면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동맹은 독재를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부의장을 국무위원장이 겸직하는 것 이외의 겸직을 금지했다. 다만 엘 파실 독립정부의 사정을 보면 이해는 가는데 독립정부 인사 중에서 롬스키 말고 헌신적인 인물도 비중이나 무게감 있는 인물도 없고 정부 인사들 중에서 그나마 롬스키가 제일 양을 신뢰하는 인물이라는걸 감안하면 롬스키가 겸직하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 [11] 엘 파실은 엘 파실 전투 당시에도 고작 1천 척 남짓의 경비함대만 주둔했을 뿐더러 이마저도 제국과 접경해 있다는 특수성이 붙어서일 수 있다. 그런데 동맹 말엽은 군사력이 바닥으로 추락했기에 엘 파실에는 무력이 거의 전무했을 가능성이 높다. 정말 엘 파실 전투 시기의 병력 수준이 남아있다 쳐도 양 웬리 함대 병력의 5% 미만인데 그마저도 없다는 것은 그냥 무력이 없다는 거다. 물론 지상군 정도는 있을 수 있겠지만 제대로 된 함대전력 없이 지상군만으로는 행성 샴풀 해방전처럼 일방적인 전투가 될 뿐이다. [12] 실제로도 양 웬리 함대와는 달리 엘 파실 독립정부는 롬스키 사후 바로 무너졌으니 그다지 틀린 평가도 아니다. [13] 다른 이들도 아니고, 아군인 양 웬리 함대측의 평가다. [14] 실질적인 국가원수와 군 사령관 정도가 이념에 진심이라는 점, 실질적인 국가원수가 죽자 바로 무너졌다는 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