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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레타이로스 | 에우메네스 1세 | 아탈로스 1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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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가몬 왕국 2대 군주 Εὐμένης Αʹ | 에우메네스 1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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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 | 한국어 | 에우메네스 1세 |
그리스어 | Εὐμένης Αʹ | |
영어 | Eumenes I | |
존호 | 바실레프스 | |
생몰 년도 | 미상 ~ 기원전 241년 | |
재위 기간 | 기원전 263년 ~ 기원전 24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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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페르가몬 왕국 2대 군주. 셀레우코스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하고 셀레우코스군의 침략을 막아냈다.2. 생애
아탈로스의 아들 에우메네스와 포세이도니오스의 딸 사티라의 아들이다. 기원전 263년 페르가몬 왕국 초대 군주 필레타이로스가 사망했다. 필레타이로스는 환관이라서 아들이 없었기에, 동생의 아들이자 자신의 조카인 그를 양자로 들여서 페르가몬을 맡겼다. 처음에는 셀레우코스 제국의 사트라프를 맡았지만, 셀레우코스 제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던 프톨레마이오스 2세가 부추기자 기원전 262년 셀레우코스 왕조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독립을 선언했다.기원전 261년, 안티오코스 1세는 군대를 이끌고 페르가몬으로 쳐들어갔다. 그러나 그해 6월 2일 사르데스 인근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페르가몬군에게 패배했고, 전투 도중 입은 부상이 악화되면서 곧 사망했다. 그 후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함대를 파견해 소아시아 해안 도시들을 공략하고 페르가몬을 지원했다. 이리하여 독립을 확고히 한 에우메네스는 주화에 셀레우코스의 형상을 빼버리고 초대 군주 필레타이로스를 기념하는 주화를 주조했다.
한편, 켈트족이 발칸 반도를 넘어 소아시아 일대로 쳐들어가 파괴와 약탈을 자행하다가 갈라티아에 자리를 잡았다. 에우메네스는 이들이 페르가몬을 공격하기 전에 미리 공물을 바쳤고, 덕분에 켈트족의 침략을 저지할 수 있었다. 얼마 후 용병들이 에우메네스의 가까운 친척의 지도하에 반란을 일으켜 몇 달간 항전하자,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요구 사항을 들어줬다. 이후 군인들의 복무 조건이 명확하기 명시된 협정이 체결되었다. 그는 헬레니즘 군주들을 본받아 '에우메니아'라는 축제를 조직하여 시민들에게 막대한 보너스를 하사했고, 철학에 깊은 관심을 보여 아테네 철학자 아르케실라오스를 자신의 궁정으로 초대해 철학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에게는 필레테르라는 아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테스피아 시의 비문에는 "에우메네스의 아들 필레테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러나 아버지보다 일찍 죽은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241년 사망했으며, 사촌 아탈로스 1세가 뒤를 이어 페르가몬의 군주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