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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7 12:32:35

야시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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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야시오시 로고.gif
[ruby(八, ruby=や)][ruby(潮, ruby=しお)][ruby(市, ruby=し)]
야시오시 / Yashio City
{{{#!wiki style="margin: -10px -10px" 파일:야시오시기.jpg 파일:야시오시 시장.gif
시기(市旗) 문장(紋章) }}}
기본 정보
국가 일본
지방 간토
도도부현 사이타마현
면적 18.02km²
인구 93,348명[1]
시장(市長) 오야마 시노부(大山忍;
[[무소속(정치)|
무소속
]])
시의회 (21석)
의장(議長) 오카베 가즈마사(岡部一正;
[[공명당|
공명
]])
회파 헤이세이 클럽 (9석 / 43%)
공명당 (5석 / 24%)
일본 공산당 (3석 / 14%)
야시오 유신회 (1석 / 5%)
레이와회(令和の会) (1석 / 5%)
시민과 시정을 잇는 모임(市民と市政をつなぐ会) (1석 / 5%)
목소리는 힘의 모임(声は力の会) (1석 / 5%)
상징
시화 치자꽃(クチナシ)
시목 은행나무(イチョウ)
시조 백할미새(ハクセキレイ)
홈페이지

1. 개요2. 역사3. 치안4. 기타

[clearfix]

1. 개요

일본 사이타마현 남동부에 위치한 시로 소카시, 미사토시, 도쿄도 아다치구, 카츠시카구와 인접해 있다.

시내를 동쪽으로 나카가와 강(中川), 서쪽으로 아야세 강(綾瀬川), 남쪽으로 가케 강(垳川)이 흐르고 있어 예로부터 하천의 수혜와 재난을 입은 곳이다.

사이타마시, 카와구치시 등에 이어 유수한 공업지대가 형성되어 있으며 창고 등이 많이 존재한다.

수도권 신도시 철도 츠쿠바 익스프레스 야시오역이 유일한 철도역이다.

2. 역사

6000년 전에는 바닷물이 얕았지만, 간토 평야 융기와 하천이 나른 토사가 퇴적하면서 2000년 전까지 육지가 되었고 하천을 따르는 자연 둑이라고 불리운 미세한 고지가 형성되었다.

나카가와 강과 아야세 강이 흘러들어오면서 습지가 펼쳐진 곳에 강물길을 따라 형성된 둑에 사람들이 살았고, 개간된 습지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하치죠 지구에서는 헤이안 시대에 생긴 촌락지가 확인되면서 치바현 이바라키현 등에서 생산된 토기나 장식용 관리 띠 등이 출토되었다.

1905년부터 2년간에 걸쳐 진행된 러일전쟁으로 인해 전비가 확대되어 엄청난 재정을 압박하고 농촌을 피폐하게 만들어 내자, 자치적인 부흥을 도모하기 위해 내무성의 주도로 지방개혁운동이 추진되었다. 1911년에는 시오도메무라(潮止村)가 내무성으로부터 권장을 받으며 납세와 실적, 취학 장려, 신용조합 설치와 근검저축의 의욕 등이 모범적인 사례로 인정받게 되었고, 우수한 마을로 인정받은 야와타무라(八幡村)도 교육 부흥, 납세 개선, 산업 발달 등에 힘을 썼다는 이유로 후지나미 타마타로 당시 촌장에게 현을 대표해 자치 공로상을 표창받기도 했었다.

하치죠, 시오도메, 야와타를 중심으로 생긴 3촌 합병협의회는 좀처럼 합의에 이르지 못했지만, 하치죠무라 오아자 노보리지구[2]를 분리하고, 3촌의 초성을 따 야시오로 결정하면서 1956년에 야시오무라가 출범되었다.

이후 고도경제성장으로 공장이 생기고 인구가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발전을 이어 가 1964년에 정 승격, 1972년에 시로 승격했다.

사이타마시 오른쪽 아래에 있는 소카시, 코시가야시, 미사토시, 야시오시, 요시카와시, 마츠부시마치 등 동남부 5시 1정은 2018년부터 합병을 검토하고 있다. 이미 1965년부터 쓰레기와 하수도 문제를 공동으로 처리하고 있으며, 조정회의를 통해 꾸준히 광역적인 행정 과제를 논의하고 있다. 통합시 인구는 약 94만 명이고, 현재 조정회의의 회장은 코시가야시 시장이다. 미사토시 홈페이지

3. 치안

전직 범죄자나 폭력 조직단이 갈 곳이 없어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면서 폭행이나 살인은 물론이고 길거리에서 하반신을 보여주는 이상한 행동이나 주거 침입, 자전거 절도 등이 많이 발생하면서 치안이 상당히 안 좋은 곳으로도 꼽히고, 심지어는 러브호텔까지 밀집해 있는 것도 문제이다. 또한 야시오시 자체에서 공장, 물류창고, 상사를 업종으로 하는 회사를 유치하기 위해 특혜를 주고 있어서, 공장도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인지 시내에는 아직 경찰서가 없다.[3]

악명 높았던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의 최초 납치장소도 이곳의 근처였다.[4]

파일:사이타마현 야시오시에 있는 옴진리교 시설용 대여 창고.jpg

여기에 야시오역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으로 가면 별로 특별한 것 없이 3층식 대여 창고를 개장한 옴진리교의 후속 단체 알레프 신자들의 시설로 사용되고 있다.[5] 사진으로도 알 수 있겠지만,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삶의 터전을 꾸미기 위해 자기 집처럼 둥지를 틀고 가까스로 보이는 창문은 전부 종이로 가려져 보이지 않았고 출입문 커튼은 있지만 신자 이외에는 방문하지 못하도록 차단했다.

그런데 2010년 11월 24일에는 70대 남성이 옴진리교 신자로 추정된 60대 여성을 쇼핑몰 주차장까지 뒤쫓아 가서 칼로 가슴과 복부를 찔러 출혈성 쇼크로 숨지게 한 혐의로 체포되기까지 했다.[6]

야시오역 앞은 밝고 꽤 번화하지만 조금만 역을 벗어나 주택지로 가면 가로등이 아예 없다. 밤에 방문하면 도쿄 바로 옆 도시가 맞나 싶을정도로 앞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어둠의 도시가 된다. 그도 그럴것이 서술했던 것처럼 공장, 창고지대가 많아서 퇴근후에는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7] 한국으로 치면 예전의 안산시 분위기.

야시오역말고는 딱히 번화가라고 할 곳도 없고, 주택만 주르륵 나있는 가운데 드문드문 음식점이나 편의점 등의 지역 상점이 있는 정도. 관광객이 시의 주택가 밤길을 걸을 일은 없겠지만, 웬만해서는 이곳의 밤길은 피하도록 하자.

이럼에도 시에서 내건 슬로건은 가장 살기좋은 마을이다.

4. 기타

1990년대 버블경제 때부터 생긴 중고차 수출 증가로 파키스탄 사람들이 야시오시로 이주하면서 지역 사회와 집단 주거지가 형성되었으며 야시오에 파키스탄 사람들이 많다는 이유로 야시오와 파키스탄의 스탄을 합쳐 야시오스탄(ヤシオスタン)이라는 조어가 붙여졌다. 150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으며 중고차 전시장[8], 모스크, 파키스탄 요리를 중심으로 한 많은 음식점이 있다.

도쿄도 아다치구와 붙어있다는 점인지, 도쿄 지점, 아다치 지점, 아다치·야시오 지점 등의 이름이 붙은 업체나 점포가 꽤 있다.

세계에서 제일 큰 뽑기방으로 알려진 에브리데이 톳테키야 도쿄본점, 웨어하우스 소카점[9] 등, 관내에 교외형 대형 게임센터도 두곳 존재한다.


[1] 추계인구 2021년 8월 1일 기준. [2] 지금의 소카시 이나리 [3] 시를 위한 독립된 경찰서가 없고 옆 도시의 소카경찰서 관할이다. [4] 실제로는 미사토시였지만, 경계가 불분명할 정도의 거리이다. [5] 원래 공장과 관련된 창고로 쓰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다. [6] 당시 범행 직전 후쿠오카에서 상경한 전 남편은 6년 전 옴진리교에서 벗어나려고 전 아내와 딸들을 데려오기 위해 저지른 행위였다고 밝혔다. 반면 전 아내는 이혼한 원인이 종교가 아니라 전 남편의 가정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다. [7] 그 악명높다는 이웃 도시인 도쿄도 아다치구도 이런 정도는 아니고, 적어도 도시로서 갖추어야할 기본 인프라는 모두 갖추고 있다. 또다른 이웃 도시인 소카시도 이정도는 아니다. [8] 주로 일본인보다 파키스탄인이 더 많이 드나들고 있다. [9] 야시오시와 소카시 경계에 걸쳐있다. 야시오역보다는 소카역쪽에 가까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