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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헤티 왕국 5대 군주 ალექსანდრე | 알렉산드레 2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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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 | 한국어 | 알렉산드레 2세 |
조지아어 | ალექსანდრე | |
라틴어 | Alexander II | |
가족 |
레반(아버지) 티나틴 구리엘리(어머니) 예세(친동생) 기오르기(이복 동생) 니콜로즈(이복 동생) 엘-미르자(이복 동생) 콘스탄틴(이복 동생) 바크탕(이복 동생) 에레클(이복 동생) 바그라트(이복 동생) 다비트(이복 동생) 테이무라즈(이복 동생) 카이호스로프(이복 동생) 엘레네(이복 누이) 네스탄-다레얀(이복 누이) 카타반(이복 누이) 테킬(이복 누이) 티나틴(아내) 에레클(장남) 다비트 1세(차남) 기오르기(삼남) 콘스탄틴 1세(사남) 로톰(오남) 안나(장녀) 네스탄-다레얀(차녀) 티나티나(삼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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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년도 | 1527년 ~ 1605년 3월 12일 | |
재위 기간 |
1574년 ~ 1601년(1차 재위) 1602년 ~ 1605년(2차 재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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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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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헤티 왕국 5대 군주.2. 생애
카헤티 왕국 4대 군주 레반과 구리아 공국의 공작 마미아 1세 구리엘리의 딸 티나틴 구리엘리의 장남이다. 친동생으로 예세가 있었다. 그는 일찍부터 후계자로 지명되었지만, 1529년 아버지가 어머니와 이혼한 뒤 타르쿠의 삼킬인 카말 카라무셀의 딸과 재혼하여 10명의 아들과 네 명의 딸을 낳으면서 입지가 미묘해졌다. 1574년경까지 살아남은 레반의 아들들은 그와 제시, 니콜라오스, 알-미르자, 그리고 카이호스로였다. 그는 아버지가 후처에게서 낳은 자식들을 더욱 우대하는 것에 불만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결국 1574년, 그는 아버지를 암살하고 왕위를 쟁취했다. 이에 이복 형제 알-미르자와 카이호스로가 반란을 일으켰지만, 다우드 칸이 지원해준 덕분에 디샤오르 전투에서 승리하고 왕위 경쟁자들을 축출했다.그 후 사파비 제국과 오스만 제국 사이에서 독립을 유지하고자 외교 전술을 구사했다. 처음에는 사파비 제국의 봉신 노릇을 하다가 찰디란 전투에서 오스만군이 압승을 거두자 오스만 제국의 편에 섰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의 셀림 1세는 그를 신용할 수 없다고 여기고 다케스탄의 이슬람 산악 거주민들을 부추겨서 카헤티 왕국을 습격하게 했다. 이에 루스 차르국의 도움을 받기로 하고, 1585년에서 1587년 사이에 모스크바에 사절을 보내 동맹 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은 차르 표도르 1세의 특사인 베르킨에 의해 1587년 9월 28일에 비준되었다. 그러나 아바스 1세의 지도 아래 혼란을 수습한 사파비 제국은 러시아가 동부 조지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사파비 제국의 압력에 두려워하여 넷째 아들 콘스탄틴 1세를 페르시아 궁정에 인질로 보냈다. 콘스탄틴 1세는 그곳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콘스탄틴 칸"으로 개명했다.
1601년 10월, 이복 동생 기오르기와 차남 다비트 1세가 정변을 일으키면서 폐위된 뒤 수도원에 유폐되었다. 다비트 1세가 뒤이어 왕이 되었으나 1602년 10월 21일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그가 왕위를 되찾았다. 1603년, 아바스 1세가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는 전쟁을 개시해 아르메니아의 예레반을 포위했다. 그러면서 봉신인 카헤티와 카르틀리 왕국에 참여를 요구했다. 그는 몇달 간 망설이다가 1604년 4월에 병사들을 이끌고 페르시아군에 참여했다. 1605년 초, 아바스 1세는 쉬르반을 정복하는 임무를 콘스탄틴 칸 왕자가 지휘하는 카헤티군에게 맡겼다. 이때 다케스탄에서 타르쿠의 샴칼에 대항하는 원정을 계획하고 있던 러시아 차르 보리스 고두노프가 그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그가 아바스 1세와 러시아의 요청 중 어느 쪽을 택할 지 고심하고 있을 때, 아바스 1세는 이 이야기를 전해듣고 카헤티를 자기 편으로 확실히 굳히기 위해 그를 제거하기로 했다. 1605년 3월 12일, 콘스탄틴 칸은 아바스 1세의 은밀한 지시에 따라 아버지와 형제 기오르기 및 고문들을 모조리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