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Alexander L. Kielland Disaster1980년 3월 27일 노르웨이 소속 시추선 알렉산더 L. 킬랜드 호가 북해서 좌초된 사고.
2. 알렉산더 L. 킬랜드
알렉산더 L. 킬랜드는 프랑스 던커르크에서 1969년에 제작을 시작해 1976년에 완공, 이후 노르웨이에 인수된 석유 시추선으로, 이름은 노르웨이의 유명한 저술가 알렉산데르 셸란(Alexander Lange Kielland)에서 따왔다. 반 잠수식인 5개의 컬럼으로 구성된 펜타곤 형태의 구도로 되어있었다. 원래는 내부 숙박 시설에 80명까지만 있을 수 있었으나 이후 개조를 하면서 최대 348명까지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개조하는 과정에서 기둥에 작은 피로 균열이 생겼고, 이 균열은 해가 지나면서 점점 커졌다.3. 사고 당시
1980년 3월 27일, 알렉산더 L.킬랜드호는 에코피스크 유전에서 시추 작업을 진행중이었다. 당시 킬랜드 호 안에 직원들은 212명이었다. 그런데 저녁이 되고 엄청난 양의 폭우와 바람이 몰아쳤다. 당시 풍속은 시속 40노트, 파도 최고 높이는 12m, 기온은 영상 5도에 달했다. 날씨가 험해지자 인부들의 작업은 중단됐다. 직원 130명은 긴급히 메인 홀과 내부 극장으로 피신했다. 그런데 오후 6시 30분 경, 균열이 강풍과 파도를 못 견디고 크게 갈라지면서 시추선 닻 고정용 케이블 6개 중 5개가 터져버렸다. 결국 균형을 잃은 알렉산더 L. 킬랜드호는 한쪽으로 35도나 기울었다. 20분 뒤엔 남은 닻 고정용 케이블 마저 터지면서 결국 완전히 한쪽으로 쓰러졌다.
배가 위험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 2,000명, 배 47척, 헬기와 비행기 24대가 출동했다. 알렉산더 L.킬랜드호에는 50명이 탈 수 있는 구명보트가 7대, 20명이 탈 수 있는 구명정이 20대 있었다. 직원들은 급히 구명보트를 내렸으나, 배가 너무 기울어 4대 중 1대만 온전히 내려왔다. 다시 한대를 내려보냈으나 아예 뒤집힌 채 바다에 떨어졌다. 구명정들도 내려와 생존자들이 대피를 시도했고, 사람들은 구명조끼만 입은 채 떠다니다 구조 신호를 듣고 달려온 인근 배들이 이들을 구조했다. 인근의 프로덕션 플랫폼인 에다(Edda)에서도 사람들을 구하려 구명보트와 구명정을 떨어뜨렸고, 몇몇 승무원들은 킬랜드에서 에다까지 헤엄쳐와 겨우 살아남았다.
결국 사고로 123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중 상당수는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 사고는 노르웨이 역사상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간 산업재해로 기록됐다.
4. 사고 이후
사고 이후 북해 인근 시추선들은 전부 같은 사고를 막기 위해 안전 점검에 들어갔다.사망자 중 상당수는 Rogaland 출신이었고, Rogaland의 Kvernevik에 사망자들을 추모하는 쇠사슬 모양의 추모비가 세워졌다. 추모비의 이름은 "부러진 사슬(Broken Chain)" 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