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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세 가톨릭 신학자이자 스콜라 철학자인 안셀무스 대주교가 고안한 하느님 존재증명의 한 가지. 본체론적 증명이라고도 한다.2. 상세
안셀무스는 하느님을 "그것보다 더 위대한 것을 생각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어떤 것"이라고 정의했다.[1] 그런데, 그것보다 더 위대한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어떤 것은 실제로 존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보다 더 위대한 것을 상상할 수 없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 '그것보다 더 위대한 것을 상상할 수 없지만 존재하는 것'이 더 위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보다 더 위대한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어떤 것이 하느님이라면, 하느님은 그 본성상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이것이 안셀무스의 하느님 존재증명의 대략적인 논의이다.이것을 단순하게 도식화한다면,
- 전제1: 하느님은 가장 위대한 것이다.
- 전제2: 가장 위대한 것은 실제로 존재해야 한다.
- 결론: 따라서 하느님은 존재한다.
3. 비판
안셀무스의 증명이 나오자마자 안셀무스와 동시대의 사람인 프랑스 마르무티에의 수도자 고닐로(Gaunilo)는 다음과 같이 안셀무스의 증명을 패러디해서 비판하기도 했다. 이 논증은 '완벽한 섬' 논증이라고 불린다.- ① 그보다 더 근사한 섬을 상상할 수 없는 가장 근사한 섬을 상상해 보라.
- ② 그런 섬은 상상할 수 있으므로 적어도 상상 속에 존재한다.
- ③ 그런데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근사한 섬'보다 '실제로 존재하는 근사한 섬'이 더 근사하다.
- ④ 그렇기 때문에 그보다 더 근사한 섬을 상상할 수 없는 가장 근사한 섬은 실제로 존재해야 한다.
- ⑤ 따라서 가장 근사한 이 섬은 실제로 존재한다.
이에 대해 안셀무스는 "사유 안의 실재에서 실제적 실재성을 추론할 수 있는 경우는 '그것 이상으로 더 큰 것이 없는 존재(완전한 존재)'만이 유일하다"라고 하며 해당 비판이 부당함을 재반박한다. 쉽게 말해, 자신이 신에 대해 적용한 논리는 고닐로가 비유한 섬처럼 경험적이고 한정적인 현실세계가 아닌, 가지적(可知的)이며 절대적인 이데아에만 적용될 수 있다는 말이다. 억지스럽다고 생각될 수도 있는 해당 반박은 오늘날 판단하기에 어느 정도는 성공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이에 대해 비판을 종종 했다. 토마스 아퀴나스조차 "지성은 신의 본성(완전성)에 대한 선험적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지적하며 사람들이 '그보다 더 위대한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존재'로 하느님을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비판한다. 기독교의 하느님을 육화하시는 하느님임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추상적 개념으로 하느님을 규정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이는 설혹 우리가 안셀무스의 논증을 논리적으로 수용한다 해도 이렇게 증명된 신이 정말 기독교의 하느님일까라는 물음이 떠오르게 한다.[2]
흄은 존재를 선험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며 비판했고, 러셀의 경우 잘못된 걸 찾아내는 것보다 틀렸다는 걸 알아채는 게 빠르다고 비꼬았다. 칸트의 경우 '존재'는 실체의 '속성'이 아니기 때문에 논리 자체가 넌센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3] 이후 고틀로프 프레게가 이를 이어받아 언어학적으로 넌센스임을 재차 증명한다. 다만, 근대 철학자들 중에서도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 같은 대륙 합리론 철학자들과 헤겔 같은 경우는 안셀무스의 논증을 지지했다. [4]
오스트레일리아의 철학자 더글라스 개스킹은 '가장 위대한 존재가 하느님이라면, 존재하면서 천지를 창조하는 하느님보다 존재하지도 않으면서 천지를 창조하는 하느님이 더 위대할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정반대의 주장을 하기도 했다. [5]
[1]
여기서 '위대하다'라는 말은 '우월하고 좋은 속성과 능력을 가졌다'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된다.
[2]
『처음 읽는 중세철학』 p.174
[3]
많은 경우 이 중 칸트의 비판을 가장 결정적인 것으로 본다. 중세시대에는 존재를 속성에서 명확히 구분하지 않았으며 토마스 아퀴나스 역시 부활에 관한 문제를 다룰 때 존재를 속성처럼 취급했다. 다르게 말해 칸트의 비판은 그때까지 상식적으로 통용되던 철학적 개념을 논박한 것으로 철학사적 의의또한 크다.
[4]
현대에도 이 논증을 지지하거나 재해석하려는 시도는 소수이기는 하나 있다.
[5]
20년 넘는 시간동안 고작 7번 인용된 논문이라 학계에서 가치있게 여겨지는 주장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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