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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07-16 08:23:12

아크샨/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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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문2. 잃어버린 것을 찾아서

1. 장문

슈리마 동쪽의 음지를 활보하는 정당한 복수자 아크샨은 남에게 해를 입힌 자들의 뒤를 쫓는다. 그는 잘못을 바로잡는 기묘한 무기를 사용해 신속하고, 확실하게 적을 벌한다.

마르위라는 도시의 거리에서 자란 아크샨은 태어났을 때부터 불의를 마주하게 되었다. 지역 군벌이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차지하는 곳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최대한 이목을 끌지 않고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며 살아남았다. 그러나 도저히 악행을 무시할 수 없었던 어린 아크샨은 누군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 모습을 보면 서둘러 개입했다. 그 결과 수많은 강적이 생겨났고 한 운명적인 사건에서 죽기 직전까지 구타를 당했다.

하지만 운이 좋았다. 샤디아라는 노파가 자신의 집 밖에 있는 거리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아크샨을 발견한 것이다. 마르위 관습대로라면 관여하지 말아야 했지만 샤디아는 어린 아크샨을 안으로 들였다. 아크샨은 기적적으로 회복했다.

신체 기능이 완전히 회복된 아크샨은 자신을 구해 준 사람이 평범한 노파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알고보니 샤디아는 해로윙에 맞서고 검은 안개 속 존재를 척결하는 고대 조직 '빛의 감시단'에 속한 감시자였다. 샤디아는 아크샨을 고집이 세고 반항적이지만 힘은 없는 골칫거리 꼬마로 보았다. 그러나 감시단 규칙을 두고 아크샨과 수차례 부딪힌 끝에 아크샨에게 장점이 많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렸다. 아크샨에게는 배짱뿐 아니라 양심이 있었다. 마르위에서는 보기 드문 인재였다. 아크샨에게서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본 샤디아는 아크샨과 협상을 했다. 수없이 많은 적의 손아귀를 피해 이곳에 머물 수 있도록 해 줄 테니 감시단에 들어와 헌신하라고 한 것이다.

샤디아는 홀로 움직이는 감시자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고 두 사람은 빠르게 가까워졌다. 보잘것없는 거리의 부랑아 아크샨은 악한들의 골칫거리로 자라났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일취월장하는 아크샨의 실력에도 샤디아는 딴생각에 빠져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 샤디아는 제자에게 자신이 걱정하는 이유가 해로윙 때문이라고 알려 주었다. 그 어느 때보다 큰 규모의 해로윙이 그림자 군도의 망령과 괴물 군단을 몰고 오고 있었다. 슈리마의 지하 무덤에 묻혀 있는 고대의 감시자 무기들만이 대재앙을 막을 유일한 희망이었다. 대몰락으로부터 세계를 구하려면 그 무기를 빨리 손에 넣어야 했다.

그러나 샤디아가 찾던 고대 무기들은 이미 지역 군벌이 약탈한 상태였다. 샤디아는 피할 수 없는 해로윙에 맞서 싸우려면 유물이 꼭 필요하다며 내어 달라고 간청했지만 군벌은 고대 무기가 지닌 수수께끼의 힘을 직접 해방할 생각으로 그 요청을 거절하고 말았다

시간이 촉박해지자 아크샨과 샤디아는 있는 무기로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 무기고를 뒤지던 아크샨은 지하 금고에 숨겨져 있던 아주 눈에 띄는 총을 발견했다. 깜짝 놀라 총을 낚아챈 샤디아는 절대 이 총은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면죄부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그 무기는 고대 마법에 물들어 형언할 수 없는 이상한 힘을 발휘했다. 살인자의 목숨을 빼앗은 후 그 살인자가 가장 최근 죽인 희생자를 되살아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누구도 사용해서는 안 되는 무기다. 생사에 관한 문제는 운명의 손에 맡겨 두는 게 좋아."

하지만 여전히 감시단 규칙에 불만이 많았던 아크샨은 운명에 대해 더 강경한 의견을 지니고 있었다. 지금껏 나쁜 사람이 좋은 사람을 부당하게 대하면서도 대가를 전혀 치르지 않는 모습을 수도 없이 봐 왔다. 운명이 진짜 있다면 도움이 필요한 게 분명했다. 면죄부라면 운명을 도울 수 있었다.

면죄부에 대한 관심이 깊어진 아크샨은 샤디아에게 계속해서 면죄부의 내력을 캐묻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년 전 샤디아가 의식을 잃은 채 거리에 쓰러져 있는 아크샨을 발견했을 때 면죄부를 사용하여 아크샨을 살렸다는 사실이었다. 아크샨을 죽음으로 몰고 간 범인을 면죄부로 죽임으로써 어린 아크샨이 되살아나게 한 것이다. 아크샨은 자신보다 더 가치 있는 사람들도 있었을 텐데 왜 자신만 면죄부로 살아나야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아크샨이 감시단의 고루한 규칙에 의문을 품는 사이 샤디아는 계속해서 약탈한 무기를 돌려 달라며 군벌을 압박했다. 둘 사이의 갈등이 고조되던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온 아크샨은 거리에서 살해된 샤디아를 발견했다. 수년 전 아크샨이 쓰러져 있었던 바로 그 자리였다.

아크샨은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다. 면죄부의 핵심 부분을 개조한 아크샨은 복수에 굶주린 채 금지된 무기를 들고 이글거리는 사막으로 떠났다. 스승을 죽인 게 어떤 군벌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한 가지 확실한 방법이 있었다. 샤디아가 돌아올 때까지 한 명씩 쏴서 죽이는 방법이었다.

2. 잃어버린 것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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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디아가 죽고 몇 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아크샨은 벌써 샤디아의 모든 흔적이 사라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다. 아크샨은 기억을 간직하며 사랑하는 스승이 남긴 흔적이라면 뭐든 긁어모으기 위해 애썼다.

아크샨은 주머니에서 목탄으로 칠한 낡은 스케치를 꺼내 들여다봤다. 섬세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조잡한 그림이라 샤디아의 얼굴과 크게 닮아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가만히 눈을 감고 떠올리면 공백이 채워지는 기분이 들곤 했다. 하지만 아크샨의 기억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흐릿해지고 있었다.

'샤디아 님, 왜 절 떠나시는 거죠?' 아크샨은 생각했다. 자신이 충족하지 못한 기준의 흔적을 모두 없애 버림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방어 기제가 작동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기억을 자극할 만한 뭔가가 필요한 것일지도 몰랐다.

아크샨은 그림을 다시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마르위 중심부에 있는 야외 시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혹시 샤디아를 떠올리게 할 만한 게 있을까 싶어서였다. 건물을 몇 개 지나자 거슬리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벽에 흙을 바른 두 건물 사이의 골목에서 비쩍 마른 부랑아가 자신의 때 묻은 팔에 낯설지 않은 자개 팔찌를 채우고 있었다.

아크샨은 망토를 휘날리며 바람처럼 빠르게 달려가 부랑아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건 어디서 났지?" 아크샨이 버럭 물었다. 평소답지 않게 잔뜩 굳은 어조였다.

"제가 찾은 거예요." 부랑아가 팔로 팔찌를 감추며 말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문제? 그 장신구는 내가 아주 아꼈던 사람의 물건이야. 그 사람이 제일 좋아하던 팔찌였지."

아이가 공포에 질린 눈으로 아크샨을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아이의 옷깃을 잡은 아크샨의 주먹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아크샨은 손을 놓고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니까... 어쩌다 그 팔찌를 갖게 됐는지 얘기해 줄래?"

"이, 이게 없어져도 아쉽지 않을 사람한테서 가져왔어요."

아이의 얼굴에 수년간 고생하며 차곡차곡 쌓인 적의가 차올랐다. 아크샨도 잘 아는 감정이었다. 아크샨은 옆 구역의 악명 높은 암시장 보석상은 물론, 아이가 자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자에게 팔찌에 대한 대가로 무엇을 받았을지도 알고 있었다.

"그럼 그자의 이름을 알려 줘."

"안 돼요. 그자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요."

아이가 쥐고 있던 팔찌를 조심스레 가져온 아크샨은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끼며 팔찌 고리에 있던 것을 빼냈다. 긴 은색 머리카락 한 올이었다.

'샤디아 님의 머리카락인가? 은색이었지... 아마?'

아크샨의 마음속에서 샤디아의 모습이 스치듯 부분적으로 떠올랐다. 온전한 모습을 떠올리기가 전보다 더 어려웠다.

"꼬마야, 샤디아 님은 떠났어. 이 팔찌는 샤디아 님이 남긴 몇 안 되는 유품 중 하나야. 다른 팔찌 네 개와 한 짝이었지."

아이는 아크샨이 자신에게서 금지된 정보를 요구하기라도 할까 봐 불안한 사람처럼 눈을 피했다.

아크샨이 숨을 내쉬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팔찌를 가지고 있던 자가... 다른 팔찌도 가지고 있을 거야. 그자가 누구인지 알려 줘야 해."

아이가 흔들리는 눈으로 말을 더듬더니 결국 입을 열었다. "그자는 모래 언덕의 악마로 불려요. 북쪽 언덕에 있는 커다란 궁전에서 살죠."

아크샨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걸 군주한테서 훔쳤다는 말이니?"

"전 그 사람 마구간을 청소했어요. 마땅한 보상을 챙겼을 뿐이라고요."

"널 탓할 순 없겠구나. 하지만 이 팔찌는 그자의 것이 아니었어. 그 모래 언덕의 악마라는 자를 찾아가 봐야겠다."

"그러지 마세요. 그자는 살인자예요."

"나도 알고 있어."

그 말과 함께 위쪽에 있는 건물 처마에 갈고리총을 발사한 아크샨이 몸을 날려 시야에서 사라졌다.


야심한 밤, 중무장한 경비병 무리가 군주의 궁전을 지키고 있었다. 망토를 두른 형체가 그림자를 타고 은이 새겨진 침실 문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침실 안에는 전투에서 얻은 상처로 가득한 거구의 악한이 거위 털로 채운 거대한 침대 위에 대자로 누워 있었다. 그림자에 숨어 있던 아크샨이 모습을 드러내자 길고 흰 털을 지닌 설치류로 보이는 이국적인 애완동물 세 마리가 벌떡 일어나 침대 밖으로 달아났다.

아크샨의 손이 자고 있는 군주의 입을 꽉 틀어막았다. 눈을 번쩍 뜬 군주는 분노에 차 억눌린 소리를 질러 댔다.

"안녕, 악당." 아크샨이 군주의 턱에 총을 들이밀며 말했다. "이런 시간에 찾아와서 미안한데... 생각해 보니 그렇게 미안하진 않군."

군주가 면죄부의 끝 밑에서 꿈틀거렸다.

"자, 자, 진정하라고. 이제 손을 뗄게. 내가 당신 입에서 듣고 싶은 건 자백뿐이야. 준비됐어?"

군주의 눈에 차오른 분노가 경계심이 뒤섞인 의아함으로 바뀌었다. 아크샨은 천천히 손을 뗐다.

"자백이라고?" 군주가 멍하니 물었다.

"샤디아. 감시자. 노년의 여성. 규칙을 철저히 지키고 '진주 장신구'를 좋아했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다정한 사람이었지.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왜 죽였는지 말해."

"난 죽이지 않았어!" 군주의 목소리에서 황당함이 배어 나왔다.

"그럼 이건 어떻게 가지고 있지?" 아크샨이 군주의 얼굴에 팔찌를 들이밀었다. "샤디아 님이 죽던 날 차고 있던 팔찌야. 당신 보석 상자에서 똑같은 팔찌 네 개를 더 찾았어." 아크샨이 언짢은 듯 혀를 차며 한 짝을 이루는 팔찌 다섯 개를 내보였다.

"누구인지 알겠군." 군주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네가 누군지, 네가 무슨 짓거리를 하는지에 대해선 익히 들었어. 날 죽이면 그 여자가 돌아온다고 생각하겠지."

" 아니. 그러기엔 이미 늦었어."

"그럼 원하는 게 뭐지?"

아크샨은 가만히 멈춰서 은색 머리, 팔찌, 더는 떠오르지 않는 샤디아의 얼굴을 생각했다. 과연 자신의 앞에 있는 자가 샤디아를 죽였을까? 애초에 그게 중요한 문제일까? 어차피 이자가 없으면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될 게 분명했다.

마침내 아크샨은 군주의 질문에 답했다.

"평화?"

아크샨은 손에 힘을 주어 면죄부를 발사했다. 수없이 많은 유물석 빛이 군주를 향해 발사되며 침실을 환하게 밝혔다.

경비병들이 방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나 도망치는 아크샨을 잡을 만큼 빠르진 않았다. 창문으로 나간 아크샨은 시원한 사막의 밤 속으로 사라졌다.


산 위로 태양이 떠오르자 아크샨은 괴로운 마음을 안고 터벅터벅 도시로 돌아왔다.

최근에 되찾은 진주 팔찌 다섯 개를 살펴봤다. 팔찌를 보면 마음속에서나마 샤디아의 모습이 또렷이 떠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샤디아에 대한 기억은 계속해서 흐릿해졌다. 이제는 샤디아 얼굴의 어렴풋한 윤곽만 겨우 남아 있었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샤디아라면 아크샨이 그저 복수심 때문에 모래 언덕의 악마를 죽였다는 사실을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크샨은 그게 샤디아를 위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내심 알고 있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었으며 평화를 가져다주지도 않았다.

위안을 얻기 위해 팔찌 하나를 손가락에 걸고 빙빙 돌리던 아크샨은 팔찌 안쪽에 새겨진 자그마한 글씨를 발견했다. '모두 주면 모두 살리라.' 자주 들었지만 뜻이 와닿지 않았던 옛 감시자의 진언이었다.

순간 그 말이 머릿속에서 전쟁 나팔처럼 울리며 깨달음이 찾아왔다.

아크샨은 위쪽 처마를 향해 갈고리총을 발사하고 건물과 건물 사이를 날아다니다가 전날 부랑아를 만났던 곳에 도착했다. 아이는 그때와 같은 골목에서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손에 팔찌를 쥔 아크샨이 아이 옆에 무릎을 꿇었다. " 네가 가져라. 샤디아 님이라면 이렇게 했을 거야."

아크샨이 보잘것없이 쌓여 있는 아이의 물건 더미에 팔찌를 놓아두자 아이는 잠에서 덜 깨 혼란스러운 눈을 깜빡거렸다.

"그런데... 향신료 구역에 있는 보석상한테 파는 게 좋을 거야. 값을 더 잘 쳐 줄 테니까."

아크샨은 자신을 멍하니 쳐다보는 아이의 시선을 느끼며 아이에게서 멀어졌다. 시원섭섭한 위안의 감정이 밀려왔다. 스승이 남긴 마지막 물건을 떠나보냈지만 내면에서 밝은 온기가 느껴졌다. 마음의 눈을 통해 샤디아의 얼굴이 아주 또렷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