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4-01 20:25:27

아쇼트 2세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cfaa1, #bdfcc9 20%, #bdfcc9 80%, #8cfaa1); color: #000;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바그라티온 왕조
다비트 1세 구르겐 1세 아다르나세 3세 아쇼트 2세
바그라티온 왕조
구르겐 2세 바그라트 1세 아쇼트 3세 아다르나세 4세
바그라티온 왕조
바그라트 2세 다비트 3세 바그라트 3세 }}}
}}}}}}

타오 공국 4대 공작
აშოტ | 아쇼트 2세
제호 한국어 아쇼트 2세
조지아어 აშოტ
라틴어 Ashot II
별명 쿠히(კუხი: 미숙한 자)
생몰 년도 미상 ~ 918년
재위 기간 896년 ~ 918년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타오 공국 4대 공작.

2. 생애

타오 공국 2대 공작 구르겐 1세의 아들로, 형제로 아다르나세 3세가 있었다. 891년 아버지가 이베리아 국왕 아다르나세와의 전쟁 도중 사망한 뒤, 형 아다르나세 3세가 타오 공작에 취임했다. 896년 형이 사망한 뒤, 조카 다비트와 함께 타오의 공작이 되었지만 실권은 그에게 있었다. 908년 다비트가 사망한 뒤 단독 공작이 되었다.

그는 이베리아 왕국의 종주권을 인정하면서도 자치권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그러면서 샤브세트의 트베티 수도원의 대성당 건설을 후원하는 등 수도원 지원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했다. 그러나 909년 아제르바이잔의 에미르 유수프 이반 아빌-시즈가 삼츠헤와 자바케티아를 공격해 약탈을 자행하는 걸 막지 못했다. 918년 사망했고, 아다르나세 3세의 차남 구르겐 2세가 타오 공작에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