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강력1팀장.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경찰공무원시험에 합격,
이후 모든 계급을 특진으로만 진급한 여경들의 전설.
경찰로는 선망의 대상이지만 조직 안에서의 인간관계는 메마르기 그지없다.
영진을 오해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녀가 얼음처럼 차가운 사람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차영진이란 사람과 어렵게 가까워진 이들은,
그녀가 삶과 사람의 본질은 온기라 생각하며
약자와 피해자에게 연민을 느끼는 따뜻한 심성을 지닌 사람임을 안다.
단지 자신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고 주위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을 뿐.
18살 여름까지 영진은 경찰이 아닌 식물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해 여름 어느 늦은 오후,
영진은 단짝 친구인 수정의 전화 세 통을 받지 않았고,
다음날 수정은 당시 세상을 들썩이게 한 ‘성흔’ 연쇄살인의 희생자로 발견되었다.
참고인 조사를 마치고 혼자서 경찰서 복도를 걷던 영진은
죽은 수정의 번호로 걸려온 범인의 전화를 받는다.
범인과의 통화 후, 영진은 숙명처럼 경찰을 선택하고 강력계 형사가 되었다.
밤낮 범죄와 사투를 벌이던 영진은 새 친구를 만난다. 아랫집 소년 고은호.
7년 전 영진이 이사 온 날.
영진의 집 앞 계단에 쪼그려 앉아 있던 8살의 은호는 아이다운 천진함과 호기심으로 영진에게 말을 걸어왔다.
은호의 태도가 부담스러웠던 영진은 은호가 묻는 말에만 간결하게 대답하지만,
짧은 대화를 통해 은호가 아빠 없이 엄마와 살면서 엄마로부터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아버린다.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러나 그 밤, 아래층에서 소란이 일었고 영진은 소란을 일으킨 남자를 제압했다.
경찰로서 당연한 일이었지만, 어린 은호에게 영진은 영웅처럼 느껴졌다.
그날 이후, 영진에게 은호는 단지 마음에 걸리는 아이가 아닌,
마음이 가고... 마음을 붙이는 존재가 되었다.
은호는 다정하고 속이 깊은 아이였다.
살면서 쉽사리 인연을 만들지 않은 영진에게,
은호는 속내를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였다.
영진에게 은호와의 인연은 소중하고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영진을 만나러 광수대로 찾아왔던 은호가 다음날 추락했다.
그때서야 영진은 요사이 은호가 어땠는지 떠올렸다.
쿵! 심장이 내려앉는다.
돌이켜보니 언제부터였는지 은호는 자신의 얘기를 하지 않고,
영진의 이야기만 들어주고 있었다.
사고 전날 밤, 영진을 찾아온 은호는 할 말이 있다고 했었다.
신경이 온통 성흔 연쇄살인에 쏠려 있던 영진은,
눈앞에 은호를 두고도 자신의 생각에 빠져, 은호와 함께 있다는 것을 잊을 정도였다.
그런 영진에게 은호는 선행상을 받았다고 말하곤 돌아갔다.
영진은 뼈저리게 후회한다.
그 날, 은호가 영진에게 하려던 말은 분명 다른 말이었을 것이다.
당시에도 조금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한 번 더 묻지 않고 은호를 그냥 보냈다.
영진은 알아야겠다. 은호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다.
은호가 자신에게 하려 했던 말이 무엇인지.
그리고 은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그런데,
모든 것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었다.
실체를 알 수 없던 성흔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에 대한 퍼즐이
은호의 흔적을 추적하며 맞춰지기 시작한다..!
신성중학교에 부임한 지 1년이 되었다.
신성중학교를 소유한 신성재단 이사장의 처남이자, 초대 이사장의 아들.
3년 전 신성 재단과 관계 없는 고등학교에 첫 발령을 받았지만, 1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계획대로라면 선우는 다른 학교에서 일정 시간 경력을 쌓은 후,
신성중학교에 오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부임 첫 해, 가해 학생이 피해 학생에게 휘두르는 폭력을 막아서다 다치며 선우는 교단을 떠났다.
몸의 상처는 금방 아물었지만, 마음의 상처는 선우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를 잡았고, 선우는 교단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신성중학교’에서 다시 교직에 몸담으라는 선우 아버지의 유지 때문에, 선우는 신성중학교 과학 교사로 부임하게 된다.
아마 신성중학교는 선우의 두 번째 부임지이자 마지막 부임지가 될 것이다.
선우 아버지가 선우를 위해 만든 계획표의 끝은 신성재단 최고 실력자가 되는 것.
교사들 중 가장 먼저 퇴근하고, 가장 비싼 차를 타며, 가끔 이사장실에 들러 티타임을 즐긴다.
동료들에게 거드름 피거나 모나게 굴지 않지만 마음을 터놓고 어울리지도 않는다.
다른 교사들도 선우를 편하게 대하지 못한다, 선우는 단순한 동료가 아니라
미래에 자신들의 갑이 될 존재니까.
남들의 눈에는 선우의 태도가 무성의하고 불성실하게 보이겠지만,
선우에게는 그럴 만한 속사정이 있다.
선우는 종례를 마치자마자 퇴근하는 대신 가장 먼저 출근해 업무를 본다.
자신이 교무실에 있으면 선우의 입을 통해 이사장에게 어떤 이야기가 들어갈지 동료들이 신경 쓰이는 게 보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없어야 동료들끼리 일개 교사로서의 고충을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을 테니, 선우의 칼퇴근은 나름 동료들에 대한 배려다.
인사만 달랑 하고 끝내는 종례도 하루 종일 학교에 갇혀있던 아이들을 빨리 해방시켜 주려는 나름 선우 스타일의 배려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 선우는 그저 학교 재단의 후계자라는 후광을 입고,
거리낌 없이 행동하는 것으로 비춰질 뿐.
교육 현장을 경험해봐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교사가 된 선우에게 교사란 직업은 인생의 정해진 수순 같은 것이었다. 싫지 않았지만 기대도 없었다.
하지만 담임을 맡고 ‘우리’ 반 아이들이 생기면서 없던 의욕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신이 관심을 보이는 만큼 반응을 보여주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기쁘고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아이들의 문제에 너무 깊게 개입한 순간, 커다란 상처를 입고 사직했다.
다시 교단으로 돌아온 선우는 이제 매뉴얼대로 담임교사의 업무를 수행하고,
아이들과 의식적으로 거리를 둔다. 감당할 수 없다면 외면하는 것이 낫다는 걸
3년 전 일로 뼈저리게 배웠으니까.
그래서 은호의 분위기가 어두워지고 고민이 있는 것 같아 보였지만 묻지 않았다.
다른 반 문제아 주동명과 은호의 관계가 예사롭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도,
동명이와 문제없다는 은호의 말에 꺼림칙하면서도 더 이상 알려고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밤 은호가 호텔에서 추락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자신이 외면하지 않았다면 은호의 사고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자책하던 선우는, 연락이 되지 않는 은호의 엄마를 찾기 위해 은호의 집으로 찾아가고 문 앞에서 영진을 만나게 된다.
자수성가한 자산가로 복지와 관련된 사업을 하는 한생명 재단의 이사장이며,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밀레니엄 호텔의 10층을 전부 사용하고 있다.
각종 운동으로 단련된 군살 하나 없는 매끈한 몸과 느긋한 행동과 태도.
단정한 얼굴 속에서 날카로운 빛을 발하는 눈빛은 마치 우아한 표범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상호의 본모습을 아는 사람은 하이에나를 떠올릴 것이다.
큰 육식동물이 먹다 남긴 먹이를 먹고, 서슴없이 어린 동물을 공격하는.
“값만 맞으면 지 에미도 팔아치울 놈..”
창문이 없어 빛 한 줌 들지 않는 곰팡내 나는 방에서 상호의 홀어머니는
어린 상호에게 악언을 퍼붓곤 했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울면서 상호를 때리곤 했다.
그리고 상호에게 퍼붓던 악언이 진짜가 될지도 몰라 두려웠던지,
한 마디 당부나 어떤 징조도 없이 떠나버렸다.
아사 직전에 상호는 젊은 남자 목사에게 발견되어 보육원으로 보내진다.
상호는 방치된 채 컸다. 길러졌다기보다 살아남았다. 그리고 결국 어른이 되었다.
“좋은 어른을 만났다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까?”
아빠는 어릴 때 차 사고로 죽고 히스테리가 심한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다.
다정하고 속이 깊은 아이.
가족이 없는 영진의 안녕을 궁금해 하고 영진의 귀가를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어느새 은호와 영진은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는 친구가 되었다.
은호의 엄마는 가끔 이유도 없이 불같이 화를 내거나 은호를 붙들고 눈물바람을
하며, 아이한테 해서는 안 될 말들을 뱉어내곤 했다.
사귀는 남자가 술에 취해 행패를 부려도 어린 은호를 지키는 대신 남자의 발치에서 울기만 했다.
영진이 위층으로 이사 온 날 밤.
여느 때처럼 엄마의 애인이 술에 취해 난동을 부렸다.
아무리 크게 울어도 아무도 도와주러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은호는
작은 몸으로 그저 엄마를 감싸고 있었다.
그런데...
여느 때와 달리 초인종이 울리고 누군가 화난 듯이 문을 두드렸다.
은호는 잽싸게 달려 나가 문을 열었다.
낮에 은호의 질문에 무뚝뚝하게 대답하던 위층 아줌마, 영진이었다.
영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용감하네..잘했어.”
그리고 남자를 간단하게 제압하고 수갑을 채웠다.
영진은 은호와 은호의 엄마를 폭력으로부터 구해줬지만
엄마는 달라지지 않았다.
새로 사귄 엄마의 남자친구가 집에 찾아오거나 엄마의 짜증이 심해지면
은호는 집을 나와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야했다.
그런 은호에게 영진은 부탁을 했다.
자주 집을 비워야 하는 자기 대신 화분에 물을 주라고.
달랑 하나였던 화분이 시간이 지날수록 늘었다.
그리고 영진은 부탁을 하나 더 했다.
자신의 집에 있는 책을 읽고 내용을 말해달라고.
15살의 은호는 영진의 부탁들이 영진이 아닌, 자신을 위해서였음을 잘 알고 있다.
몸을 자라게 한 건 엄마지만, 영혼을 자라게 한 건 영진이었다.
은호는 영진 같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약하고 불쌍한 사람을 지키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단단하고 강한 어른.
그런데 최근 은호의 입이 무거워지고 얼굴에 그늘이 생겼다.
은호는 말 할 수 없는 비밀들을 가슴에 품고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어느 하나, 영진에게 섣불리 털어놓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계가 왔다.
은호는 영진을 찾아갔다. 모든 걸 다 털어놓고 가벼워지고 싶었다.
하지만 영진은 은호의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결국 은호는 몸을 날린다.
은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은호가 깨어나기 전까진 아무도 모른다.
영진이 인범에게 참고인 조사를 받은 직후에 영진이 범인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영진은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파르르 떨며 범인의 말을 전했다.
최수정이 마지막 희생자가 아니며 살인이 곧 다시 시작될 거라는 범인의 살인예고.
인범은 그 짧은 순간 결단을 내렸다.
“전화, 내가 받은 걸로 하자.”
언론의 취재 열풍과 자극을 쫓는 호사가들의 관심에서 영진을 보호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뒤, 영진은 경찰이 되어 인범 앞에 나타났다.
그때는 인범도 성흔 연쇄살인의 범인을 잡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있을 때였다.
인범은 영진과 수사기록을 공유하고 시간이 허락하면 영진과 함께 조사를 했다.
그리고 꽤 시간이 흐른 후, 인범은 강력계를 떠나면서 성흔의 범인을 쫓는 것도 포기했다.
하지만 여전히 인범은 영진이 마음 터놓고 수정과 성흔 연쇄살인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서상원의 투신 사망 후, 더욱 든든한 영진의 버팀목이 되어준다.
영진의 팀에 들어 온지 한 달. 영진과 같은 조.
반듯하고 착실하다. 우유부단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심지가 굳다.
부모님이 조그만 식당을 하셨다.
간혹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손님들 때문에 세 식구가 불안에 떨다가도
경찰이 출동하면 마음이 놓이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재홍이 경찰이라는 직업을 택하게 했다.
영진의 팀에 오기 전까지 경찰로서 힘든 일과 보람 된 일들을 나름 겪었다.
그런데 영진의 파트너가 되면서 경찰로서 차원이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영진이 성흔 연쇄살인 사건 8차와 마지막 사건의 범인이 따로 있음을 주장하면서
조직 내에서 곤란한 상황에 처할 때도 묵묵히 영진을 따른다.
‘여경들의 레전드’라 불리는, 특진으로만 진급한 영진을 동경한다.
패기와 의욕이 넘치고 그것을 감추려 하지 않고 당당하게 드러낸다.
경찰이 되고 영진의 존재를 알게 됐을 때 후회했다.
대학가지 말고 나도 바로 경찰 시험 볼 걸..
폼 나게 강력범들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노련하게 자백을 받아내는 강력계 형사가 된 자신을 꿈꾸고 있다.
자영의 아버지와 오빠 둘 모두 경찰.
아버지는 수사의 달인이라 불리었고, 오빠들은 경찰대 출신으로 아버지의 자부심이다.
자영도 오빠들이 자랑스럽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최고가 되고 싶다.
누군가 영진을 두고 이런 말을 했다. ‘사건 복’이 많은 형사라고.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기회’가 많은 형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재홍과 함께 영진을 도우면서 그 기회가 피해자의 불행이라는 것,
영진이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건, 결국 피해자를 위해 몸 사리지 않고 애 썼기 때문이라는 것을 통감하며, 최고가 아닌 좋은 경찰을 꿈꾸게 된다.
경찰은 내게 ‘밥벌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경찰로서의 사명감은 없지만, 거대한 경찰 조직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은 있다.
그런 병희에게 팀장인 영진은 못마땅한 존재다.
영진이 여자라서도 자신보다 나이가 적어서도 아니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는 영진의 독불장군 스타일 때문.
사사건건 영진에게 딴지를 걸지만, 영진은 한 번도 감정적으로 대응을 해오지 않는다.
그게 더 병희를 꼬이게 만든다.
병희와 한 조. 영진에게 그다지 불만 없지만 병희와 한 조이다 보니 병희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편.
어쩌다보니 강력계로 흘러왔지만 적성에 맞지 않는다.
잠복도 지겹고 다치는 거 무섭고. 그러다 보니 실적은 안 좋고.
경위로 승진하려면 승진 시험이 아니면 남은 근속기간 5년을 채워야 한다.
그런데 바쁜 강력계에서는 시험 준비할 시간이 없다.
경찰특공대 출신, 한때 강력계에서 근무했었다.
피지컬로만 따지면 영진보다 훨씬 뛰어난 형사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참혹한 범죄 현장을 몇 번 경험하고 마음이 버텨내지 못해서 강력계를 포기했다.
대신, 여러 부서를 거치는 동안 최선을 다해 맡은 바 소임을 다했다.
광수대 내에서 영진을 이해하고 유일하게 가깝게 지내는 사이지만, 영진의 편에만 서서 생각하지 않는다.
도와줄 때는 화끈하게 돕고, 아니다 싶을 때는 따끔하게 일침을 날린다.
부모가 빌딩 여러 채와 다수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재력 가다.
은호와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다. 잠깐 은호와 친하게 지냈지만,
민성 엄마가 은호의 가정 형편을 알고 말도 섞지 못하게 했다.
돈으로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믿는 부모를 보고 자란 민성은 자신의 운전기사 같은 어른에게 위세를 부린다.
눈에 띄는 고혹적인 외모의 소유자. 대학을 조기 졸업하고 미국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선아는 호텔에서 출근하고 호텔로 퇴근한다.
밀레니엄 호텔 10층은 상호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절반은 상호가, 맞은편 세 개의 방은 두석, 희동, 선아가 하나씩 차지하고 있다.
선아 역시 상호와 같은 보육원 출신.
부모는 ‘착한 아이’가 되라며 선아라는 이름을 지었지만, 선아는 착한 아이로 자랄 수 없었다.
부모는 술에 취해 있지 않으면 악다구니를 퍼부으며 싸워 댔다.
헤어지고 나서는 선아를 책임지지 않으려 싸워 댔다.
아빠가 엄마의 집 앞에 선아를 놓고 가면, 엄마가 보란 듯이 아빠의 집 앞에 선아를 데려다 놨다.
선아는 제 발로 경찰서를 찾아가 부모를 신고했고, 이후 보육원에 들어가게 됐다.
그리고 몇 년 뒤 중 3이 됐을 때 다시 경찰서에 찾아갔다.
이번에는 자수였고 손에는 피가 묻은 칼이 들려있었다.
역시 상호와 같은 보육원 출신. 누추하고 보잘것 없던 상호의 유년시절을 함께했다.
난폭하고 다혈질이지만 순수한 구석이 있다.
우락부락한 외모와 달리 수다스러운데 눈치는 없다. 이래저래 손이 많이 가는 타입.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열 살이나 어린 두석보다 암묵적으로 서열은 아래.
상호를 두려워하면서도 떠나지 못한다.
우여곡절 많았지만 30년이 넘는 시간을 상호와 함께 했다.
이제 희동에게 상호는 가족이고 밀레니엄 호텔은 집이다.
미용사. 은호가 아기였을 때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고 이제껏 은호와 둘이 살아왔다.
감정기복 심하고 자기연민으로 가득, 히스테리가 심하다.
어린 아들에게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어 상처를 입혀왔다.
7년 전 위층으로 이사 온 영진이 자신과 은호를 폭행으로부터 구해준 이후,
은호에게 자격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대놓고 싫은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은호가 성가실 때면 영진의 손을 빌릴 수 있었으니까.
과거 영진이 유일하게 가깝게 지냈던 친구.
지나가는 사람이 한 번쯤 돌아볼 만큼 인형처럼 예쁜 외모의 소유자.
어릴 때부터 예쁘다, 착하다 소리를 주문처럼 들으며 자랐고 그대로 예쁘고 착하게 자랐다.
무뚝뚝한 영진의 태도에도 기분 상하지 않고, 반갑게 인사하고 다정하게 말을 걸어와 결국에는 영진의 단짝이 되었지만, 연쇄살인범에게 참혹하게 살해당하고
영진을 경찰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다.
선우의 누나이자 희섭의 아내. 차분한 성격의 소유자.
어릴 때부터 알아온 희섭과 자연스럽게 결혼에까지 이르렀다.
가슴 설레는 사랑은 아니었지만, 선경은 익숙하고 편안한 희섭이 좋았다.
희섭과 가정을 꾸리면 평온하리라 믿었다.
게다가 희섭은 선우를 친형제처럼 아꼈다.
선경은 연민이 많고 마음이 여린 선우가 늘 걱정이었다.
강단 있는 희섭이라면 선우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리라 생각했고,
실제로 희섭은 그렇게 했다.
식자재를 납품한다. 밀레니엄 호텔은 창수의 거래처 중 하나.
창수는 요즘 아이 같지 않게 차분하고 착한 은호와 잘 지내왔다.
연락도 없이 아르바이트생이 나오지 않은 날이면 은호의 손을 빌린 적도 여러 번.
그런데 최근 창수와 은호의 사이가 껄끄러워졌다.
창수는 더 이상 은호가 착한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점심 때즘 나와 밥 먹고 수업 시간 내내 책상에 엎드려 자고, 깨어 있는 시간엔 다른 반의 불량한 학생들과 어울리며 다른 학생들을 위협하는 존재였다.
태형이 일찍 학교를 나가는 날도 있긴 했다. 엄마와 아빠가 모두 집에 있는 날.
눈이 마주치면 죽일 듯이 악다구니를 퍼붓는 두 사람을 피해 새벽에 집을 나가
빈 교실로 향했다. 어느 날 이른 아침 아무도 없는 빈 교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선우가 나타났다. 선우는 궁금한 게 많아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그저 밥을 먹자는 말만 꺼냈다. 그전부터 선우가 관심을 보였지만 귀찮아하고 짜증을 냈던 태형은, 그날 선우와 함께 따뜻한 아침을 먹은 이후로 조금씩 선우에게 마음을 열었고, 조금씩 변화했다. 제 시간에 출석하고 수업 시간에 잠들더라도 필기구를 손에 쥐고 잠들었으며 불량한 아이들과도 점점 거리를 뒀다.
그런데 같은 반 친구가 태형을 폭행가해자로 지목했다. 친구가 줬던 옷과 신발이 증거가 되었다.
태형은 폭주했다. 누명을 쓴 것보다, 자신을 믿어주지 않고 자신을 다른 반으로 보내기로 결정한 선우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