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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6-16 14:01:23

아리아라테스 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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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c143c><colcolor=#fff>
카파도키아 제10대 국왕
아리아라테스 9세
Ἀριαράθης Θ΄
파일:아리아라테스 9세.jpg
출생 기원전 109년
사망 기원전 85년 (향년 23~24세)
재위기간 카파도키아 국왕(1차 재위)
기원전 101년 ~ 기원전 95년
(5~6년)
카파도키아 국왕(2차 재위)
기원전 93년 ~ 기원전 92년
(0~1년)
카파도키아 국왕(3차 재위)
기원전 89년 ~ 기원전 85년
(3~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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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c143c><colcolor=#fff> 부모 아버지 미트리다테스 6세
어머니 미상
배우자 없음
자녀 없음
형제자매 미트리다테스, 아르카티아스, 마차레스, 파르나케스 2세, 시파리스, 클레오파트라, 드리페티나, 아테나이스, 미트리다테스 2세(사생아), 소 아도보기오나(사생아), 오르사바리스(사생아) }}}}}}}}}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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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파도키아 왕국 10대 국왕.

2. 생애

기원전 109년 폰토스 왕국의 8대 국왕 미트리다테스 6세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정부 사이의 사생아로 출생했다. 기원전 102년, 비티니아 왕국 니코메데스 3세가 카파도키아를 침공해 단숨에 굴복시키고 라오디케와 결혼한 뒤 카파도키아 왕을 겸임했다. 그러자 미트리다테스 6세가 누이와 조카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대군을 이끌고 카파도키아로 쳐들어가 비티니아군을 몰아낸 뒤 아리아라테스 7세를 카파도키아 왕위에 복위시켰다. 그러나 아리아라테스 7세가 고르디오스를 중용하길 거부하자, 미트리다테스 6세는 기원전 101년에 아리아라테스 7세를 암살했다.

그 후 미트리다테스 6세는 갓 8살이 된 아들 아리아라테스 9세를 카파도키아 왕으로 선임하고, 친 폰토스 성향의 카파도키아 귀족인 고르디오스에게 섭정을 맡겼다. 카파도키아 백성들은 이에 반발하여 아리아라테스 7세의 동생 아리아라테스 8세를 왕으로 추대했다. 이리하여 카파도키아는 아리아라테스 8세 지지파와 아리아라테스 9세 지지파로 양분되었다. 기원전 96년, 미트리다테스 6세가 파견한 폰토스군이 카파도키아로 쳐들어가 아리아라테스 8세를 폐위시키고 아리아라테스 9세를 카파도키아의 단독 군주로 군림시켰다. 아리아라테스 8세는 해외로 망명했지만 기원전 95년에 사망했다. 그러자 니코메데스 3세는 자신의 아들을 아리아라테스 6세와 라오디케의 세번째 아들로 위장시키고 로마에 사절을 보내 이 아이를 카파도키아 왕위에 앉히라고 요구했다. 이에 미트리다테스 6세는 환관 고르디오스를 로마로 보내 아리아라테스 9세가 아리아라테스 5세의 아들이라고 우겼다.

로마 원로원은 한동안 어느 쪽의 말이 옳은지 이해하지 못해 별다른 결정을 내리지 못하다가, 기원전 95년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스카우루스가 이끄는 사절단을 파견해 폐위시키고 폰토스군을 카파도키아에서 철수하라고 요구했다. 미트리다테스 6세는 로마와 싸울 준비가 안 되었기에 이에 따랐다. 이후 원로원은 카파도키아 공화국을 세울 계획을 세웠지만, 카파도키아인들이 왕을 원하자 그들이 원하는 사람을 선택하게 했다. 주민들은 논의 끝에 아리오바르자네스 1세를 새 왕으로 세우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미트리다테스 6세는 이대로 카파도키아를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아르메니아 왕 티그라네스 2세에게 카파도키아를 공격해달라고 설득했다.

기원전 93년, 티그라네스 2세는 미트리다테스 6세의 설득을 받아들여 카파도키아를 침공했고 아리오바르자네스 1세는 로마로 도망쳤다. 미트리다테스 6세는 카파도키아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고 아들을 다시 왕으로 세웠다. 그러나 기원전 92년 킬리키아의 총독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가 폰토스에 "당장 아리오바르자네스 1세를 복위시키지 않으면 전쟁을 선포하겠다"라고 위협하자, 미트리다테스 6세는 어쩔 수 없이 아리오바르자네스 1세의 복위를 인정하고 아들을 폰토스로 불러들였다.

기원전 89년 제1차 미트리다테스 전쟁이 발발했다. 미트리다테스 6세는 폰토스를 침공한 비티니아-로마 연합군을 섬멸한 뒤 아리오바르자네스 1세를 축출하고 아들을 카파도키아 왕으로 복위시켰다. 그 후 아버지의 원정에 함께 하다가 기원전 85년 로마가 승리하자 카파도키아 왕위에서 물러나야 했고 얼마 안가 사망했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폼페이우스가 케넘 요새에서 미트리다테스의 개인 문서를 찾아냈으며, 그 중에는 그의 아들 아리아라테스가 아버지에게 독살당했다는 내용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인지는 분명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