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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고고학 유적지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 화이트.svg 튀르키예 의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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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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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한국어 아니 고고학 유적지
영어 Archaeological Site of Ani
프랑스어 Site archéologique d’Ani
국가·위치 튀르키예 카르스 도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2016년
등재기준 (ii)[1], (iii)[2], (iv)[3]
지정번호 1518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ni_-_bridge.jpg
튀르키예-아르메니아 국경선에 걸쳐져 있는 옛 다리의 잔해. 다리 한가운데를 흐르는 실개천에 가까운 강은 튀르키예-아르메니아 국경선을 이루는 아후리안 강으로 강 왼편이 튀르키예령, 강 오른편이 아르메니아령이다.

그리스어: Ἄνιον, Ánion
라틴어: Abnicum
아르메니아어: Անի
조지아어: ანი, ანისი
튀르키예어 영어: Ani

1. 개요2. 설명3. 유적의 입지

1. 개요

튀르키예 북동부 카르스 도에 위치한 유적.

2. 설명

유적 옆을 흐르는 아후리안 강(Ախուրյան)을 경계로 하여 아르메니아와의 국경선이 바로 맞닿아 있는데 사실 이 유적은 과거 880~1045년까지 존속했던 아르메니아계 왕국인 바그라티드 아르메니아의 수도(961~1045)였다. 당시에는 엄청난 규모의 대도시[4]였으나 먼저 지진으로 무너진 적이 있으며 셀주크 투르크 술탄 알프 아르슬란이 이끈 셀주크군에게 1064년에 대대적인 공격을 받은 데다 13세기에는 몽골군의 공격까지 받아 1319년에 버려지기에 이르렀으며, 그 뒤에는 초라한 유적이 산재한 작은 마을로 전락했다.

파일:아니.jpg
바그라투니 아르메니아의 수도이자 상당한 대도시였던 당시 모습으로 추정.

그러다가 1878년 베를린 회의 결과 러시아 영토가 되면서 러시아 당국의 주도 아래 아니 유적 발굴 및 연구가 이뤄졌고 20세기 초반까지는 밑의 사진에서 보이듯이 유적지 상태가 지금보다 훨씬 양호했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arr_archeological_dig_of_Ani.jpg
1906년 있었던 러시아 발굴팀이 찍은 사진. 러시아 고고학자 니콜라이 마르(Nikolai Marr,1864~1934) 주도 아래 이뤄진 발굴팀이었다. 러시아 제국 시절에는 유적지 복원도 하고 거주지역도 많아서 아르메니아인들이 1917년까지 대다수로 살고 있었다. 마르 조수로 참가한 아르메니아인 칼란타르 아쉬하크르벡 (Kalantar Ashkharbek,1884~1942)은 아니 유적지에 대한 애착이 커서 여기서 6000점이 넘는 유물을 발굴했고 이는 지금도 예레반에 있는 아르메니아 민속 박물관에 잘 보관되어 있다. 하지만,아쉬하크르벡은 스탈린 시절, 아르메니아 민족주의자로 반동이라고 숙청당해 시베리아로 끌려가 수용소에서 비참하게 죽고만다.

복원되고 사람도 제법 2만명이 넘게 살면서 활기를 되찾던 아니었지만,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인 1918년에 아르메니아가 잠시 점령했다가 1921년에 카즘 카라키베르(Kazım Karabekir,1882~1948)가 이끈 튀르키예 의용군에게 패하여 다시 튀르키예의 영토가 된 등 국지전이 벌어진 과정에서 많은 유적들이 파괴되었다. 그런데, 카즘 카라키베르는 당시 오스만 공화국 임시 수반 중 하나인 리자 누르(Riza Nur, 1879~1942)가 아니를 불바다로 만들고 성당은 죄다 부수라는 명령을 했다고 주장했다. 카라키베르는 전투 와중에 많은 성당이 엉망이 되었으나 적어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던 건 내가 그 명령을 따르지 않았기에 남은 거라고 주장했다. 1922년 소련과 국경선 회담에서 아니를 소련 땅으로 돌려달라는 요구를 거부하였지만 소련과 국경을 맞이했기에 튀르키예 측은 거부했다.

이후로 소련에 대비하여 군요새가 만들어지고 민간인 거주가 금지되었다. 90년대까지 외부인 출입금지에 사진촬영도 금지되어 당시, 외국인이 들르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2004년까지도 여길 방문하자면 튀르키예군 허락을 맡아야 했다.

오늘날에는 아르메니아 유적을 연구하고 발굴하는 고고학자와 역사학자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으나, 국경이 코앞인 상황이라 문화재를 복원하기나 연구하기는 커녕 접근하기도 어렵다.

파일:external/ef965a36cdbe1f513114bce023073a10218fa0f0bf53e26455c13109c3d4d490.jpg
2009년에 찍은 아니 대성당.

그나마 보존 상태가 양호한 유적은 세워진 지 1000년이 넘은 아니 대성당인데, 이마저도 내부에 무수한 총알 자국이 남아 있는 등 제대로 관리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국경지대이다 보니 관광객이 가기도 까다롭고 제대로 된 숙박시설도 없는 실정. 그래도, 이 아니 대성당(Cathedral of Ani)이 아니 유적지를 상징할 정도로 유명한 곳이라 2016년부터 복원 기획에 들어가 2021년에 일부 공사를 했고 추가로 계속 복원할 예정이다. 2010년에 튀르키예 극우파 이슬람 과격파들이 여기서 이슬람 예배를 하여 아르메니아와 그리스에서 비난한 바 있다. 문제는 이게 당시 튀르키예 문화부 장관 승인 아래, 아제르바이잔이 보란듯이 떡하니 TV중계까지 하며 아르메니아를 약올렸던 것. 튀르키예에서도 반발이 거셌는데 휘리예트 데일리 뉴스(Hürriyet Daily News) 컬럼니스트 유수프 칸리(Yusuf Kanlı)는 저것을 "잃어버린 민족주의-보수당 표를 위하고자 하는 현 정부의 꼴사나운 시도"라고 비난했다. 이런 비난이 나와서인지 이후론 이런 시도는 되지 않고 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20110419_Menucehr_mosque_Ani_Turkey_Panorama.jpg
지어진 지 900년이 넘은 모스크도 무너진 채 방치되고 있으며, 여타 유적들도 형편은 매한가지다. 이 모스크는 1072년에 샤다디드 왕조 Shaddadids (951~1199)에서 지은 모스크였다. 아르메니아와의 국경이 바로 지척인 관계로 튀르키예군이 주둔하고 있어서 민간인이 살기 쉽지 않다. 그나마, 이 모스크는 2020년 6월부터 복원공사에 들어갔다.

다만 일부 교회는 복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워낙 무너진 곳도 많은 터에 관광지로 입지도 인프라도 나쁜 이곳을 복원하고 찻길을 새로 깔고 인프라를 갖추는 것도 매우 힘든 일이다. 튀르키예/관광 봐도 알겠지만 튀르키예는 워낙에 곳곳에 유적지가 넘쳐나서 인프라 좋은 서쪽에 있는 유적지조차 복원되지 못할 정도인데 이 곳 아니는 말할 것도 없다.

그나마, 2016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관광객을 허용하고 있다.

3. 유적의 입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90px-Ani_from_Armenia.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800px-20110419_Ani_North_Walls_Turkey_Panorama.jpg
튀르키예에 거주하며 한국어 가이드 책자를 쓴 한 교포는 아니에 다녀와서 정말로 마음이 어두운 흔적이라며 무수한 유적 잔해가 아쉽다고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아르메니아로서는 조상들이 세운 유적들이 바로 눈 앞에 있는데 튀르키예와의 사이가 안 좋아 제대로 연구하기 어렵다는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한다. 한편 이슬람 세력이 1000년 가까이 아르메니아에서 아니를 빼앗고 빼앗기기를 반복했고, 따라서 위의 사진처럼 모스크를 비롯한 이슬람 유적도 꽤 있기에 이슬람 고고학자들도 안타까워한다.

더불어 튀르키예가 이 지역에 댐을 건설하려고 하는데, 아타튀르크 댐이 건설되면서 수몰 위기에 몰렸던 디야르바크르와 마찬가지로 댐이 지어지면 물에 잠길 상황이라 말이 많다. 아르메니아는 죽어라 결사반대하고 있으며, 튀르키예에서도 유적지로서 조사할 게 많은 곳이라며 반대하는 주장도 많다.

직접 가 보고 싶으면 인근에서 가장 큰 도시 카르스(Kars, 2019년 인구는 7만 5천명이 채 안되지만 근처에서 그나마 가장 큰 도시다.)에서 일일 투어를 하는 방법이 있는데, 투어라고 해 봐야 대부분 미니밴이나 조금 큰 택시에 타고 왕복 100 km를 짐짝같이 달려서 왕복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일정임은 각오해야 한다. 게다가 튀르키예 동부 특성상 도로 포장 상태가 매우 고르지 못하고, 국경 인근 지역이라 검문이 빡세다. 그러나 유적지 자체는 보존 상태가 불량할 뿐, 아주 아름답고, 그 정도 노력을 들일 가치는 충분하니 근처를 여행할 계획이 있으면 일정에 넣는 것도 좋을 것이다.

국경 지역이라는 특성상 유적지 한쪽 구석 언덕 위에는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고, 올라가 볼 수만 있으면 유적지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경치지만 근처는 전부 철조망으로 막혀 있어 진입할 수 없다.

[1]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 [2]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3]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 [4] 수도 이전에도 10세기 초, 전성기 시절에 인구는 15만에 달했을 정도인데, 이 정도는 당시 아르메니아 전체 인구의 15%에 달하는 것이었다. 한편 이 나라는 수도를 여러 번 옮겼는데, 건국 초기 수도로서 현재 튀르키예 영토인 바라간(Bagaran)은 겨우 5년(885~890)짜리 수도였고, 현재 아르메니아 영토이지만 튀르키예와 국경이 맞닿아 있어 상황이 그닥 다르지 않은 시라카반(Shirakavan)은 39년(890~929), 현재 튀르키예 영토인 카르스(Kars)는 32년(929~961)간 수도였기에 아니가 그나마 가장 오랫동안 왕국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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