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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03 22:40:31

쑨야오팅

말년의 모습
1. 개요2. 생애

1. 개요

1902년 ~ 1996년

청나라의 마지막 환관이자 중국 역사상 마지막 환관.

이름의 한자 표기는 孫耀庭이며 한국식으로 읽으면 손요정이다.

2. 생애

1902년에 청나라의 가난한 손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손씨의 아버지는 환관이 돈을 많이 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식을 벌어먹으려 했었고 쑨야오팅은 그렇게 거세를 당했다. 그러나 거세의 충격으로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사이 그가 환관이 되고자 한 나라였던 청나라가 신해혁명으로 멸망해버렸다.

그러나 쑨야오팅은 어째저째 환관이 될 수 있었다. 청나라는 망했지만, 청나라 소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청나라 황실과 조직은 존속해 청나라 소조정에서 환관과 궁녀를 모집했기 때문이다. 쑨야오팅은 환관으로 채용되었고, 1924년까지 환관으로 별 다른 어려움 없이 지내왔지만, 청나라 소조정이 1924년에 해산되었고, 선통제는 별 다른 밑천이 없어졌기 때문에 쑨야오팅도 환관으로서의 삶을 마감해야 했다. 2년간 고향에 설다가 1926년부터는 베이징에서 자신과 같은 운명을 지닌 내시와 같이 지내게 되었다. 1931년에 만주국이 건국되자 다시 환관이 되었지만, 쑨야오팅은 폐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하고 일을 그만두어야했고,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중일전쟁 국공내전으로 인해서 베이징에서 삶은 그리 녹록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중국 공산화 이후에서야 삶이 펴지게 되었는데, 사찰관리인으로 일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16위안의 월급을 받았고, 나중에는 월 35위안의 급여를 정부로부터 받으며 부유하지는 않아도 제법 넉넉하게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었다.[1] 다만 문화대혁명 기간 중에는 그리 순탄치 못한 삶을 살았으며, 자신의 보가 홍위병들에게 습격당할까봐 없애야 했다고 한다. 쑨야오팅은 개혁개방기인 1980년대에 마지막 내시라는 자서전을 냈고, 이 책이 히트를 치고, 1988년에 홍콩에서 영화로 제작되며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그는 말년의 삶을 여유있게 지내다가 1996년에 향년 94세로 노환으로 세상을 떴다. 사후 그의 시신은 화장되었다.


[1] 1960년대 1위안은 하루치 일당을 넘는 돈이었고, 일상생활에서 마오(자오) 과자는 펀 단위로 팔았다. 물론 당대의 얘기이지 지금은 1위안으로 버스와 지하철 한번 못타는 푼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