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족보명 | 승영림(承永臨) |
자 | 정여(定汝) |
본관 | 연일 승씨[1] |
출생 | 1893년[2] |
평안도
정주목 (현 평안북도 정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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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20년 11월 3일 |
중국 봉천성 통화현 영액포령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185호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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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독립유공자 승진은 그의 형이며, 독립유공자 승영호는 그의 6촌 재종제(再從弟)이다.
2. 생애
승병균은 1893년 평안도 정주목(현 평안북도 정주시)에서 아버지 승계목(承啓睦)과 어머니 영천 김씨(永川 金氏) 김용조(金龍祖)의 딸 사이의 3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그는 일찍이 만주로 건너가 중국 서간도 한족회(韓族會)의 자치구역인 봉천성 통화현 서반납배(西半拉背)[3]에서 자치회원(自治會員)을 역임했다. 그러나 1920년 11월 3일 일본군의 습격을 받고 배달학교 직원인 김기선·조동호(趙東鎬)· 조용석, 자치회원인 승대언·최찬화(崔贊化)·김기준(金基畯) 등과 함께 체포된 뒤, 마을 부근의 영액포령(英額布嶺)[4]에 연행되어 그곳에서 살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승병균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5년 그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여 그해 10월 18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