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이 일생 동안 이루어 낸 물질적인 행위와 성취는 그가 가졌던 야망과는 절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반드시 그 자신으로 하여금 대담무쌍하고 호방한 목표를 갖게 해야만 한다. 만일 그가 자신이 성취하기에 적당할 정도만의 목표를 가진다면, 그는 삶을 살아나가기도 전에 자신이 인생에서 무엇을 성취해나갈지 기대하는 것에서조차 난처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 워마스터 슬레이도, 회고록에서 발췌.
- 워마스터 슬레이도, 회고록에서 발췌.
1. 개요
사밧 성전의 전반기(756-765)를 총지휘한 인류제국의 워마스터.2. 사밧 성전 이전
사밧 성전이 벌어지기 이전에도, 슬레이도는 이미 노련한 지휘관으로 명성이 높았다. 성전 이전까지 슬레이도의 가장 큰 전공은 바로 쿨란Khulan 전역(752-754)을 승리로 이끈 것이라 할 수 있다. 로드 밀리턴트로써 쿨란 전역을 훌륭하게 지휘하면서 보여준 천재적인 재능과, 임페리얼 가드 내에서 보여준 계급과 병종을 막론한 드높은 명성은, 테라의 하이 로드들로 하여금 그를 워마스터로 임명시키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3. 사밧 성전
3.1. 사밧 성계의 재수복을 주장하다
성 사밧이 순교한 이래, M35에 제국의 식민지로써 편입된 사밧 성계는 M37에 이르기까지 원활하게 개발되고 있었다. 당시 이 지역에는 5조 명에 가까운 인구가 거주하고 있었고, 무역, 산업 및 기타 기간 시설들 또한 풍부하게 발달되어 있었다. 그러나 성계 바깥에는 아직도 카오스 세력이 건재했고 여러 번의 침략을 겪었다. 물론 제국은 이 침략을 훌륭하게 막아냈으나, 41번째 천년기의 첫 세기가 찾아오자 상황은 급변했다. 그리고 600년이 되자, 카오스 세력은 아르콘이라 불리는 강대한 워로드를 필두로 사밧 성계에 전면적인 침공을 개시했다. 741년, 제국은 사밧 성계에 대한 행정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사밧 성계를 해방시키기 위한 원정에 대한 구상은 741년 이래로 여러 번 논의되었던 문제였다. 한창 함락되는 중이었던 사밧 성계에서 타 섹터로 도망나온 행성 총독들이 이 문제를 쟁점화시키고자 노력했으며, 특히 사밧 섹터의 군주 총독은 이 일에 열심이었다. 그러나 임페리얼 가드 고위 사령부(Imperial Guard High Command)는 이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다. 시간도, 자원도, 노력도, 들어갈 것이 한두가지가 아닌 데다 그 세가지가 갖추어졌다 해도 성전 자체가 결코 쉬운 일도 아닐 노릇이었다. 따지고 보면 사밧 성계를 잃을 당시에도 제국은 세그멘툼 파시피쿠스 전역에 걸쳐 6차례의 카오스의 침략을 겪고 있었고, 세그멘툼 차원에서는 더 큰 위협들이 산재한 가운데, 임페리얼 가드 지휘부는 사밧 성계에 신경쓸 여력이 별로 없었다. 로드 밀리턴트 대다수가 사밧 성계의 수복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고 있었고, 일부는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 그러나 사밧 성계의 재수복을 주장하는 로드 밀리턴트가 단 한 명 있었으니, 그는 바로 로드 밀리턴트 슬레이도였다.
슬레이도는 예전부터 사밧 성계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미 732년에는 임페리얼 가드 고위 사령부에서의 논의를 위해 사밧 성계 재수복 작전을 입안한 바 있었다. 사실 그는 쿨란 전역을 지휘하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사밧 성계의 해방에 대한 청원을 하이 로드들에게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었다. 당시 그는 성녀의 대의에 깊이 감복한 것처럼 보였으며, 자신이 그 옛날 성 사밧을 보좌한 참모 팔토르누스Faltornus의 길을 따르고 있다고 믿었다. 특히 그는 성 사밧의 지도 아래 제국에 편입된 사밧 성계를 포기하는 것은 성 사밧에 대한 모독이라고까지 보았다. 어쨌든 하이 로드들은 사밧 성계의 해방을 위한 전역의 선포를 승인했고, 슬레이도는 이 성전의 워마스터로 임명되었다. 그러자 그는 쿨란 전역이 끝나자마자 사밧 성전의 공략 계획을 참모들과 함께 몇 달에 걸쳐 입안했다.
사밧 성전이 선포될 당시, 수명연장 수술을 받았기에 슬레이도의 나이는 150세였다. 성전이 선포되자, 수많은 전투함들이 쿨란을 비롯한 여러 행성들에 집결하기 시작했고, 755년의 266일, 슬레이도는 전군에 진격 명령을 내렸다.
3.2. 레드레이크 작전
당시 카오스 세력은 아르콘 나지바르라 불리는 워로드가 이끌고 있었다. 나지바르 휘하의 카오스 세력은 제국군의 의도를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었고, 제국군의 예상 침로에 이미 많은 카오스 병력이 모여들어 있었다. 사밧 성계를 공략하는 데 있어, 슬레이도는 동시다발적이고도 정교한 공격을 계획했다. 그는 이를 오퍼레이션 레드레이크라 칭했다. 제국군의 공격은 포멀 프라임Formal Prime, 온스카드Onscard, 롱 할렌트Long Halent의 세 군데로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슬레이도의 의도대로라면 이 작전은 적의 분산을 가져올 것이며, 적의 즉각적인 반격을 틀어막아버릴 것이었다.슬레이도는 포멀 프라임에 대한 공격을 직접 지휘했고, 그는 이 곳에서 카오스 마지스터 셰볼 레드핸드Shebol Red-Hand가 이끄는 광신도 집단 카리스마이츠Charismites와 맞붙었다. 그러나 강력한 저항때문에 예상외로 슬레이도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카리스마이츠는 행성의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강력하게 저항했고, 이는 슬레이도조차 예상치 못한 것이었고, 그는 화가 치민 나머지 휘하 지휘관들에게 무능하다며 괜한 악담을 퍼부어댔다. 어쨌든 756년이 끝나갈 즈음, 오퍼레이션 레드레이크의 목적은 모두 달성되었다. 오퍼레이션 레드레이크가 완수됨에 따라, 발하우트Balhaut까지의 진로는 활짝 열리는 듯 했다.
3.3. 발하우트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발하우트로 향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가 제국군을 덮쳤고, 발하우트로 도달하는 예상 시기는 슬레이도가 예상한 것보다 한참 후인 765년이었다. 발하우트에 이르기까지, 포르낙스 알레프Fornax Aleph 행성에선 아이언 스네이크스Iron Snakes의 대단한 전공이 생기는 등, 여러 영웅담도 만들어졌지만, 발하우트까지 향하는 데 걸렸던 과정은 그에게 있어 진정 만족스러웠다고 하긴 힘들었다. 제국군은 고전을 거듭하고 있었고, 성전은 질질 끌려가고 있었으며, 이 시기에 로드 밀리턴트 사이본과 헥터 드레비어와의 불화도 점점 커져만 갔다. 특히 이 두 로드 밀리턴트는 발하우트를 포기해야 한다고 계속해서 청원했다. 특히 사이본은 베르가스트Verghast, 포르티스 바이너리Fortis Binary 등을 신속하게 쳐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발하우트의 발 자만 나와도 거부했다.그러나 슬레이도는 발하우트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성 사밧의 길을 따라간다고 믿고 있었다. 발하우트는 M35에 벌어졌던 성 사밧의 성전 당시에도 가장 저항이 강력했던 행성이었다. 그들을 계승하여 성전을 치르고 있던 슬레이도에게 있어, 성 사밧과 팔토르누스는 크나큰 존경의 대상이었고, 그들에 대한 존경과 믿음은 애초에 슬레이도가 성전과 사밧 성계에 대한 재수복을 주장하게 한, 하나의 위대한 영감이나 다름없었다.
3.4. 발하우트 공방전
764년 초반이 되자 아르콘 나지바르는 제국군을 행성 파비아(Fabia)로 끌어들이려 했다. 그는 파비아에 모든 전력을 끌어모아 제국군과의 단 한번의 결전에서 승리하면 제국군을 패퇴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슬레이도 또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어찌 보면 오퍼레이션 레드레이크 이후로 제국군이 밟아온 과정은, 발하우트를 중심으로 카오스 세력을 천천히 하나의 포위망에 몰아넣는 양상을 띄고 있었고, 이는 대규모 전면전을 치르게 하기 위한 슬레이도의 계획이었다. 물론, 슬레이도에게 있어 그 대규모 전면전의 전장은 발하우트가 될 것이 자명했다. 나지바르의 의도를 파악한 슬레이도는 여러 기만 전술을 통해 자신이 파비아로 향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고, 나지바르는 이 결전을 준비하기 위해 잠시 발하우트에 들러 휘하 부대의 재정비와 보급을 행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제국군 대병력이 발하우트를 기습했고, 아르콘은 꼼짝없이 발하우트에서 제국군과 전면전을 치르게 되었다. 오퍼레이션 헬 스톰(Hell Storm)의 시작이었다.제국군은 여러 파로 나뉘어 발하우트에 각자 상륙했다. 하지만 슬레이도의 기대와는 달리 기세등등한 제국군은 상륙 초반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사이본 휘하의 기갑 부대들을 제외한 모든 병력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고, 특히 발로폴리스(Balopolis)같은 전장에서는 지휘관이 몇 번씩이나 바뀌는 대격전이 벌어졌다. 슬레이도는 올리가키(Oligarchy)를 향한 공격을 직접 이끌었고, 이 곳에서 마지스터 헤리터 아스포델과 맞붙었다. 올리가키는 굳건하고 유서 깊은 도시로 헤리터 아스포델 휘하 카오스 부대들은 슬레이도가 지휘하는 제국군을 여러번 격퇴했다. 그러나 공격 9일째가 되자 스페이스 마린을 앞세운 제국군은 결국 성문을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공격 10일째가 되자, 그는 궁전을 향한 마지막 공격명령을 내렸고, 하급 지휘관에 불과했던 마카로스의 놀라운 승전 소식을 들은 것은 바로 이 때였다. 그는 마카로스를 마샬로 진급시켰다.
슬레이도는 부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궁전을 향한 공격에서, 파워 소드[1]를 뽑아들고 선두에서 앞장섰고, 아르콘을 척살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뒤지고 다녔다. 발하우트의 함락을 직감한 나지바르 또한 슬레이도와의 대결을 위해 그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곧 둘은 조우했고, 슬레이도와 나지바르는 격렬한 일기토에 돌입했다. 슬레이도는 아르콘에 의해 치명상을 두 차례 입었으나, 결국에는 아르콘에게 마지막 일격을 날리고 그를 쓰러뜨렸다.
자세한 내용은 발하우트 공방전 참조.
4. 최후
나지바르와의 결투에서 승리했지만, 그는 치명상을 입은 채 발견되었다. 그는 죽기 전에 후임 워마스터로 헥터 드레비어도, 사이본도, 크리스톨[2]도 아닌, 발로폴리스에서 놀라운 승리를 거두어 낸 마카로스를 지명했다.그리고 성 사밧의 예지를 따라 발하우트까지 성전을 이끌어온 노장은 조용한 만족감 속에서 자신에게 지워진 짐을 내려놓았다. 발하우트에 이르기까지, 발하우트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휩싸여 부하들과 자기 자신을 수도 없이 닦달해대던 모습과는 달리...
슬레이도의 유해는 엄숙한 절차를 거쳐, 발하우트에 위치한 거대한 능에 안장되었다.
5. 평가
상술하였듯 슬레이도는 사밧 성전이 선포되기 전에 완료된 쿨란 전역에서도 훌륭한 승리를 거두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제국에 존재했던 워마스터의 군재(軍才)를 서술하는 제국측, 특히 워마스터가 종군한 해당 성전군 측 기록은 전적으로 신뢰할만한 것이 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나, 슬레이도의 사밧 성전 선포에 대한 의도 자체가 어떻게 보면 좀 뜬금없었던(나쁘게 말하면 터무니없었던) 만큼 사밧 성전이 선포되기 이전에 슬레이도가 쌓아왔떤 커리어 및 군재의 훌륭함에 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그러나 사밧 성전의 선포를 줄기차게 주장해온 슬레이도의 주장의 당위성을 파악해 보면 사밧 성전 자체에 있어서 그의 전략적 식견에는 어느 정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측면 역시 존재한다. 아무리 섹터 총독까지 발벗고 나서서 사밧 성계의 탈환 여론을 조성하는 데 열심이었다고는 하지만, 당시 세그멘툼을 비롯한 제국 전역이 몇 차례의 대규모 카오스 침략을 동시에 겪고 있었고, 개중에는 제국으로서는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카디안 게이트같은 대 카오스 최전선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임페리얼 가드 고위 지휘관들은 다른 카오스 침략을 막아내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주장했고, 사밧 성계의 탈환을 주장하는 로드 밀리턴트는 슬레이도 단 한 명 뿐이었다. 물론 로드 밀리턴트들 중에 헥터 드레비어 급의 꼴통들도 몇은 존재할 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임페리얼 가드 상급 지휘부 전체가 꼴통일 것도 아니거니와, 이러한 다수의 견해를 제쳐두고서라도 그가 임페리얼 가드 고위 사령부 내에서 얼마나 열심히 전략안을 제출하고 사밧 성전에 관한 당위성을 하이 로드들에게 타당하게 어필했든 간에, 혼자만의 주장으로 하이 로드 전원을 설득하고 성전 선포의 뜻을 관철시키기는 것은 그간 그가 쌓아온 뛰어난 전공과 정치적 수완이 없었다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애초에 성전의 선포에 있어 성 사밧과 팔토르누스[3]에 대한 슬레이도 자신의 엄청난 빠심이 정말로 크게 작용한 것은 성전군 고위 지휘부[4]라면 거진 다 알고 있었거니와, 그는 자신이 성 사밧과 팔토르누스의 길을 걷고 있다고 정말로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게다가 그런 빠심으로 줄기차게 주장해서 얻어낸 성전의 선포도, 진행도, 결과물도 그렇게 합리적이어보이지는 않다는 인상을 준다.[5] 다만 사밧 성전이 선포된 후, 뛰어난 전략가이자 전술가였던 슬레이도 역시 성전 초기 단계를 제외하곤 언제나 가득한 악재와 시행착오, 그리고 그에 따른 초조함에 휩싸여 안절부절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사밧 성전이 애초에 무리한 성전[6]이었다는 평가도, 아니면 슬레이도가 자신이 맞상대했던 카오스 야만족[7] 연맹체를 압도할만한 군재를 지니지 못했다는 평가도 모두 가능하다 할 수 있겠다.[8][9] 아니면 성 사밧에 대한 빠심에 휘둘려 이를 예측하지 못했거나, 혹은 무시했거나. 아무튼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측면의 평가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결과론적인 시각이라고만 폄하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전술적인 측면에 있어 슬레이도는 자신의 육감을 어느 정도 믿는 지휘관이었다. 그는 성전을 지휘하는 총사령관으로서 탄탄한 대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실행하는 데 능했지만, 야전 지휘관으로 전장에 나설 때에는 상황에 따라 훌륭하게 임기응변하는 것 역시 주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슬레이도의 지휘 스타일이 상당히 저돌적이라는 평이 임페리얼 가드 고위 사령부 내에서 존재했었다. 하지만 그의 후임이랍시고 올라온 자가 발하우트 공방전 이후 입안한 작전들과 그로 빚어진 참담한 결과들을 보면 그런 말이 전적으로 온당하다 할 순 없을 것이다.
6. 여담
고집세고 독선적인 성품 탓에 성전 당시 휘하 로드 밀리턴트들 중 몇몇과는 사이가 굉장히 나빴다. 헥터 드레비어를 포함한 몇몇 로드 밀리턴트들은 쿨란 전역 이후 워마스터가 된 그를 무척 싫어했다.[10] 사이본의 경우, 슬레이도는 사이본을 정말 대놓고 싫어했지만 그의 능력만큼은 신임했다. 헥터 드레비어는 순전히 배경빨로 로드 밀리턴트 자리에 오른 무능한 쓰레기 정도로 취급했으며 그가 짠 전략안은 거의 걸레짝 정도로 취급했다. 물론 헥터 드레비어와 사이본 역시 자신들을 그렇게 취급하는 슬레이도를 융통성 없고 꽉막힌 인간이라며 매우 싫어했다.소설 건트의 유령 시리즈의 시작은 발하우트 전투 이후, 그러니까 슬레이도의 사후이다. 타니스는 발하우트에서 패해 쫓겨나온 카오스 세력에 의해 파괴되었고, 커미사르 대령 이브람 건트는 이들을 맡아 워마스터 마카로스 휘하에서 싸워나갔다.
[1]
일러스트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정확히는 파워 세이버로 하이로드 오브 테라에게 하사받은 것이라 한다. 이런 파워 웨폰을 하사받는 것이 제국에서 손꼽히는 큰 영광이다.
[2]
임페리얼 네이비의 제독으로, 능력있는 지휘관이었다. 차기 워마스터 후보로써 임페리얼 네이비에서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던 인물이었다.
[3]
M35 당시 진행된 성 사밧의 성전에서 그녀를 보좌했던 전설적인 명참모. 이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4]
이는 블랙우드의 언급에서도 잘 드러난다.
[5]
실제로 성전이 계속 진행되는 중에도 성전에 종군하는 지휘관들은 물론, 제국의 각계각층에서 얻는 것에 비해 물자와 인력만 숱하게 잡아먹는 사밧 성전을 당장 관둬야 한다는 비난이 나오곤 했다. 아니, 이러한 주장은 성 사밧이 부활하고 마카로스가 몰론드 공략에 성공한 이후의 시점까지도 줄기차게 나온다. 이에 대해 성전 찬성파가 반박이랍시고 할 수 있는 말은 '니들 말대로 관두면 지금까지 죽은 병사들이랑 소모한 물자는 다 뭐가 되냐능...' 혹은 '성전을 관두라니 이 이단노무 새퀴들' 정도 뿐이었다.
[6]
사실 사밧 성전 중에 성전군 측이 아르콘을 위시한 카오스 연맹체제를 압도했던 적은 후하게 쳐봐야 오퍼레이션 레드레이크 극초반부 정도 외엔 아예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해방 전역 및 카발 공략작전 초기에 보여준
마카로스의 눈부신 기동전 역시 순전히 제국 측의 역량이라고 보기에는 새 아르콘의 부상 이후엔 성전군이 너무나도 민망할 정도로 깨지는 모습을 보여주니...
[7]
물론 어디까지나
인류제국에 비해 야만적이라는 이야기이다. 이 집단 내부에는
카오스 스페이스 마린 워밴드같은 무시못할 무력을 지닌 세력들 역시 엄연히 존재했다
[8]
단, 유념해야 할 부분이, 모든 것이 힘의 논리로 돌아가는 카오스 군세의 최정점인 아르콘과 여러가지 정치적 이해가 얽힌 세력들이 모인 성전군을 이끄는 워마스터의 능력을 단순비교하기는 조금 무리가 있다. 사밧 성전에 참전한 성전군은 여러 세력이 단 하나의 성스러운 목표를 위해 규합한 하나의 실체이지만, 그 내부에는 여러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단적으로 어느 정도 불협화음이 생기더라도 힘의 논리의 최정점에 서서 말을 안 들으면 자기 군대 끌고 가서 마구 패면 그만인 아르콘과, 제국의 여러 권력기관들의 '협조'를 모토로 성전을 수행하는 워마스터의 위치가 절대로 동일선상에서 비교될 수는 없다. 단적으로 아뎁투스 메카니쿠스만 해도 전장의 전황이 어떻든 간에 슬레이도에게 사실상의 타이탄 제공을 거부의사를 밝혀대면서 쿠사리를 놔댔고, 슬레이도는 이런 아뎁투스 메카니쿠스의 '비협조'에 분통을 터뜨리기까지 했다.
[9]
사실 이는 제국에서 으레 치러지는 연합작전들이 필연적으로 가지는 한계일 수밖에 없기는 하다. 어디까지나 성전은 그 확장판에 속한다고 보아도 큰 무리는 없다.
[10]
물론 드러내놓고 싫어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도 안 되고. 하지만 슬레이도의 성격이 저렇다보니 다른 장군들도 그를 싫어하기 시작했다. 특히 전장에서 피해가 너무 커서 전선을 유지하기가 힘든 나머지 철수하자는 장군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계속 전투를 고집해서 손실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이러니 부하들에게서 미움을 한몸에 받을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