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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미르 왕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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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1457E><colcolor=#FFF> 모라비아 공국 4대 공작 슬라보미르 Slavomi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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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 | 체코어와 슬로바키아어 |
슬라보미르 (Slavomir) |
라틴어 |
스클라가마루스 (Sclagamarus) |
|
출생 | 미상 | |
사망 | 미상 | |
재위 | 모라비아 공국의 공작 | |
871년 |
[clearfix]
1. 개요
모라비아 공국 4대 공작.2. 행적
동프랑크 왕국의 연대기인 <아날레스 풀덴세(Annales Fuldenses)에 따르면, 슬라보미르는 모라비아 통치 왕조의 일원이었다고 한다. 그는 사제를 맡았으며, 864년 라스티슬라프가 동프랑크 왕국의 군주 루트비히 2세에게 넘겨줘야 했던 고위 인질 중 한 명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870년, 라스티슬라프는 나트라 공작을 맡겼던 조카 스바토플루크 1세가 동프랑크 왕국의 종주권을 인정하고 동맹을 맺은 사실을 알게 되자 격분해 사냥을 함께 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그를 불러들인 뒤 죽이려 했다. 그러나 이 음모를 사전에 파악한 스바토플루크 1세는 라스티슬라프를 급습해 체포한 뒤 870년 11월에 동프랑크 왕국에 넘겼다.그 후 스바토플루크 1세는 모라비아 공작이 되었지만, 얼마 후 루트비히 2세의 아들이자 카란타니아 공작 카를로만이 파견한 오스트리아 변경백 빌헬름 2세와 어퍼 판노니아 변경백 엥겔샤크 1세에게 체포되어 바이에른으로 끌려갔다. 이에 모라비아인들은 슬라보미르를 새로운 지도자로 받들고 제국에 반기를 들기로 마음먹었다. 슬라보미르는 처음에는 이를 거부했지만, 거부하면 죽이겠다는 위협을 받자 결국 받아들이고 871년 반란을 일으켰다.
슬라보미르의 반란군은 압도적인 군세를 앞세워 빌헬름 2세와 엥겔샤크 1세를 타도하려 했지만 전투력에서 밀려 패배하고 모라비아의 수도로 후퇴했다. 하지만 카를로만은 자신이 가진 병력으로는 반란군을 완전히 제압할 수 없다고 여기고, 모라비아인들이 스바토플루크 1세가 살해되었다고 오해했다는 것을 감안해 스바토플루크 1세를 석방시킨 뒤 모이미르의 묘지에서 약탈했던 보물을 돌려주고 슬라보미르를 토벌하게 했다.
스뱌토플루크 1세는 동프랑크 왕국을 위해 슬라보미르를 토벌하겠다고 약속하고 모라비아의 수도 외곽으로 진군했지만, 비밀리에 슬라보미르와 협상해 자신이 모라비아의 정당한 통치자로 인정받는 대신 프랑크군을 협공하기로 했다. 프랑크군은 아무런 경계도 하지 않은 채 방심해 있다가 모라비아인들의 갑작스러운 기습과 스뱌토플루크 1세의 호응으로 인해 궤멸되었고, 빌헬름 2세와 엥겔샤크 1세는 전사했다. 이후 슬라보미르가 어찌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대 학자들은 다시 사제로 돌아갔을 거라고 추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