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스벤 오스카르 알빈 "브롤리스" 안데르손 (Sven Oscar Albin "Vrålis" Andersson) |
생년월일 | 1907년 2월 14일 |
사망년월일 | 1981년 5월 30일 |
국적 | 스웨덴 |
출신지 | 외세뷔가른 |
포지션 | 레프트 풀백, 센터 하프백 |
신체조건 | 183cm |
소속팀 | AIK 포트볼 (1928-1940) |
감독 | 바사룬드스 (?-?) |
국가대표 | 27경기 3골 (1930-1938) |
1. 생애[1]
1.1. 선수 생활
1.1.1. 클럽
안데르손은 AIK 포트볼에서 1928년에 데뷔했고 데뷔전의 상대는 GAIS였다. 그는 모든 선수 커리어를 AIK에서 보냈으며 두 차례의 알스벤스칸 우승을 차지했다.1.1.2. 국가대표
안데르손의 첫 A매치 경기는 1930년 6월 15일의 스위스전이었다. 그의 데뷔전에서 스웨덴은 스위스를 1대0으로 꺾었지만 1주일 후 열린 덴마크와의 노르딕 챔피언십에선 1대6으로 박살났다.1932년 이후 대표팀에 완전히 자신의 자리를 잡은 안데르손은 이탈리아 월드컵에도 참가했고 스웨덴의 8강 진출을 이끌었다.
그는 1936년부터는 대표팀 경기에 자주 출전하지 못했고 프랑스 월드컵 때에도 대표팀 명단에 들지 못했다. 그의 마지막 대표팀 경기는 프랑스에서 월드컵이 열리는 도중이던 6월 15일에 치러진 핀란드전이었다.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
안데르손은 선수로서 확고한 의지를 가졌고 상대 공격수들과의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사의 모습을 가진 선수였다. 강한 육체로 상대 공격수들을 터프하게 제압했으며 믿을 수 있는 페널티 키커였다. 그래서 1930년대 수비수로서는 꽤 많은 통산 28골을 넣을 수 있었다.많은 사람들은 안데르손이 부적절하게 플레이한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그와 수백 경기를 같이 뛰었고 그가 가장 멋진 방법으로 그 자신과 내기하는 것을 봤죠. 하지만 그는 한 번도 상대를 일부러 사냥하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스벤은 강하고 터프했지만 그가 가장 엄격하게 대한 건 스벤 그 자신이었습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고 그런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항상 팀 동료들에게 자극이 되었어요.
에리크 알름그렌(Erik Almgren, AIK 시절 동료)
에리크 알름그렌(Erik Almgren, AIK 시절 동료)
3. 뒷이야기
- 브롤리스(Vrålis)라는 별명은 안데르손이 상대 공격수로부터 공을 걷어내려 하면서 다음과 같이 외쳤기 때문이라고 한다. "강하게 찰 거니까 물러서!(Håll dig undan för nu smäller det!)"
- 이름 스벤과 성 안데르손은 스웨덴에서 매우 흔한 조합이라 동명이인이 꽤 많으며 국가대표 축구팀에 선발된 스벤 안데르손도 이 사람 말고 1945년생과 1963년생의 두 명이 더 있다. 그래서인지 11v11에는 스벤 안데르손이라는 이름 아래 1907년생으로 기재된 채로 세 명의 국가대표팀 커리어가 모두 들어 있다. 그나마 정보를 찾는 데 다행인 것은 그 3명이 동시대 선수들이 아니라서 커리어가 겹치지 않고 미들네임이 달라 완전한 동명이인은 아니라는 점이다.
4. 수상
4.1. 클럽[2]
- 알스벤스칸 우승 2회: 1931–32, 1936–37
- 알스벤스칸 준우승 4회: 1930–31, 1934–35, 1935–36, 193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