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50A3E5><colbgcolor=#000> 연희공략 등장인물 숭경황태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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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뉴호록 씨 (鈕祜祿 氏) | |||
배우 | 송춘려(宋春麗) | |||
민족 | 만주족 | |||
가족관계 |
아버지: 뉴호록 능주 남편: 옹정제 아들: 건륭제[1] 딸: 화안공주 며느리: 연희공략에 등장하는 다수의 후궁들 손주: 영황[2], 영련[3], 영성, 영기[4], 영용, 영종[5], 영염, 소화공주, 소유공주 등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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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지 | 수강궁 | |||
<rowcolor=#50A3E5> 품계 | 시첩 | 3품 | 2품 | 태후 |
격격 → |
희(熹)비 → |
희귀비 → |
숭경황태후(崇慶皇太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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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드라마 《 연희공략》의 등장인물.2. 상세
옹정제의 귀비이자, 건륭제의 모친으로 수강궁에 거주한다. 궁 안의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다. 처음에는 황제의 어머니치고는 적은 분량이었지만[6] 드라마가 후반부로 갈수록 비중이 급상승하게 된다.3. 작중 행적
3.1. 자금성에서 가장 고귀한 여인
여기까지는 그냥 조용하게 예불을 올리면서 가끔씩 아들, 후궁들과 이야기를 하는 귀한 신분의 할머니일 뿐이지만, 중앙절 기념 어경정 연회에서 조금씩 비중이 증가하였다. 고귀비와 납란 순설의 계략으로 박쥐 떼가 어경정을 덮치는 중에 한비가 나서서 이 상황을 수습하면서 태후의 신임을 얻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부찰 황후가 임신을 하면서 내명부의 일을 돌볼 수 없게 되자 태후는 황제에게 한비에게 내명부의 일을 맡기는 게 어떻냐며 추천하였다. 이후 고귀비 사후 귀비가 되고 부찰 황후가 갑자기 투신자살을 하면서 빈 내명부 수장 자리를 대신해 황귀비로 책봉된다[7]. 그리고 비어있는 황후의 자리를 한황귀비에게 베풀어달라며 다시 숙신의 편을 들어줬다. 숙신이 내명부의 일만 아니라 황제의 목숨까지 지킨 공로 덕분에 태후로서는 숙신이 마음에 들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까지만 해도 태후는 숙신에게 매우 우호적인 입장이었다.그러던 어느 날, 부찰 황후가 죽고 2년이 지난 후, 원명원에 방문하다가 위영락이 계략을 짜서[8] 태후를 기쁘게 해줘 수강궁에서 일하고 싶다는 영락의 청을 들어줄려고 한다. 허나 평소에 영락을 마음에 들어하던 건륭제가 그걸 막으려고 영락을 답응으로 봉하려고 한다. 이에 태후는 이왕 상을 주는 김에 귀인으로 하자고 제안하여[9], 궁녀 신분인 영락을 하루 아침에 귀인으로 만들어주고 본의 아니게 그녀의 복수도 수월하게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10] 이렇다 보니 영락으로서도 진심 반, 목적 반의 이유로 충실하게 태후에게 효를 다하였다.
3.2. 나랍 황후와의 감정 악화
그런데 이와 반대로 계후인 숙신과의 사이는 날로 벌어져갔다. 숙신은 자신과 휘발나랍 가문의 권세를 알리고 싶어서 침잠례를 하고 싶었지만 태후의 반대로 무산될 뻔 하였다. 결국 화친왕의 상소 덕분에 침잠례는 거행됐지만 이를 기점으로 태후와 숙신의 사이는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아직 비에 불과한 영락에게 은제 친잠례 도구를 주면서 영락이 황후의 바로 아래 순위라는 사실을 강조시킨 것이다.[11]그러다가 숙신의 친아버지인 나이포가 피난민을 통솔하지 못해 발생한 유혈사태로 인해 탄핵 및 하옥되는 사태가 터졌다. 숙신은 어떻게든 마지막 남은 혈육인 아버지를 살리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태후가 황제를 찾아가서 "황상, 이번 피난민의 궁휼미를 배임한 건에는 리친왕과 평군왕 등의 많은 종친들과 관리들이 엮여 있는데 그들을 모두 한 번에 처리할 수 없고, 민심의 분노가 극에 달했으니 나이포를 제물로 삼아 사건을 무마해야만 합니다."라는 조언을 하면서 끝내 암살자를 감옥으로 보내 나이포를 독살시켰다.[12]
이 사실을 알아차린 숙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분노를 터트렸다. 가뜩이나 숙신은 자신의 무능함 때문에 동생 상수와 어머니 낭가씨를 잃다 보니 필사적으로 아버지를 지키고 싶었는데 태후의 말 한 마디 때문에 아버지가 죽게 되니 그 분노가 태후에게로 향하는 것은 당연한 일. 이에 숙신은 자신을 찾아온 황제의 면전에서 태후의 조카 이야기까지 꺼내며 태후를 비난하였다. 물론 이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그런 것이었다. 사실 이번 피난민 관련 사태에서 구휼미를 횡령한 사람들 중에서는 태후의 친정 조카도 있었다. 조카며느리가 입궁하여 울고 불고 날뛰니 태후로서는 친정 조카를 살리려고 그런 게 아니냐는 숙신의 울부짖음에 황제는 태후가 정말 그런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의 싹이 텄다.
3.3. 가흥 전씨에 관한 소동
이에 숙신은 태후를 쳐내려는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태후가 임명한 내무부 총관 오서래를 먼저 쳐낸 것을 시작으로 자신의 심복인 원춘망을 그 자리에 심었다. 그리고 원춘망이 그 오서래를 죽이려고 할 때, 오서래가 보관 중인 황제의 유모인 온숙 부인과 관련된 서신을 얻어냈다. 그 서신의 내용은 바로, 사실 태후 뉴호록씨는 황제의 생모가 아니며 진짜 생모는 가흥 전씨라는 실로 무시무시한 진실이 담겨졌다.한편, 숙신은 수강궁으로 온 화친왕이 친모인 유태비의 궁으로 오게끔 유도하였고, 유태비의 유품 중, 그 서신을 찾아내게 하였다. 이를 발견한 화친왕은 "어머니께서 오랫동안 태후에게 유린당하면서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부적을 가지고 있었을 줄은 꿈도 꾸지 못했는데... 아니, 이건 태후의 죽음을 재촉하는 부적이야!"라는 말을 하면서 이를 고스란히 황제에게 전달하였다. 숙신은 더불어 전말을 알고 있는 전씨의 형제인 예부시랑 전정원, 즉 황제의 친외숙을 마상 사고로 죽이고, 이를 태후가 진상을 가리려고 꾸민 짓으로 만들어 태후를 정말 끝까지 몰아붙였다.[13]
결국 태후는 충격에 받고 중풍에 걸리게 되어 쓰러지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런데도 숙신은 태의인 장원판을 협박하여[14] 현상 유지만을 위한 약 처방을 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이로써 태후와 영락은 정말 벼랑 끝까지 몰리게 되었다. 허나 영락은 태후를 모시는 류상궁을 통해 한때 태의였지만 모종의 이유로 출궁하여 민간의 병자들을 돌보던 엽천사를 궁녀로 변장시키면서까지 불러들여 태후를 진료하게 하였다.
한편, 영락은 평소에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대한 경귀인과 손을 잡고, 황제에게 기윤이라는 사람이 쓴 열미초당필기(閱微草堂筆記)라는 기담에 관한 책을 보여주면서 태후가 미처 밝힐 수 없었던 얘기들을 해줬다. 가흥 전씨가 살아있었던 시점에서 산서에 큰 가뭄이 들어 전씨 부인이 황자 시절의 옹정제와 함께 미행에 나섰는데, 형제들과의 치열한 황위 다툼으로 수차례 위험한 함정에 빠졌고, 그 와중에 수행원과 흩어지면서 옹정제가 화살을 맞아 다쳤다고 한다.
당시 옹정제는 자기를 죽이려는 자객을 피하기 위해 깊은 산으로 들어가지만, 하필이면 태항산에 숨어있던 도적들을 만났다. 그래서 전씨 부인은 옹정제를 농가에 숨겨주고 자신이 옹정제가 입던 옷으로 갈아입어 홀로 쫓아오던 반군을 유인했다고 한다. 전씨 부인이 진짜 도적에게 붙잡혀서 강간을 당하였거나 아니면 정절을 위해 자진했거나 모두 옹정제를 보호하기 위해서였지만, 이 일이 퍼지면 전씨 부인은 둘째 치더라도 그녀에게서 태어난 황제 또한 온갖 의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태후는 그런 황제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걸 감수하고 진실을 숨기려고 한 거라며 경귀인이 말하였다.
그리하여 경귀인은 황제에게 이 사실을 믿을 수 없다면 옹정제의 곁을 보필한 측근 시위 왕천일[15]을 부르라고 하였고, 황제는 그를 불러서 진상을 파악하였다. 그리고 전씨 부인은 선황을 구하였지만 끝내 정절을 지키지 못했고, 이에 선황의 체면을 잃게해 자진하라는 명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16]
그렇게 황제는 다급하게 수강궁으로 달려와서 태후를 의심하고 불효를 저지른 것에 사과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태후는 위영락을 데리고 원명원으로 출궁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빠르게 말을 타고 그녀를 쫓아갔다. 그러다가 중간에 기다리고 있던 경귀인과 마주쳐서 그녀로부터 태후와 전씨 부인에 관한 말을 전해들었다.
옹정제는 평생 아버지를 음해하고 어머니[17]를 핍박하였으며 형제들을 죽인 악명을 감당하며 살아왔으니 황태자에겐 명분이 많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는 전씨 부인을 애석하게 여기지 않는 건 절대 아니지만, 건륭제가 온갖 음해를 받으며 창피를 당하게 둘 수는 없게 하기 위해 전씨 부인을 죽인 거라고 한다. 얼마 후, 태후가 옹정제의 명을 받아 독주를 들고 전씨 부인을 찾아갔는데 전씨 부인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태후께 세번의 절을 올리고 흔쾌히 죽음을 받아들였다. 따라서 태후는 전씨 부인의 절을 받아준 것은 아주 무거우며 중요한 부탁을 받은 것이니 비록 자기가 직접 낳은 것은 아니지만 친어머니처럼 건륭제의 모든 일생을 보호해준 거라고 한다.
그래서 황제는 다시 태후의 가마를 쫓아가면서 부디 회궁해달라며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절하였지만, 태후는 그냥 쌩까고 원명원으로 가버렸다. 여기서 놀라운 진실이 숨겨져 있는데 사실 태후는 중풍에 걸린 적이 없었다. 나랍 황후의 경계심을 피하기 위해서, 그리고 황제의 미안한 마음을 자극하기 위해서 병에 걸린 척만 했던 것 뿐. 게다가 태후는 자기 마음에 쏙 드는 영락이 화를 입지 않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그녀와 함께 이 일을 꾸민 것이다.
또한 이 모든 것은 사실 태후의 미화였다. 전씨 부인이 죽어서 뉴호록씨가 건륭제를 양육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이 시절의 뉴호록씨는 방계 출신인 탓에 옹정제의 격격에 불과하였고, 왕부 내에서 직위가 낮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다른 고귀한 가문 태생의 복진들을 제쳐두고 건륭제를 키운 것은 모종의 음모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18] 그리고 태후는 영락에게 "그래서 전씨는 어떻게 됐냐고 묻고 싶은 거냐? 어떨 거 같으냐?"라는 말을 하면서 자신이 전씨를 죽였다는 원인제공자라는 뉘앙스를 풍겼다.[19] 허나 어쨌든 영락은 태후 덕분에 목숨을 건졌으므로 더는 이 사실을 캐묻지 않고, 태후와 같이 3년 동안 원명원에 머물렀다.
3.4. 환궁, 그리고 침벽
태후는 위영락과 함께 3년 동안 거주하던 중, 태후는 영락에게 "인생이란 마치 물을 거슬러 가는 배와 같으니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퇴보하게 되어 있단다. 지금이야 내가 있어서 너를 보호해주는 거지만 만약 언젠가 너 혼자만 남게 된다면 그럴 수 없어."며 거듭 먼저 환궁하라며 권하였다. 그런데 때마침 새로운 후궁이 황제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영락이 위기의식을 느꼈는지 먼저 환궁하였다.그리고 얼마 후, 태후도 환궁하였고 태후 소생의 딸인 화안공주의 제사를 치르기 위해 후궁들이 의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새로운 총애 랭킹 1위인 침벽의 등장을 경계하던 나랍 황후, 가빈, 서비, 그리고 위영락이 젊은 나이에 요절한 태후의 친딸 화안공주를 이용하여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이들은 바로 태후의 평소에는 온화하고 자애로우나 먼저 죽은 화안공주의 일에 대해서는 굉장히 민감한 성격을 이용하려는 것이다. 황제가 증언하기를, 태후는 예전에 어떤 궁녀가 실수로 화안공주가 남긴 유품인 장난감을 망가트리자 격노하여 그 궁녀에게 장살을 명했다고 한다. 따라서 순빈이 화안공주의 제사상에 필사한 지장본원경을 올릴 때, 화재를 일으키는 장난질을 치면서 미리 매수해놓은 살만 무녀를 이용하려는 것.
그리하여 화안공주의 제삿날에 순빈이 화안공주의 상에 경전을 바칠 때, 불이 붙자 살만 무녀는 저 요녀 때문에 태후가 평생 선행을 하면서 쌓아온 공덕은 허사로 끝나고, 화안공주가 서방극락정토로 환생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여기까지는 예정대로 다 되는가 싶었다. 하지만 억울하게 죽을 순빈을 딱하게 여긴 영락이 중간에 배신을 때려서 순빈이 화안공주의 환생자라는 거짓말을 하였고, 태후는 이걸 믿었다.[20]
그런데 알고 보니 순빈이 황제를 살해하려는 반역자라는 것과 화안공주의 환생자가 사실 영락이 꾸민 거라는 것에 분노하여 영락을 벌주려고 했지만 때맞춰 영락이 회임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넘어간다. 그래서 7황녀 소화공주와 9황녀 소유공주를 낳은 영락이 얼마 되지 않아 의도적으로 태후에게 7황녀의 양육을 맡기게 하면서 다시 영락과의 사이가 좋아진다.[21]
3.5. 최종 국면
순빈의 일이 일단락되고, 위영락이 나랍 황후와 평화 협정을 체결한지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원춘망의 음모로 5황자 영기가 총기 사고로 절름발이가 되었고, 15황자 영염이 중독되는 사고가 터지자 태후는 나랍 황후를 불러서 질책하였다. 그동안 두 사람이 서로 쌓아둔 악감정 문제도 있지만, 황후는 중궁으로서 황손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기에 그랬던 것.그러다가 항주로 유람을 떠나던 중에 나랍 황후가 화친왕과 결탁하여 반역을 일으키는 상황이 발생한다. 허나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알고있던 황제와 부찰 부항에 의해 반역은 진압되고, 태후와 황제 모두 무사히 탈출해 화친왕과 숙신 앞에 보란듯이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윽고 모든 흑막이 원춘망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원춘망은 자신이 선황 옹정제의 숨겨진 아들이었기에 황제와 태후에게 복수를 계획했다고 밝힌다.
하지만 태후는 마지막으로 남겨진 원춘망에게 넌 사실은 애신각라씨가 아니라는 일침을 가하면서 그를 미치게 만들었고,[22] 황제에게 원춘망을 살려주자는 진언을 하면서 원춘망은 도로 신자고로 쫓겨나버렸다.
3.6. 연희공략: 금지옥엽
속편에서도 간접적으로 등장하였다. 위에서 언급하듯 속편의 주인공이자 위영락의 딸인 7황녀 소화공주를 키운 사람이 바로 태후다. 그런데 하도 소화공주를 오냐오냐하며 키우다 보니까, 그녀의 버릇이 나빠지게 만든 원인을 제공하였다. 9공주와 함께 원명원에 갔다는 설정으로 등장하지 않았다.4. 성격
여인이 자금성에 들어오면 아무리 존귀하고, 아무리 똑똑해도 마지막에는 결국 다 변질되기 마련이지.
태후는 처절한 권력 투쟁으로 황제로 즉위한 옹정제의 아내였고, 그렇다 보니 옹정제의 아내들도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 온갖 암투를 벌여왔다. 지금의 태후가 태후의 자리에 오른 것은 옹친왕부에서부터 계략을 벌인 덕분인데 옹정황제의 여인의 견환처럼 끝까지 살아남아서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고 있는 것을 보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계략 능력을 지니고 있다.
다만 평소에는 철저하게 이러한 모습을 숨기면서 열심히 불공을 올리고, 부처님처럼 자애로운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젊어서 요절한 친딸인 화안공주에 관해서는 쉽게 평정을 잃는다. 순빈이 위영락을 골로 보내기 위해 자해 소동을 벌이자 위영락을 연금시킬 때, 황제가 태후를 찾아가서는 "어마마마, 침벽은 화안이 아닙니다."라고 하자 태후는 "제가 화안이라면 화안인 거예요."라고 우겼을 정도다.
또한 자기 손주들에게도 다소 맹목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편.[23]물론 황실의 어른으로서 당연히 황손들을 생각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자기가 직접 키운 소화공주가 너무 오만하게 자란 것을 보면 손주 교육을 잘못 시켜도 한참 잘못 시킨 책임에서 벗어나긴 힘들다.
5. 기타
태후가 황제를 부를 때는 황샹(황상)이라는 말을 아예 안 쓰고, 황디(황제)라는 말을 쓴다. 그 이유는 명나라부터는 아랫사람들이 황제를 부를 때에는 폐하라는 대신, 황상이라는 말을 많이 쓰기 시작하였고, 청나라 또한 그런 표현을 쓰게 된 것이다. 하지만 태후는 신분상 윗어른이기 때문에 높임말인 황상을 안쓰고 황제라고 부르는 것이다. 옹정황제의 여인에서도 태후는 황제에게 황상이 아닌 황제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1]
다들 생모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건륭제의 생모는 가흥 전씨다.
[2]
대황자라고 언급은 되지만 직접적인 출연은 없다.
[3]
작중 시점 이미 요절했다.
[4]
나중에 원춘망에 의해 총기사고를 당하고, 치료 과정에서 죽는다.
[5]
순귀비가 장춘궁에 불을 질러서 죽인다.
[6]
예불로 인해 자주 수강궁을 비우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다가 21화에서 장춘원에서 예불을 마치고 다시 환궁하였다.
[7]
황귀비로 책봉하는 장면은 없으나 황귀비 책봉도 태후의 입김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8]
새로 꾸며 봉황처럼 보이게 하고 잉어가 寿자로 헤엄치게 만들었다. 태후가 이를 완전히 믿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상서로운 일들이 일어나니 자신이 수년간 불공을 드린 보람이 있다며 아이처럼 기뻐한다.
[9]
불순한 의도가 있을거라고 믿은 황제와는 달리 태후는 위영락이 자신을 기쁘게 해주기 위한 노력이라며 순수하게 받아들였다. 이 때 좋은 첫인상 덕분인지 순빈일로 잠시 사이가 서먹해졌을 때를 제외하면 시종일관 영락을 예뻐해준다.
[10]
참고로 갓 후궁이 된 여인에게 가장 높이 오를 수 있는 위치는 귀인이다. 당장
납란 순설이 만주족 팔기 귀족들 중에서도 가장 명문에 속하는 납란 씨에 속하는데도 귀인으로 시작하였다.
[11]
참고로 청나라에서는 오직 황후만이 금제 도구를 사용할 수 있고, 황귀비와 귀비는 은제 도구를 사용할 수 있으며 나머지는 청동제 도구만을 사용할 수 있다.
[12]
다만 태후의 조언이 아니더라도 황제는 나이포를 몰래 죽일 생각이었다. 나이포는 충성스럽고, 근면성실한 신하지만 무능하고,
황후의 아버지라는 이유만으로 분에 넘치는 자리에 있었던 것. 이 때문에 황제는 잠깐의 고민을 하면서 숙신의 부탁을 받아들이는 척, 흑룡강 유배로 끝내는 척하면서 나이포를 은밀히 처리하려고 했지만 태후가 먼저 손을 쓰면서 그럴 필요도 없게 되었다.
[13]
숙신은 이때 태후와
위영락을 같이 쳐내려고 했다. 위영락이 황제의 총애를 잃었지만 마지막 남은 뒷배인 태후마저 영락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면 영락에게는 그야말로 꿈도 희망도 모두 사라지는 셈이 된다.
[14]
장원판은 아들이 젊은 날에 요절하고, 손자 하나만 있는데 그 손자를 이용하여 협박한 것이다. 그렇지만 태후는 자금성 짬밥을 허투로 먹은 게 아닌지 처방전을 보지도 않고 바로 장태의가 수상하다고 여겼다. 다만 엽천사의 말에 의하면 심한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선 부작용도 쎈 강한 약을 써야하난데 태후는 너무 귀하신 몸이라 역으로 너무 쎈 약은 장태의가 아니라 다른 태의였어도 감히 쓸 용기가 없었을 거라고 평했다.
[15]
왕천일은 단순히 근위병 역할만 했던 게 아니라
황제에게 기마술과 활쏘기를 가르쳐준 스승 격의 인물이다. 게다가 황제가 어린 시절에 말썽을 피우자 대신 벌을 받기도 했으니 황제로서는 그를 각별히 여기는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16]
그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황제는 전씨 부인이 왕부로 돌아오기전 죽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옹정제와 함께 왕부로 돌아왔다하니 태후가 끝까지 자신을 속였다며 크게 화를 냈었다. 하지만
자기 아버지가 자신의 생모를 죽이게 만들었으니 멘탈이 터진 것도 무리는 아니다.
[17]
덕비 오아씨를 말한다. 실제 역사에서도 옹정제는 친모인 오아씨와 매우 사이가 안 좋았다.
[18]
당장 자금성의 후궁들도 빈 계급이 되어야만 자기가 낳은 자식을 양육할 자격이 존재한다.
[19]
정황상 태후가 옹정제에게 전씨 부인을 죽이라 설득했을 가능성이 높다.
[20]
그전까지만 해도 태후는 순빈이 미모로 건륭제를 미혹한다고 생각해 못마땅하게 여기던 와중에 화안의 제사상에 화재 사고가 터지자 순빈을 죽이려고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를 바꾼 것. 그만큼 태후는 화안공주를 소중히 생각한 것이다.
[21]
건륭과 영락이 이 일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보면 영락은 화안공주의 일로 인한 죄책감과, 본인이 건강이 좋지 않으니 자식들을 위해 든든한 뒷배를 만들어주고 싶어 공주들을 태후에게 보낸 듯 하다. 태후는 이에 보답하듯 두 공주를 매우 아꼈고 황후마저 함부로 이들에 대해 코멘트하지 못할 정도였다.
[22]
이 때 행동이 조금 의미심장한데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황후에게 호통칠 때와는 달리 원춘망을 호통칠 때는 지속적으로 시선을 피한다.
[23]
황후가 공주들에게 예절교육을 시켜야한다는 말투로 말하자 바로 불편한 기색을 보이며 "감히 어떤 년놈들이 우리 궁의 공주들에게 예절을 모른다는 헛소리를 하는지 두고 보자"며 황후를 아닥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