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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7 13:52:37

숙비 악이덕특씨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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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청 황제 · 역대 청의 황후
※ 기록이 있는 인물만 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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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선통제의 후궁
숙비 | 淑妃
파일:숙비 악이덕특씨.png
생몰년도 <colbgcolor=#fff,#1f2023>1909년 12월 20일 ~ 1953년 9월 17일(43세))
시호 숙비(淑妃)
지위 숙(淑)비
악이덕특 문수(鄂爾德特 文綉)
가계 부친 단공(端恭)
부군 선통제 (1922-1931)
유진동(劉振東) (1947-1953)
자녀 슬하 자녀 없음

1. 개요2. 생애3. 여담4. 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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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나라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의 후궁이다. 한국한자명으로는 악이덕특 문수, 서양에서는 이름만 따서 원슈(Wenxiu)로 알려져 있다.

2. 생애

에르더트(이것의 만주어 발음을 한자로 옮긴 것이 악이덕특이다) 씨는 청나라에 최초로 귀부한 몽골 귀족으로, 이 부족장은 청나라 내내 최상위 귀족으로 대접받았다.

에르더트 원슈가 3살 때 청나라는 망했고, 8살때 소학교에 들어갔다. 그녀는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서양식 교육을 받았는데, 공부를 꽤 잘했다고 한다. 중문 이름은 부옥방(傅玉芳:푸위팡).

푸이가 황제에서 퇴위한지 10년 후인 1922년 청나라의 옛황실은 배우자를 공모했는데, 여러명의 옛 청나라 귀족들의 딸이 지원했다. 이때 고불로 완룽을 정실, 에르더트 원슈를 후궁으로 선택해 결혼했다. 직첩은 숙비(淑妃)였다. 전통적인 간택 방식과 달리, 후보군의 사진을 선통제가 보고 고르는 방법으로 간택받았다. 당시 그다지 나이가 많지 않은데다가 여자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대충 선택한 것이며, 여성적으로 생긴 완룽을 더 총애했다고 한다.

장훈복벽에 주도적으로 가담해 자금성에서 추방되어 톈진으로 거쳐를 옮겼는데, 자금성에서는 원슈와 완룽은 다른 건물에 살았기 때문에 충돌할 일이 없었지만, 톈진 자택은 넓지 않아 푸이의 정비인 완룽과 충돌하는 일이 잦았다. 특히 푸이와 완룽은 2층에서 같은 방을 쓰고, 원슈는 1층의 독방에서 기거했는데, 원슈는 푸이에게 자신과도 밤을 보내야한다고 주장했으나, 푸이는 이를 거절했다. 이에 견디지 못한 원슈는 1931년에 이혼했다. 푸이는 원슈가 이혼후 재혼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거액의 위자료를 원슈에게 지급했다. 하지만 이 위자료는 원슈의 친척들이 모두 가져가 원슈는 빈털털이가 되었다.

그리하여 먹고살기 위해 다양한 직업을 거쳤는데, 교사, 길거리 담배 행상, 신문사 교정원 등 수시로 직업을 바꿔야 했다. 이는 언론에 의해 후궁 출신임이 밝혀져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 역사상 교사를 역임한 유일한 황실 후궁이다.

말년에 대해서는 두 가지 주장이 있다. 첫 번째는 이혼을 두 번 했다는 주장이다. 푸이와 이혼한 이듬해인 1932년 지린에서 류전둥(劉振東)과 정식 재혼하여 톈진으로 건너갔으나 3년 후 1935년 류와도 이혼하고 이후 상하이에 거주하였다가 그곳에서 병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의 설보다는 아래의 두번째 설이 정설이다.

재혼 후에는 죽을 때까지 원만하게 살았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류전둥과 재혼한 시기는 1947년이며, 류전둥이 렌트카 사업을 하자 전업주부가 되었다고 한다. 국민당 소속 군인인 류전둥은 당시 40대 노총각으로 지인의 소개를 받아 공장 노동자인 한 여성과 몇 달 간 교제한 후 결혼식을 올렸다. 아내는 지식이 많고 영어 회화가 유창하여 평범한 여성은 아닐 것이라고 짐작해 왔지만, 알고 보니 아내의 정체는 푸이의 후궁이었던 원슈였다는 것이다. 어쨌든 둘은 사이가 좋아서 화목한 결혼 생활을 했으나 원슈가 집에서 심근경색으로 급사하면서 류전둥은 홀아비가 되고 이후 류전둥은 재혼하지 않고 홀로 살다고 10년 후에 아내 곁에 가게 되었다고 한다. 링크

3. 여담

한 세기 전 인물인데도 인터넷에서 사진을 검색해 보면 사진을 찍는 포즈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한 마디로 엽사의 원조격 인물.

물론 이러한 사진들의 대부분은 십대 중반 청소년 시절의 모습이긴 하지만, 당시에는 청소년들이라도 사진은 근엄하게 찍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더군다나 체면을 중시하는 황실 인물인 점을 생각하면 격식을 따지지 않는 파격적인 성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파일:어르더트.jpg

이러한 사진에서 엿볼 수 있듯이 평소 성격은 유쾌했다고 한다. 이렇게 보여지는 성격상 전직 황제의 세컨드로 있기 보다는 싱글의 삶을 택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성격이 완룽과 많이 부딪치는 원인이기도 했을 것이다.

4. 매체에서

남아 있는 사진을 보면 정석 미인과는 거리가 먼 외모이나, 정실인 효각민황후 완룽이 질투했다는 증언이나 기록 때문인지, 완룽 역할을 맡은 배우에 뒤지지 않는 미녀 배우가 연기한다. 물론 효각민황후 완룽은 시대를 초월하여 미인으로 평가받는다.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는 오군매(미국명 비비안 우)가 연기했다. 오군매는 1990년에 피플지가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50인에 선정되었다. 영화에서 그녀가 이혼하고 떠날 때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Rain'이라는 곡은 매우 유명하며 대한민국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긴장감을 줄 때 배경음악으로도 많이 쓰인다.

원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중국 드라마 말대황비에서는 청순한 이미지의 미녀 배우 장근근이 연기했다. 이 장근근의 남편이 바로 신삼국에서 조조 역으로 유명한 진건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