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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03 01:25:10

수단 공화국-남수단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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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 남수단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전근대2.2. 19세기2.3. 20세기2.4. 21세기
3. 영토 갈등4. 문화 교류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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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수단 남수단의 관계에 대한 문서다. 양국은 아프리카 연합 회원국이지만, 역사적인 이유로 갈등이 존재했다. 양국은 영국의 지배와 영향으로 영어도 사용되고 있다. 영토분쟁이 존재한다.

2. 역사적 관계

수단과 남수단은 고대부터 나일사하라어족 민족들이 거주하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지리적, 역사적인 이유로 양 지역의 문화와 역사, 사회는 큰 차이가 벌어지게 되는데 건조지대이면서 동시에 북부의 이집트와 인접한 북수단은 이집트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게 된 반면, 열대 우림 지대에다가 해안과도 떨어져 있던 남수단 지대의 경우 외부와의 교류가 제한될 수 밖에 없었다. 북수단의 주요 주민 누비아인들은 나일사하라어족에 속하는 민족 집단이었으나 수천여 년간 이집트인, 아랍인들과 교류한 결과 오늘날 인구 대다수가 아랍어를 사용하는 등 아랍화되었으며, 반면 남수단의 딩카족 누에르족들은 북수단의 아랍화/이슬람화된 누비아인이나 바까라족 등과는 차별화된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2.1. 전근대

수단은 상이집트와 맞닿아있는 이유로 고대부터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던 지역이었다. 청동기 시대 찬란한 문명을 자랑했던 쿠시 왕국이 대표적이다. 수단 북부의 누비아인들은 이집트와의 교류의 영향으로 언어적으로 아랍어를 사용하고 아랍화된 반면, 아랍인 상인들이 침투하기 어려웠던 남수단 열대 사바니 지대 일대에는, 나일사하라어족 유목민들이 전통적인 방식대로 소를 치며 유목 생활을 영위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전통적으로 이들은 반농반목 사회를 유지하며 유목을 하지만 기마 유목민은 아니다. 기마 유목민들이 양을 주로 키워 고기와 젖을 먹는 데 반해 나일사하라어족 유목민들은 소를 주로 키우며 소를 죽여 고기를 얻는 대신 소를 죽이지 않고 상처를 내 피를 마시며, 우유도 많이 마신다. 소가 재산과 권위의 상징이기 때문에 소고기에 대한 터부가 남아있으며, 육류는 대부분 사냥으로 마련한다. 아랍인 노예 상인들이 정기적으로 남수단의 여러 부족들을 습격한 것으로 보이지만 아랍인들은 이 지역의 부족민들을 절멸시키는 수준으로 체계적인 약탈까지는 하지 못했다.

맘루크 왕조가 영내 베두인들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상당수의 베두인들이 이집트를 떠나 남부 수단으로 탈출하는데 이들은 수단 서부의 유목민 집단 바까라족의 기원이 되었다.

북부의 이슬람화된 누비아계 부족들의 영향으로 남수단과 북수단 사이 중간 지대 중에서도 서부에 해당하는 다르푸르 지역에 거주하는 푸르족들이 다르푸르 술탄국을 건국하였다. 푸르족들은 아프리카의 전통적인 조(식물), 기장(식물) 농사 대신에 밀 농사를 짓고 밀가루로 만든 빵을 먹기 시작하였으며, 왕족들을 중심으로 한 초기 형태의 봉건제 사회를 확립하였다.

아랍인 노예 상인들의 지속적인 약탈로 남수단의 주요 민족 집단이었던 쉴룩족이 몰락하고 그 빈자리를 딩카족 누에르족이 채우게 되었다.

2.2. 19세기

여러 군소 왕국들과 부족 집단으로 분열되어 있던 북수단과 다르푸르 지역, 그리고 남수단은 메흐메트 알리의 이집트군이 정복함으로써 통일되었다. 수단이라는 어휘는 아랍어로 원래 흑인이라는 뜻이다. 수단이 국명이 된 이유는 이집트의 수단 정복으로 앵글로-이집트 수단이 들어섰고, 해당 지역이 독립하면서 수단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2.3. 20세기

수단이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제1차 수단 내전이 발발하였고, 내전이 수습된 지 몇 년 안 가 남수단에 샤리아 법이 강요된 것을 계기로 제2차 수단 내전이 발발하였다. 오마르 알바시르 대통령의 독재하에서 남수단에서 탄압과 학살이 심화되었다. 이에 남수단에선 바시르 정권에 대항하기 위해 독립군이 결성돼 바시르 정권과 내전을 치렀다. #

2.4. 21세기

2011년에 남수단은 수단에서 독립했다. # 7월 9일에 바시르 대통령은 남수단의 독립을 축하했다. # 7월 14일에 수단 의회는 수단에 거주하는 남수단인이 남수단 국적을 취득할 경우, 수단 국적을 말소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 9월 19일에 양국은 국경검문소를 세우기로 했다. # 10월 8일에 남수단 대통령이 수단을 처음 방문했다. #

2012년 3월 27일에 수단과 남수단 사이에서 국경분쟁이 일어나자 바시르 대통령은 남수단 방문을 취소했다. # 남수단의 기드온 가트판 정보부 장관은 수단군이 벤티우 지역에 있는 유전 근처에 폭탄 3개를 떨어뜨리는 등 공습을 감행했다고 밝혔다. # 4월 4일에 남수단측은 수단군의 전투기를 격추했다고 주장했지만, 수단측은 부인했다. # 4월 18일에 바시르 대통령은 남수단에 선전포고를 했다. #1 #2 4월 21일에 바시르 대통령은 남수단에 송유관 재개통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 이에 따라 양국간 유전 분쟁이 격화됐다. # 4월 28일에 수단 군부는 남수단을 도운 혐의를 받고 있는 외국인 3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 유엔의 중재로 양국은 잠시 휴전했지만, 다시 양국간에 분쟁이 일어났다. # 5월 28일에 수단군은 남수단 국경의 분쟁지역에서 철수한다고 밝혔다. # 8월 4일에 수단과 남수단을 전면전 직전까지 끌고 갈 정도로 첨예했던 송유관 사용료 분쟁이 타결됐다. # 9월 26일에 양국은 비무장지대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 10월 7일에 바시르 대통령은 남수단 국경지역을 개방하기로 남수단측과 합의했다. #

2013년 1월 19일에 양국은 국경지대에서 군대를 철수시키는 방안을 두고 협의를 진행했지만, 협의는 결렬됐다. # 3월 11일에 남수단의 살바 키르 대통령은 비무장 지역을 설정하기 위해 남수단군에 수단 접경 완충지대에서 철수하라고 명령했다. # 3월 12일에 남수단은 수단에 석유 수출 재개를 진행했다. # 4월 12일에 바시르 대통령이 남수단을 처음 방문했다. # 6월 10일에 남수단측은 남수단 영토에 수단 군 병력 3,000여명이 무단 침입했다고 밝혔다. # 9월 3일에 바시르 대통령은 남수단의 석유 송유관을 파괴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

2014년 1월 6일에 바시르 대통령이 남수단 정부와 반군 간 유혈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남수단을 방문했다. #1 #2 그리고 양국은 유전지대 합동군 병력을 파견하기로 합의했다. # 11월 11일에 수단측이 남수단의 식량 지원을 하자 유엔이 환영의 뜻을 밝혔다. #

2015년 2월 26일에 유엔측은 수단, 남수단에 아비에이 분쟁 해결을 촉구했다. # 6월 13일에 유엔 난민기구는 남수단 국민 14,000명 이상이 2주일 동안 수단으로 피난했으며 이는 남수단의 석유 생산 지역에서 일어난 전투 때문이라고 밝혔다. #

2016년 1월 28일에 바시르 대통령은 남수단과의 국경을 개방한다고 밝혔다. # 리크 마차르 전 부통령이 수단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고 수단 정부가 발표했다. #

2017년 2월 26일에 남수단에서 기근이 일어나자 남수단에서 30,000명이 수단행을 선택했다. #

2019년에 바시르 대통령이 물러난 뒤, 남수단의 살파 키르 대통령은 수단의 여러 반군 조직 지도자들을 초청해 협상의 로드맵을 작성했다. #

3. 영토 갈등

양국은 전술했다시피 영토갈등이 존재한다. 그리고 수단과 남수단 양국간에 국경의 유전을 두고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

2013년 10월 28일에 수단과 남수단의 분쟁지역인 아비에이에서 주민들이 수단/남수단 귀속 투표를 진행했다. #

2017년 7월 22일에 아비에이 지역에서 벌어진 무력 충돌로 8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을 당한 뒤 유엔 아비에이주둔 임시 보안군 사령부는 양측에 즉각 전투행위 중지를 명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

4. 문화 교류

남수단 공용어 역할을 하는 주바 아랍어 수단 아랍어의 영향으로 생겨난 언어이다. 하지만 남수단은 독립 이후 수단의 문화적 영향력을 줄이고 독립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차원에서 주바 아랍어를 아랍 문자 대신 로마자로 표기하는 정책 및 주바 아랍어를 영어나 딩카어로 대체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5.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