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5월 1일 ~
1. 소개
태국의 정치인. 흔히 칭호인 "훈잉(คุณหญิง)"을 따 "훈잉 수다랏"이라고 부른다.2. 생애
방콕에서 태어났으며, 부친은 나혼 라차시마 주의 국회의원을 지낸 적이 있다. 방콕의 성요셉 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쭐랄롱꼰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부동산 기업인인 솜요스 릴라푸냘레르트(Somyos Leelapunyalert)와 결혼하여 슬하에 3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3. 정치 활동
1991년 방콕 12번 선거구의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1992년 재선에 성공했다. 재선 이후 추안 릭파이 총리 밑에서 부대변인으로 등용되었다. 추안이 민주당 소속이었지만, 수다랏은 민주당이 아닌 도덕역량당[1]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민주당과 도덕역량당이 연정을 구성하고 있었으며, 추안은 1994년 수다랏을 교통부 차관으로 등용했다.1995년 반하른 실파아르차가 총리에 오르자, 반하른 밑에서 내무부 차관을 지냈다. 이 시절 방 나 고속도로 건설이 11개월이나 지연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정부의 대표적인 흑역사로 남게 되었다.
도덕역량당은 이후 기업인 출신의 탁신 시나와트라가 접수하게 되고, 1996년 총선 결과 수다랏은 도덕역량당의 유일한 국회의원 당선자가 되었다. 2년 후 탁신이 타이애국당을 창당하면서 여기에 합류하게 되었으며, 당의 부대표에 올랐다. 이후 2001년 공중위생부 장관에 등용되었으나, 스캔들에 휘말리다가 2005년에 물러났다. 이후 농업협동부 장관에 임명되었으나 1년 만에 쿠데타로 내각이 붕괴되면서 자연스레 물러나게 되었다.
애국당이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을 받아 해산되면서 동시에 111명의 의원에 대한 피선거권을 박탈했는데, 수다랏도 이 중 하나였다. 이에 따라 2011년까지 정치 활동이 금지되어 있었다. 애국당 해산 이후 일부 인사들이 태국인당을 창당했고, 탁신의 여동생인 잉럭 시나와트라가 태국인당 소속으로 총리에 올랐지만, 수다랏은 별 행보를 보이지도 않았다. 심지어 프라윳 찬오차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렇게 잠적한 듯 싶었지만... 2019년 총선을 앞두고 태국인당의 총리 후보 중 하나로 내정되었다. 태국인당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며 재집권을 노리고 있지만, 그 사이 프라윳 일대가 개정한 선거법[2] 때문에 집권이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또한 총리 선호도 자체는 프라윳에 밀리는 등, 시나와트라 남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역량이 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