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3A380 0%, #00C499 20%, #00C499 80%, #03A380); color: #ece5b6;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00C499> 추존 존령 | ||
태중부군 | 회음부군 | 제음부군 | |
중종사사부군 | 특진부군 | ||
<rowcolor=#00C499> 추존 황제 | |||
문제 | 안제 | 소명제 | |
충렬왕 | 문헌왕 | ||
<rowcolor=#00C499> 비정통 황제 | |||
임하왕 | 예장왕 | 무릉왕 | |
민제 | 영가왕 | 소선 | |
}}}}}}}}} |
1. 개요
蕭巖6세기 ~ 589년
남북조시대 후량의 황족. 자는 의원(義遠)이고 소찰의 5남으로 어머니는 누군지 알 수 없다.
2. 생애
안평왕(安平王)으로 봉해졌고, 시중(侍中), 형주자사(荊州刺史), 상서령(尚書令), 태위(太尉), 태부(太傅) 등을 역임했다.성정이 인후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587년 수문제 양견이 후량을 멸망시키려 한다는 것을 알고 진나라로 달아났다. 당시 진나라의 황제였던 후주 진숙보는 소암을 평동장군(平東將軍)과 동양주자사(東揚州刺史)로 삼았다.
하지만 2년 후인 589년 진나라가 수나라에게 멸망당하자 동양주의 거민들은 소암을 군주로 추대하여 수나라에 저항했다. 그러나 수나라의 총관(總管) 우문술(宇文述)에게 격패됐고, 장안으로 끌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수나라 말기 양나라의 황제를 칭한 손자 소선(蕭銑)이 소암을 안평충렬왕(安平忠烈王)으로 추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