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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09 15:36:25

소니 안데르송

소니 안데르송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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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파일:리그 1 심볼.svg
1995-96 · 1999-00 · 2000-01
파일:카타르 스타스 리그 로고(세로형).svg
베스트팀
}}} ||
브라질의 前 축구선수
파일:Sonny-Anderson.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소니 안데르송
Sonny Anderson
본명 안데르송 다 시우바
Anderson da Silva[1]
출생 1970년 9월 19일 ([age(1970-09-19)]세) /
브라질 고이아투바
국적 브라질 파일:브라질 국기.svg
신체 181cm
직업 축구선수 (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감독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CR 바스쿠 다 가마 (1988~1991)
과라니 FC (1992)
세르베트 FC (1992~1994)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1994)
AS 모나코 (1994~1997)
FC 바르셀로나 (1997~1999)
올랭피크 리옹 (1999~2003)
비야레알 CF (2003~2004)
알 라이안 SC (2004~2005)
알 가라파 SC (2006)
감독 뇌샤텔 크사막스 FCS (2011)
국가대표 6경기 1골 ( 브라질 / 1997~2001)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
3. 기록
3.1. 대회 기록3.2. 개인 수상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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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 국적의 축구인이다.

유럽에서 득점왕을 여러차례 차지하며 경쟁력을 입증했으나, 활동 당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공격진때문에 대표팀과는 거리가 멀었던 비운의 선수이기도 하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파일:Sonny Anderson OL.jpg

스위스 내셔널 리그 세르베트 FC에서 첫 시즌 18골을 넣었고, 두 번째 시즌 상반기에만 11골을 넣어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스위스에서의 활약으로 프랑스의 명문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에 입단했으나 마르세유가 뇌물 스캔들로 인한 징계로 강등 당하면서 6개월만에 AS 모나코로 이적했다.

모나코에서의 첫 시즌인 1994-95 시즌 16골을 넣었고,
1995-96 시즌 리그에서만 21골을 넣어 프랑스 디비시옹 1 득점왕에 올랐다.
1996-97 시즌에는 47경기에 나서 27골을 넣는 활약으로 모나코에게 리그 우승을 안겼다.
모나코에서 세 시즌 동안 113경기에 출전하여 66골을 기록했다.[2]

모나코에서 보여준 경쟁력을 인정 받아 세계 최고의 클럽 중 하나인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였다. 첫 시즌인 1997-98 시즌 리그 초반 3경기에서 2골을 뽑아내며 좋은 출발을 보였으나 이후 루이스 엔리케 파트릭 클라위베르트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리면서 좀처럼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해 리그에서 넣은 10골을 포함하여 37경기 11골에 만족해야 했다.
두 번째 시즌인 1998-99 시즌에는 루이 판할 감독과의 트러블까지 겹치면서 31경기 10골에 그쳤고 1800만 유로에 프랑스의 올랭피크 리옹으로 이적했다.[3]

리옹에서의 첫 시즌인 1999-00 시즌 32경기에 출전하여 23골을 넣었고, 2000-01 시즌 29경기에 출전하여 22골을 넣어 두 시즌 연속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이러한 안데르송의 활약들로 리옹은 리그앙 2연패를 달성했다. 리옹에서 총 160경기 94골을 기록했으며 다시 스페인 무대에 도전하기 위해 비야레알 CF로 이적했다.

비야레알에서의 첫 시즌인 2003-04 시즌 리그에서 12골을 넣었고, UEFA컵에서 6골을 넣으며 대회 득점왕에 오르는 동시에 비야레알의 UEFA컵 4강 진출을 이끌었다.

이후 카타르에서 말년을 보낸 뒤 2006년 은퇴하였다.

2.2. 국가대표 경력

1997년 8월 친선전을 앞두고 마리우 자갈루 감독의 부름을 받아 국가대표에 승선했다. 8월 10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 경기에 선발 출전하면서 데뷔하였고 이 경기에서 죄측면에서 낮게 깔려오는 호베르투 카를로스의 크로스를 골로 연결시켜 국가대표 데뷔골이자 마지막 골을 기록하였다.[4] 이후 호마리우, 호나우두, 베베투와 같은 쟁쟁한 경쟁자들에 밀려 가끔 보결 자원으로 국가대표에 차출되었으며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일본에서의 출전을 마지막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하였다.

3. 기록

3.1. 대회 기록

3.2. 개인 수상

4. 여담

파일:andersonXgriezmann.jpg
앙투안 그리즈만이 어린 시절 좋아했던 선수였다. 왼쪽의 아이가 그리즈만이다.[6]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 좋아하는 선수들 중 한 명으로 꼽은 적이 있다.

리그 1 역대 브라질리언 최다 득점자이며 그의 기록은 2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7]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역대 최단 기간 10호 골 기록 보유자이다.[8]


[1] 격투기 선수 앤더슨 실바와 본명이 같다. [2] 여담으로 이 시기 티에리 앙리가 윙어로 뛰면서 안데르송을 돕는 역할을 맡았다. [3] 당시 바르셀로나의 다른 브라질리언 선수였던 지오바니 다시우바는 2010년 인터뷰를 통해서 판할 감독은 브라질리언 선수들의 히틀러였다며 그는 오만하고 유독 브라질리언 선수들을 막 대했다고 밝혔다. [4] 이 골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은 2:1 역전승을 거두었다. 참고로 동점골은 호나우두의 PK 골이었다. [5] 앨런 시어러, 마테야 케즈만, 디디에 드록바과 공동 수상. [6] 그리즈만은 리옹 근교 마콩 출신으로 어릴 적 올랭피크 리옹의 팬이었으며 당시 리옹의 주포가 안데르송이었다. 참고로 그리즈만은 이후로 파벨 네드베드, 데이비드 베컴을 좋아하게 된다. [7] 138골로 그나마 근접한 선수는 주니뉴 페르남부카누(75골)이며 현역 선수 중에서는 2021-22시즌 기준으로 네이마르 주니오르(69골)이다. 최소한 향후 몇 년간은 깨지지 않을 압도적인 기록인 것이다. [8] 11경기. 2위가 아르카디우스 밀리크인데 17경기로 6경기나 차이가 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