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안데르송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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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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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96 · 1999-00 · 2000-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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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 ||||
소니 안데르송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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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前 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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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
소니 안데르송 Sonny Anders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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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안데르송 다 시우바 Anderson da Silva[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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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0년 9월 19일 ([age(1970-09-19)]세) | |
브라질 고이아투바 | ||
국적 |
[[브라질|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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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키 181cm | |
직업 |
축구 선수 (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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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선수 |
CR 바스쿠 다 가마 (1988~1991) 과라니 FC (1992) 세르베트 FC (1992~1994)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1994) AS 모나코 (1994~1997) FC 바르셀로나 (1997~1999) 올랭피크 리옹 (1999~2003) 비야레알 CF (2003~2004) 알 라이안 SC (2004~2005) 알 가라파 SC (2006) |
감독 | 뇌샤텔 크사막스 FCS (2011) | |
국가대표 | 6경기 1골 ( 브라질 / 1997~2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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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 국적의 축구인이다.유럽에서 득점왕을 여러차례 차지하며 경쟁력을 입증했으나, 활동 당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공격진때문에 대표팀과는 거리가 멀었던 비운의 선수이기도 하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스위스 내셔널 리그의 세르베트 FC에서 첫 시즌 18골을 넣었고, 두 번째 시즌 상반기에만 11골을 넣어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스위스에서의 활약으로 프랑스의 명문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에 입단했으나 마르세유가 뇌물 스캔들로 인한 징계로 강등 당하면서 6개월만에 AS 모나코로 이적했다.
모나코에서의 첫 시즌인 1994-95 시즌 16골을 넣었고,
1995-96 시즌 리그에서만 21골을 넣어 프랑스 디비시옹 1 득점왕에 올랐다.
1996-97 시즌에는 47경기에 나서 27골을 넣는 활약으로 모나코에게 리그 우승을 안겼다.
모나코에서 세 시즌 동안 113경기에 출전하여 66골을 기록했다.[2]
모나코에서 보여준 경쟁력을 인정 받아 세계 최고의 클럽 중 하나인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였다. 첫 시즌인 1997-98 시즌 리그 초반 3경기에서 2골을 뽑아내며 좋은 출발을 보였으나 이후 루이스 엔리케와 파트릭 클라위베르트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리면서 좀처럼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해 리그에서 넣은 10골을 포함하여 37경기 11골에 만족해야 했다.
두 번째 시즌인 1998-99 시즌에는 루이 판할 감독과의 트러블까지 겹치면서 31경기 10골에 그쳤고 1800만 유로에 프랑스의 올랭피크 리옹으로 이적했다.[3]
리옹에서의 첫 시즌인 1999-00 시즌 32경기에 출전하여 23골을 넣었고, 2000-01 시즌 29경기에 출전하여 22골을 넣어 두 시즌 연속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이러한 안데르송의 활약들로 리옹은 리그앙 2연패를 달성했다. 리옹에서 총 160경기 94골을 기록했으며 다시 스페인 무대에 도전하기 위해 비야레알 CF로 이적했다.
비야레알에서의 첫 시즌인 2003-04 시즌 리그에서 12골을 넣었고, UEFA컵에서 6골을 넣으며 대회 득점왕에 오르는 동시에 비야레알의 UEFA컵 4강 진출을 이끌었다.
이후 카타르에서 말년을 보낸 뒤 2006년 은퇴하였다.
2.2. 국가대표 경력
1997년 8월 친선전을 앞두고 마리우 자갈루 감독의 부름을 받아 국가대표에 승선했다. 8월 10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 경기에 선발 출전하면서 데뷔하였고 이 경기에서 죄측면에서 낮게 깔려오는 호베르투 카를로스의 크로스를 골로 연결시켜 국가대표 데뷔골이자 마지막 골을 기록하였다.[4] 이후 호마리우, 호나우두, 베베투와 같은 쟁쟁한 경쟁자들에 밀려 가끔 보결 자원으로 국가대표에 차출되었으며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일본에서의 출전을 마지막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하였다.3. 기록
3.1. 대회 기록
- CR 바스쿠 다 가마 (1988~1991)
-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 A: 1989
- 비야레알 CF (2003~2004)
- UEFA 인터토토컵: 2003, 2004
3.2. 개인 수상
- UEFA컵 득점왕: 2003-04[5]
- 스위스 슈퍼 리그 득점왕: 1992-93
- 스위스 슈퍼 리그 최우수 외국인 선수: 1992-93
- 디비지옹 1 득점왕: 1995-96, 1999-2000, 2000-01
- 디비지옹 1 최우수 선수: 1997-97
- 디비지옹 1 에투 알 도르: 1995-96
- 카타르 스타스 리그 득점왕: 2004-05
4. 여담
앙투안 그리즈만이 어린 시절 좋아했던 선수였다. 왼쪽의 아이가 그리즈만이다.[6]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도 좋아하는 선수들 중 한 명으로 꼽은 적이 있다.
리그 1 역대 브라질리언 최다 득점자이며 그의 기록은 2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7]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역대 최단 기간 10호 골 기록 보유자이다.[8]
[1]
격투기 선수
앤더슨 실바와 본명이 같다.
[2]
여담으로 이 시기
티에리 앙리가 윙어로 뛰면서 안데르송을 돕는 역할을 맡았다.
[3]
당시 바르셀로나의 다른 브라질리언 선수였던 지오바니 다시우바는 2010년 인터뷰를 통해서 판할 감독은 브라질리언 선수들의
히틀러였다며 그는 오만하고 유독 브라질리언 선수들을 막 대했다고 밝혔다.
[4]
이 골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은 2:1 역전승을 거두었다. 참고로 동점골은
호나우두의 PK 골이었다.
[5]
앨런 시어러,
마테야 케즈만,
디디에 드록바과 공동 수상.
[6]
그리즈만은
리옹 근교 마콩 출신으로 어릴 적
올랭피크 리옹의 팬이었으며 당시 리옹의 주포가 안데르송이었다. 참고로 그리즈만은 이후로
파벨 네드베드,
데이비드 베컴을 좋아하게 된다.
[7]
138골로 그나마 근접한 선수는
주니뉴 페르남부카누(75골)이며 현역 선수 중에서는 2021-22시즌 기준으로
네이마르 주니오르(69골)이다. 최소한 향후 몇 년간은 깨지지 않을 압도적인 기록인 것이다.
[8]
11경기. 2위가
아르카디우스 밀리크인데 17경기로 6경기나 차이가 난다.
#
분류
- 1970년 출생
- 1988년 데뷔
- 2006년 은퇴
- 고이아스주 출신 인물
- 브라질의 축구선수
- 공격수
- 브라질의 축구감독
- CR 바스쿠 다 가마/은퇴, 이적
- 과라니 FC/은퇴, 이적
- 세르베트 FC/은퇴, 이적
-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은퇴, 이적
- AS 모나코/은퇴, 이적
- FC 바르셀로나/은퇴, 이적
- 올랭피크 리옹/은퇴, 이적
- 비야레알 CF/은퇴, 이적
- 알 라이얀 SC/은퇴, 이적
- 알 가라파 SC/은퇴, 이적
- 브라질의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참가 선수
-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일본 참가 선수
- 브라질의 FIFA U-20 월드컵 참가 선수
- 1989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사우디아라비아 참가 선수
- 브라질의 FIFA U-17 월드컵 참가 선수
- 1987 FIFA U-16 세계 축구 선수권 대회 캐나다 참가 선수
- 리그 1 올해의 선수 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