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후한의 연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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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상시의 난이 평정되면서 사용된 연호로 189년 8월 28일부터 8월 30일까지 사용되었다.
삼국지에서 가장 짧은 기간 동안 사용한 연호로 동탁에 의해 유변이 폐위되고 유협이 즉위하면서 영한(永漢) 연호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12월에 내려진 칙령으로 광희, 소녕, 영한 연호는 폐지되었고 다시 중평 6년이 되었다. 이로 인해 189년 한 해에만 4번의 연호 교체가 일어났다.
이보다 더 짧게 사용된 연호는 386년에 사용되었지만 정확한 날짜를 알 수 없는 건명, 건평을 제외하고 보면 532년에 사용된 하루도 사용하지 못한 영흥이 있다.
십상시의 난으로 후한의 몰락을 가속화시킨 환관 세력을 일소하는 것에는 성공했으나, 이를 위해 외부 군사를 끌어들였고, 환관을 일소하는 과정에서 반대파인 외척인 하진도 죽는 바람에 정계와 군부가 공백이 생기면서 동탁의 정권 장악을 위한 시기에 불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