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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크 파브레가스/클럽 경력/아스날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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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크 파브레가스
2003-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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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데뷔 당시
소속팀 <colbgcolor=#ffffff,#191919> 아스날 FC ( 프리미어 리그)
등번호 4
15(2004-2006)
57(2003-2004)
기록
파일:프리미어 리그 로고(화이트).svg
212경기
35득점 70도움
61경기
17득점 14도움
파일:FA컵(잉글랜드)로고(화이트).svg
15경기
2득점 3도움
파일:카라바오 컵 로고 가로형.svg
13경기
2득점
파일:crR1Bvv.png
2경기
1득점
합산 성적
303경기
57득점 87도움
1. 개요2. 이적3. 2003-04 시즌4. 2004-05 시즌5. 2005-06 시즌6. 2006-07 시즌7. 2007-08 시즌8. 2008-09 시즌9. 2009-10 시즌10. 2010-11시즌
10.1. 이적 사가

[clearfix]

1. 개요

파일:Cesc4Arsenal.jpg
세스크 파브레가스 아스날 FC 경력을 소개하는 문서

2. 이적

바르셀로나 1군 출장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고, 아스날 감독 아르센 벵거의 설득에 힘입어 파브레가스는 2003년 9월 아스날로의 이적에 동의했다. 당시 스페인 노동법상 프로 계약을 할 수 없었던 파브레가스를 비겁한 방법으로 빼내갔다는 일부의 주장도 있고, 심지어는 이탈리아 축구협회에서까지도 관련 행위를 두고 깠다. 물론 아스날 측의 주장에 따르면 지오바니 판브롱크호르스트의 이적과 함께 이적에 따른 보상금 지불은 끝났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 행위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1년 빨리 프로 계약을 할 수 있다는 이점을 이용해 쥐꼬리만한 보상금을 지불하면서 타 팀의 유망주를 마음껏 빼갈 수 있다는 것. 즉, 보상금 지불했으니 도덕적인 문제가 없다는 주장은 잘못됐다는 얘기다. 아스날 팬들 입장에서야 합법적인데 뭐 어떠냐고 주장하지만 이탈리아와 스페인 쪽에서는 매우 비난하였다. 물론 결국 중요한 건 불법도 아니고 선수 본인도 이적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16세의 스페인 청소년이 런던 생활에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하숙방에서 룸메이트로 함께 생활한 스위스 수비수 필리페 센데로스의 도움[1]으로 런던에 성공적으로 정착한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의 정신적인 강인함이 엿보이는 부분.

이후 1군 선수들의 부상 및 부진으로 인해 출장 수가 점점 늘어나게 되었고, 비에이라가 유벤투스로 이적하자 사실상 주전이 되었다.

이렇게 시간이 갈수록 점점 기량을 펼치며 그의 능력을 보여주었지만 피치 위에선 다소 다혈질적이고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이는 등 한 성깔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미하엘 발락 프랭크 램파드한테 침을 뱉은 일이 있어서 국내에선 침브레가스, 히드레가스란 별명을 얻기도. 램파드는 후일 자신이 첼시를 떠난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자신의 대체자가 세스크 파브레가스라는 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발락은 본인과 바이에른 뮌헨 측이 부인했다. 아마 발락 쪽에서 일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구단을 통해서 깔끔하게 정리한 듯 싶다. 이후로도 발락은 인터뷰를 통해 파브레가스에 대해 최고의 미드필더라고 언급하기도 하며 호의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후 세스크가 2014년부터 첼시 소속이 되고, 2016년 말 발락은 첼시의 맨시티전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세스크와 함께 있는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도 한 걸 보면 좋은 관계인 듯하다.

또한 아버지 뻘인 테디 셰링엄(1966년생)을 물리적으로 가격하거나 블랙번 로버스와의 경기를 한 다음에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당시 상대팀 감독이었던 마크 휴즈에게 바르셀로나에 뛴 적이 있냐고 물은 다음 그렇다는 대답을 받자 당신의 플레이는 바르셀로나 축구가 아니었다고 조롱하기도 했다.[2]

3. 2003-04 시즌

파브레가스는 당대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였던 파트리크 비에라, 지우베르투 시우바와 경쟁해야 했지만 데뷔전은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2003년 10월 23일 로더햄 유나이티드와의 리그컵경기에 출장했는데, 이로써 16세 177일이라는 아스날 최연소 출장 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후 펼쳐진 울버햄튼 원더러스를 5-1로 격파한 리그컵 경기에서는 최연소 득점 기록도 갈아치우게 된다.

2003-04 시즌: 3경기(선발 2경기) 1골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칼링컵 3 2 1 1 0
합계 3 2 1 1 0

4. 2004-05 시즌

파일:04Fabregas.jpg
04-05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리그등 다른 대회에서도 출전기회를 부여받기 시작한다. 로테이션 멤버로 리그에 출전하던 중 비에이라의 부상으로 4연속 리그 선발 출전을 하기도 하고 착실히 기회를 부여받으며 성장하기 시작했다.

커뮤니티 실드 맨유와의 경기에서 선발 출장한다.

3R 블랙번과의 경기에서 선발 출장하여 리그 데뷔골을 기록하면서 아스날 역대 최연소 리그 득점자가 된다.

10R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에서 출전하지는 않았지만 벤치에서 팀의 2대0 패배를 지켜보았고 이 경기를 패배하게 되면서 아스날은 프리미어리그 49경기 무패행진을 마감하게 되었다. 이 경기가 끝난후 뷔페 전투[3]라 불리는 아스날 선수중 누군가가 터널에서 알렉스 퍼거슨에게 피자를 던졌다는 소식이 나왔고 누군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마틴 키언에 증언에 따르면 파브레가스가 던졌다는 추측이 있었고, 퍼거슨도 자신의 자서전에서 파브레가스가 던졌다는 얘기가 있었다는 말을 했다.
2017년 스카이 스포츠의 TV 방송에 나와 자기가 던졌다고 인정하며 그의 유죄를 인정했다.
파일:Fabregas rosenborg(04-05).gif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6라운드 로젠보리와의 경기에서 선발 출장하여 챔스 데뷔골을 기록하며 아스날 역대 최연소 챔스 득점자 및 챔스 2번째로 어린 최연소 득점자까지 된다.
파일:Fabregas Spurs(04-05).gif
35R 토트넘과의 북런던 더비 에서 레예스에게 기가막힌 패스를 제공하며 도움을 기록했다. 이것이 결승골이 되어 아스날은 1대0으로 승리하며 아직 우승경쟁에 힘을 내봤지만 첼시가 풀럼에게 3대1 승리를 기록하면서 리그 우승을 확정지어버렸다.

37R 리버풀전에서 골을 기록하며 팀은 3대1 승리를 거둔다.

준주전 급으로 출전하며 성장을 거듭하면서 벵거에게 선택받아 FA컵 결승 맨유와의 경기에서도 선발 출전해서 활약하고 아스날은 맨유를 꺾으며 FA컵 우승을 기록하게 되는데 이것이 파브레가스의 아스날 커리어 마지막 우승이 된다.

2004-05 시즌: 46경기(선발 32경기) 3골 6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3 23 10 2 5
챔피언스 리그 5 4 1 1 0
FA컵 6 4 2 0 1
칼링컵 1 0 1 0 0
커뮤니티 실드 1 1 0 0 0
합계 46 32 14 3 6

5. 2005-06 시즌

파일:05Fabregas.jpg
주장 비에이라가 유벤투스로 이적하자 이때부터 파브레가스는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발돋움을 하기 시작한다.

2005-06 시즌, 아스날은 더비 라이벌인 토트넘 홋스퍼 FC에게 밀리는 등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었지만 티에리 앙리의 외계인 모드 발동과 파브레가스의 분투로 겨우 UEFA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확보하게 된다.
파일:Fabregas Juventus(05-06).gif
파일:Fabregas Juventus(05-06)2.gif
이 시즌 챔피언스 리그 8강에서 카펠로의 유벤투스를 만나 팀을 떠난 전주장인 비에이라를 대적하게 되는데, 파브레가스가 비에이라와 에메르손을 꽁꽁 묶고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공수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평점 10점의 위엄을 떨쳤다. 팀도 결승까지 올랐으나, 레만의 퇴장으로 수적 열세를 떨치지 못하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시즌 종료 후 활약을 인정받아 월드컵에도 출전했다.

2005-06 시즌: 50경기(선발 41경기) 5골 6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5 30 5 3 5
챔피언스 리그 13 10 3 1 1
칼링컵 1 0 1 0 0
커뮤니티 실드 1 1 0 1 0
합계 50 41 9 5 6

6. 2006-0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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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007-0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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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2008-0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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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2009-1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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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010-11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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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이적 사가

또 다시 우승에 실패하자 바르셀로나로 이적설이 점화되었고 바르셀로나는 다시 파브레가스에게 구애를 시작했다. 가뜩이나 2010 남아공 월드컵이 끝나고 파브레가스에게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히는 등 아스날 팬들은 바르셀로나의 열렬한 파브레가스 영입 작전에 분노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파브레가스도 우승컵에 목마른 상황이었고 6년동안 무관에 시달리자 우승컵을 들길 원했고 고향팀인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는것도 팬들은 이해는 하는 상황이다.

아스날이 또다시 무관에 그치자 2011년 바르셀로나로 복귀할 수도 있다는 기사가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 안드레이 아르샤빈은 "선물을 받고 나서 파브레가스에게 작별 선물이냐고 물어보았는데,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라는 인터뷰를 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아스날 구단에서도 파브레가스의 바르셀로나 이적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는 소식이 나오면서 드디어 친정팀으로 복귀하는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그리고 12일 바르셀로나 이적이 확정됐다. 이적료는 4000만 유로. 34m+6m의 조건인데 3400만 유로에서 500만 유로 가량은 파브레가스가 잔여 연봉을 포기하면서 바르셀로나는 2900만 유로를 지불하는 형식으로 거래가 성사되었다. 결국 길고 길었던 바르셀로나와 아스날간의 파브레가스 이적 사가는 파브레가스의 바르셀로나 이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1] 센데로스의 아버지는 스페인 혈통이어서 파브레가스와 스페인어로 대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센데로스 본인은 아스날에서 끝내 성공하지 못하고 임대를 전전하다 방출되었다. [2] 마크 휴즈가 선수 시절 바르셀로나에서 부진해서 1시즌 만에 떠난 것과 블랙번이 바르셀로나와 다른 스타일의 축구를 한 것, 둘 다 비꼰 듯 싶다. [3] 피자게이트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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