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준 세마포어 통신 코드 |
1. 개요
|
세마포어 통신기의 작동 영상 |
sêmaphoros |
2. 역사
전통적으로 장거리 통신 시스템은 봉화가 있었지만 봉화는 몇가지 기호 밖에 보낼 수 없었음으로 한계가 있었다. 이 한계를 극복하면서 단어나 문장같이 언어를 전송하기 위해 노력했고 플라비우스는 봉화로 오늘날 암호표 같은 방법으로 언어를 보낼 방법을 만들었지만 크게 유행하지는 못했다. 언어를 전송하기 위해서는 파발이나 전서구처럼 사람이나 동물이 직접 문서를 나를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너무 느리고 중도에 통신이 끊겨 전해지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등 안정성도 낮았다.그러던 중 유럽에서는 광학의 발달로 망원경 같은 멀리 볼 수 있는 도구가 발명되면서, 이것을 응용해서 기호를 조합해서 문자를 보내는 통신방법을 고안해낸다. 로버트 훅은 1684년에 눈으로 보는 통신 시스템을 왕립연구소에 제출하지만 아무도 상용화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일랜드의 귀족 리처드 에지워스(Richard Edgeworth)는 경마 도박을 알릴 용도로 사용했지만 숫자만 알릴 수 있었고 1군데만 설치 되었지 상용화는 되지 못했다.
3. 상용화
프랑스의 발명가 클로드 샤프(Claude Chappe)는 1790년에 자신의 형제들과 광학 통신시스템을 시스템을 연구했고 1791년 3월 2일 오전 11시에 Brulon 와 Parce의 약 16km 거리에서 si vous réussissez, vous serez bientôt couverts de gloire(당신이 성공한다면 나는 영광스럽게 느낄 겁니다.)라는 문장을 보내는데 성공한다. 이런 와중에 자신이 이 신호기로 왕당파와 통신한다고 오해한 민중들이 통신기를 부수는 일도 있었지만. 1792에 Télégraphiste의 기술자로 임명되어 파리와 릴사이의 230km의 통신망을 설치하게 되었고 이 통신망은 당시 프랑스 혁명전쟁에서 군사용도로 유용하게 이용되었는데 날씨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파리에서 릴까지 문장 하나당 약 32분이 소요되었다.이후 세마포어 통신의 유용성이 알려지고, 마침 프랑스는 전 유럽을 상대로 프랑스 혁명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을 벌였기 때문에 수요도 맞아 떨어졌다. 이후 프랑스 전역을 연결하는 세마포어 통신망이 설치 되었고 1821년에는 상업목적 통신도 시도하면서 수요는 점차 늘어났다. 나머지 유럽국가들도 샤프의 통신시스템의 유용성을 알고 이를 모방한 세마포어 통신시스템을 구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