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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0:20:16

성재한

파일:성재한.jpg
성명 성재한(成載翰)
생몰 1860년 2월 17일 ~ 1906년 5월 31일
출생지 충청남도 예산군
사망지 홍주성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3. 논란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성재한은 1860년 2월 17일 충청남도 예산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4년 2월 한일의정서(韓日議政書)가 발표되자 예산군, 홍성군, 보령군 등지를 전전하며 항일투쟁을 함께할 동지를 규합했다. 1905년 10월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그는 즉시 귀가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몸바칠 것을 결심하고 가족에게 작별인사를 나눴다. 이때 민종식이 의병을 일으키자, 그는 민종식의 휘하에 들어가 운량관(運糧官)이 되어 홍주성 공략에 함께했다. 그러나 1906년 5월 31일 일본군이 홍주성을 공략하자 "나는 중한 책임이 있다. 문부(文簿)들을 안고 장차 어디로 간단 말이냐”라며 끝까지 떠나지 않다 결국 전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성재한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3. 논란

또다른 독립유공자로 인정된 성재평은 성재한과 이력이 동일하다. 민종식 의진에서 운량관(運糧官)을 맡은 것도 같고, 홍주성이 공략되었을 때 끝까지 성을 떠나지 않다 전사한 것도 같다. 그래서 세간에서는 성재한의 이명이 성재평일 가능성이 높다며 두 사람이 동일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가보훈처는 "신청인은 기려수필, 독립운동사에 기록된 성재평과 동일인이라고 주장하며 별첨과 같은 거증자료를 첨부하였으므로 동일인으로 추정할수도 있으나 공신력 있는 문헌에는 동일인으로 인정할 만한 자료가 없다."며, "동일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의병진의 영관으로 상당한 공을 세우고 전사한 것이 홍양사에 의하여 명백하여졌고, 7인이상의 인우확인서 및 면장의 확인서 등으로 미루어보아 독립운동에 상당한 공적이 있다."며 성재평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한 것이 마땅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