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 순창 설씨[1] |
출생 | 1880년 12월 4일 |
함경도
단천도호부 수하사 중평리 (현 함경남도 허천군 중평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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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미상 |
상훈 | 대통령표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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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1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2. 생애
1880년 12월 4일 함경도 단천도호부 수하사 중평리(현 함경남도 허천군 중평리)에서 아버지 설혁봉(薛爀鳳, 1860. 1. 29 ~ ?)과 어머니 진주 강씨(1861. 2. 29 ~ ?) 강세윤(姜世允)의 딸 사이의 5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그는 1908년 12월부터 대한협회(大韓協會) 단천지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경술국치 이후 1915년 12월 15일 단천군 수하면 하농리(현 허천군 하농리) 장암촌의 서당에서 한국 독립을 목적으로 한 비밀결사 자립단(自立團)의 방주익(方周翼), 방승혁(朴承赫) 등과 함께 전성익(全性翊), 김율봉(金栗鳳), 최만종(崔萬宗) 등 3명을 자립단에 가입시켰으며, 같은 자리에서 감독관 선정 등 필요한 사항을 협의하였다.
그러다가 곧 조직의 실체가 드러나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1916년 3월 14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아 공소하였으나, 그해 4월 1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위 혐의에 대해 공소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단천군 수하면 지역사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특히 1928년 1월에는 단천군 수하면 산업품평회에서 출품물 부정사건이 일어나자, 이에 대한 후속문제 처리를 위해 수하면 배영의숙(培英義塾)에서 열린 출품자대회의 사회를 맡았다. 그는 이 날 대회에 출석한 수하면장 김필은(金弼殷)으로부터 부정사건에 대한 사과를 받아내고, 면장불신임에 대한 안건을 상정하여 토의하기도 했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월일 등은 알 수 없다.
2011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1]
참의공파 60세 관(寬) 항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