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鮮于仲通(693 ~ 755)
당나라의 관료로 이름은 향(向), 자는 중통(仲通)이었다.
2. 생애
선우사간(鮮于士簡)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계주(薊州) 어양현(漁陽縣)에 대대로 살았으나 나중에 낭주(閬州) 신정현(新政縣)으로 옮겨 살았다.732년, 향공에 응시하여 진사에 급제하였다. 738년, 익주(益州) 신도현(新都縣)의 현위가 되어 20일 동안 정부를 보다가 병으로 인해 물러났다.
739년, 장사 장유(張宥)의 상주로 검남채방사(劍南采訪支使)가 되었다. 뒤에 신번현위(新繁縣尉)로 전임되고 산남서도채방지사(山南西道采訪支使)를 맡았으며 좌위병조(左衛兵曹), 검남산남양도산택사(劍南山南兩道山澤使), 대리평사(大理評事), 산서독찰사(西山督察使)를 역임했다.
747년, 감찰어사(監察御史)로 임명되었다.
751년 남조국의 각라봉이 운남태수 장건타를 죽였을 때 운남으로 원정을 갔으나 대패하고 선우중통은 이를 승전했다고 허위보고하였다.
752년, 경조부윤(京兆府尹)으로 임명되었다.
753년, 소양군(邵陽郡) 사마로 좌천되었고 뒤에 한양군(漢陽郡) 태수로 전임되었다. 선우중통은 다음해인 755년 윤11월 15일에 죽었으며 다음해 신정현 가릉강(嘉陵江)의 서안에 안장되었다.
762년, 위위경(衛尉卿)으로 추증되고 763년 다시 태자소보(太子少保)로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