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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2 20:30:10

석동일

석동일
石東一
출생 1951년
전라남도 광산군(現 광주광역시 광산구)
사망 2023년 2월 14일 (향년 71~72세)
서울특별시 은평구 통일로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가족 남동생 석동율
배우자 강송희
슬하 1남 1녀[1]
학력 광주서중학교 (졸업)
광주상업고등학교 (졸업)
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직업 탐험가, 환경 운동가, 사진작가

1. 개요2. 생애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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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탐험가, 환경 운동가, 작가. 국내의 동굴 탐험가하면 보통 이 인물을 먼저 떠올릴 정도로 유명한 탐험가다.

2. 생애

중학생 때부터 등산을 좋아했던 소년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산악부에서 전국고교 등반대회에서 3년 내내 우승을 차지하기도 할 정도로 등반 실력 역시 뛰어났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한 후 광주에서 '샤모니'라는 등산장비점을 운영하면서 1970년 히말라야를 등반할 예정이었지만 집안의 반대로 참가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 원정대에서는 사고로 그의 선배가 사망했기 때문에 그는 이 일로 충격을 받고 높은 산을 등산하는 것 대신 동굴 탐험을 하기 시작했다.

1976년 그가 탐험한 첫 동굴은 충북 단양군의 노동동굴이었다.[2] 이 경험을 시작으로 그는 많은 동굴을 탐험하며 뛰어난 촬영 솜씨로 동굴 내부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여러 서적으로 출간했고, 문화재관리국 동굴자문위원으로서 전국의 동굴 탐사를 통해 '동굴 휴식년제'를 주장하는 등 환경운동에도 앞장섰다. 그의 동생 석동율의 증언에 따르면 대만에서도 그가 찍은 동굴 사진을 35개월간 전시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199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환경 운동가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시작은 동강댐 건설이었다. 동강댐이 건설될 예정이었던 백룡동굴 내부에는 마치 사람의 음경처럼 생긴 종유석이 있었는데, 그것을 멋대로 잘라간 사실을 폭로한 것을 계기로 영월댐 반대 운동에 나섰고, 이때 댐 건설시 보상을 기대한 수몰 예정지 주민들에게 2시간 동안 승용차 안에 감금되었다 풀려나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동강댐은 건설되지 않았고, 백룡동굴을 비롯한 소규모 자연동굴 249개가 물에 잠기지 않도록 막아냈다.[3] 이 사건으로 1998년 국내 언론사 환경 담당 기자 모임인 환경기자클럽이 주는 올해의 환경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23년 암 투병 끝에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3. 여담


[1] 이름은 석윤재, 석상욱으로 알려졌는데 누가 아들이고 누가 딸인지는 불명이다. [2] 그의 말로는 입구부터 물기를 잔뜩 머금은 점토가 가득해서 굉장히 미끄럽기 때문에 처음부터 바짝 긴장해야 했다고 한다. [3] 잘라진 음경 모양 종유석도 다시 원래 있던 자리에 봉합하였다. [4] 팔을 구부릴 수가 없었을 정도로 틈새가 좁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