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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8 18:15:41

석다시만



石多時萬 (시다시멘)[1]
? - 1374년

1. 개요

원나라의 인물. 목호의 난에 참여한 반란자다.

2. 생애

목호의 난 당시 조장홀고손(趙莊忽古孫) 등 수백명과 농성을 벌이면서 항복하지 않았다. 최영은 여러 장수들과 함께 동아막을 공격해 석다시만과 조장홀고손을 격파했고, 이들의 무리를 추격해 모조리 죽였다고 한다.

3. 기록

최영(崔瑩)이 전 부령(副令) 정룡(鄭龍)을 보내어 날랜 전함 40척을 거느리고 그들을 포위하게 하였으며 자신은 정예병을 거느리고 뒤따라갔다. 석질리필사(石迭里必思, 시데리비스)가 처자(妻子)와 그의 일당 수십 명을 거느리고 나왔으나 초고독불화(肖古禿不花, 샤오쿠투부카)·관음보(觀音保)는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벼랑에 몸을 던져 죽었다.
최영이 석질리필사와 그의 세 아들은 허리를 잘라 처형하고, 또 초고독불화와 관음보의 머리를 베어 지병마사(知兵馬事) 안주(安柱)를 보내어 바치게 하였다.
동도(東道)의 합적(哈赤, 카치) 석다시만(石多時萬, 시다시멘)·조장홀고손(趙莊忽古孫) 등은 아직도 수백 명을 거느리고 성에 웅거하면서 항복하지 않았다. 최영이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그들을 공격하자 적이 무너져 달아났다. 이를 추격하여 잡고 남은 무리를 찾아 체포하여 모두 죽이니 죽은 자가 줄줄이 이어졌다.
고려사 열전 권제26 제신 최영

[1] 다시만은 답실만(答失蠻)으로도 쓰는데, 답실만은 이란어로 현자를 의미하는 다니슈멘드의 음차다. 송나라에서는 주로 이슬람계 무슬림을 지칭할 때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