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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01:54

서해(명나라)

徐海
? ~ 1556년

1. 개요2. 생애

1. 개요

명나라 시기의 해적.

2. 생애

휘주 흡현 사람으로 본래는 항주 호포사의 승려로 명산화상(明山和尙)이라 불렀으며, 가흥의 기원에 들어가 계율에 어겼고 유학자인 나용문을 만나 친구가 되었다.

1552년에 숙부 서유학과 함께 왕직 휘하에 들어갔고 왕직이 일본에 있는 동안 서해는 동남 해안에서 해적 활동을 하면서 천차평해대장군을 칭했고 왕직이 자신과 적대하는 해적과 협력하자 왕직과는 갈라섰으며, 1554년부터 1556년까지 여러 지역의 왜구를 끌어모아 수 만명과 천 여척을 이끌고 중국의 해안을 습격해 강소, 절강의 여러 현을 습격했다.

1556년 3월에 진동, 섭마 등과 연합해 자계를 함락해 전환을 죽이고 4월에는 종찰 등을 죽였으며, 동향으로 철수한 완악을 포위했다. 호종헌이 고향 친구 나용문을 보내 왕직이 귀순한다면서 회유하자 동생 서홍을 인질로 보내고 투항한다. 진동, 마엽을 공격해서 붙잡아 호종헌에게 넘기며 호종헌이 나용문을 다시 보내 조용히 있으면 사면하고 상을 내리겠다고 하자 평호 동쪽의 심가장으로 갔다가 대기한 명군의 공격을 받고 포위되자 물에 뛰어들어 자결한다.

참고로 그를 다룬 소설인 《김운교전》이 있으며 또한 베트남에는 이를 번역한 《취교전》이 있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그가 의협이 있는 사람으로 묘사되는 등 미화를 두고 있으며 또한 여기서는 창녀인 취교의 권유로 귀순했다가 호종헌의 배신으로 처형되었다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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