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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08:55:02

사무엘 쿠포르

새뮤얼 쿠포르에서 넘어옴
가나의 前 축구선수
파일:external/cdnb.20m.es/kuffour.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새뮤얼 쿠포르
Samuel Kuffour
본명 새뮤얼 오세이 쿠포르
Samuel Osei Kuffour
출생 1976년 9월 3일 ([age(1976-09-03)]세)
가나 쿠마시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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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178cm
직업 축구선수 ( 센터백 / 은퇴)
소속 선수 판토마스 쿠마시 (1983~1990 / 유스)
킹 파살 베이브스 (1990~1991 / 유스)
토리노 FC (1991~1993 / 유스)
FC 바이에른 뮌헨 (1993~2005)
1. FC 뉘른베르크 (1995~1996 / 임대)
AS 로마 (2005~2008)
AS 리보르노 칼초 (2006~2007 / 임대)
AFC 아약스 (2008 / 임대)
아산테 코토코 FC (2009)
국가대표 59경기 3골( 가나 / 1993~2006)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기록
4.1. 대회 기록4.2. 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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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나의 前 축구선수. 1990년대에 조지 웨아와 더불어 아프리카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힌다.[1]

2. 클럽 경력

1993년에 10대의 나이에 벌서 바이언의 1군 소속일 정도로 대형 수비수로 각광을 받았으며 1994-95 UEFA 챔피언스리그 스파르타 모스크바와의 경기에서 챔스 데뷔골까지 터트리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995-96시즌 1. FC 뉘른베르크로 잠깐 임대를 다녀온 뒤에 1997년부터 괴물같은 피지컬로 상대 공격수를 지워버리는 안구정화급 수비력으로 바이언의 주전자리를 차지한다. 특히 98/99 UCL 결승전이였던 맨유와의 경기에서 앤디 콜을 지워버리는 수비력은 일품이였다. 다만 교체해서 들어온 올레 군나르 솔샤르를 막지못해 통한의 역전골을 내주었으며 패배 후 자신의 실책에 땅을 치며 분노하여 흘리는 눈물은 바이언 팬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하였다. 2년 후 쿠포르는 토마스 링케, 파트리크 안데르손 과 함께 철의 쓰리백을 구축하여 2000-01 UCL 우승의 주역이 되 2년전 한을 풀게 된다. 이 후에도 바이언의 주전 수비수로 제 몫을 해준 쿠포르는 그러나 안타깝게도 2004년 자신의 딸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비극을 겪은 이 후 심리적인 요인으로 인해 기량이 순식간에 하락하게 된다. 결국 2005년에 이탈리아의 AS 로마로 떠나게 되지만 로마에서도 별다른 활약을 못하게 되고 이 후 임대를 전전하다 자국 클럽인 아산테 코토로에 반 년 정도 뛰다가 현역에서 은퇴하게 된다.

3. 국가대표 경력

1991년 15세의 나이로 FIFA U-17 월드컵 최종명단에 들어가 우승까지 경험한 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도 16세의 나이로 출전하며 동메달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1993년 FIFA U -20 월드컵에도 연이어 차출되며 팀의 준우승까지 이끄는 등 유소년 시절 엘리트 코스란 코스는 조기에 꽉 잡는 놀라운 커리어를 가졌다. 그러나 정작 성인무대에서는 별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데 이는 당시 아프리카 축구 헤게모니를 나이지라아와 카메룬이 꽉 잡고 있었기 때문에 국제무대에 가나가 나가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가나는 연이은 뒷심부족으로 2002년 월드컵까지 예선에서 탈락했고, 이는 쿠포르의 국대 커리어가 아쉬운 가장 큰 이유다. 마이클 에시앙, 아사모아 기안, 설리 문타리 등 이른바 가나 황금세대가 등장하며 가나는 2006 FIFA 월드컵 독일 무대에 진출하고, 마침내 선수 생활 말년에서야 쿠포르 또한 생애 첫 월드컵 무대에 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쿠포르의 기량은 정점에서 내려온 상태였고,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인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치명적인 실책으로 빈첸초 이아퀸타에게 골을 허용하며 쿠포르의 월드컵 무대는 이 경기로 끝나버린다.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1] 사실 조지 웨아에 비해 쿠포르의 경우 저평가를 받고 있는데 아마 스트라이커 포지션으로 스포트라이트에 걸맞은 활약을 펼친 웨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비수다보니 스포트라이트가 덜 받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웨아는 발롱도르 수상자이기 때문에 개인 커리어에서 말 그대로 압도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