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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尙州 石造天人像. 8세기 경, 통일신라시대에 현 경상북도 상주시 지역에서 만들어진 석조 천인상(天人像) 2점. 현재 상주박물관에 소장 중이며, 대한민국 보물 제661호로 지정되어 있다.2. 내용
공양상(供養像) 높이 123㎝. 폭 123㎝.
주악상(奏樂像) 높이 127㎝, 폭 123㎝.
8세기 경, 신라인들이 화강암 판석에 새겨놓은 주악천인상(奏樂天人像)과 공양천인상(供養天人像) 2점으로, 원래는 상주시 남성동에 위치한 용화전(龍華殿)에 소장되어 있던 것을 2007년 6월, 연화대석과 석탑재 등과 함께 현재의 상주박물관(경북 상주시 사벌면 삼덕리 산18-7번지)으로 모두 옮겨놓은 것이다.
왼쪽 주악천인상은 당시 한국에서 유행하던 비파를 타고 있으며, 오른쪽 공양천인상은 보주를 받들고 미소 어린 얼굴로 천의를 휘날리며 하늘을 나는 모습을 하고 있다. 목에는 신라 특유의 삼도(三道)가 양각되어 있으며, 세련된 자태를 보이는 균형 잡힌 신체, 각 부분의 사실적인 묘사 등에서 통일신라시대 천부상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두 석상은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석탑 기단의 한 파편이라고만 추정될 뿐 정확히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형태와 크기로 봤을 때 분명 범상치않은 건축물의 자재 중 하나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300여년 전 경북 상주 지역의 석조공예술을 연구해볼 수 있는 자료로, 이에 1980년 6월 11일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었다.
3. 외부 링크
4. 보물 제661호
보호각 밖에 있는 연화대석(蓮花臺石)과 석탑재(石塔材) 등과 함께 상주시 남성동 용화전 안에 있던 것을 1982년 10월 남산공원(신봉동 산2-1번지)로 옮긴 후, 2007.06.20일자로 상주박물관에 옮겨 보관하고 있다.
화강암질의 넓은 돌 2장에 높이 1.27m의 주악상(奏樂像)과 높이 1.23m의 공양상(供養像)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주악상은 왼쪽을 향하여 비파(琵琶)를 타고 있는 모습으로, 화관을 쓴 머리는 앞으로 숙이고 한 발을 앞으로 내밀어 유연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연주하는 자태는 약간 미소를 머금은 단아한 표정이며, 비파를 타는 두 손의 표현은 섬세하고 사실적이다. 어깨에 걸친 옷은 바람에 날리듯이 좌우로 구불거리며 흩날려서 매우 율동적이다. 아랫도리에는 주름이 져 있으며, 윗도리 속에서부터 늘어지는 끈이 좌우로 바람에 날리듯 표현되었다.
공양상은 오른손으로 연꽃 봉우리를 받쳐들고 오른쪽을 향해 있는 모습을 표현하였는데, 자연스럽고 동적으로 묘사되었다.
두 석상이 어디에 쓰였던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옷차림은 당시 복식(服飾)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며, 만들어진 연대는 8세기경으로 추정된다.
화강암질의 넓은 돌 2장에 높이 1.27m의 주악상(奏樂像)과 높이 1.23m의 공양상(供養像)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주악상은 왼쪽을 향하여 비파(琵琶)를 타고 있는 모습으로, 화관을 쓴 머리는 앞으로 숙이고 한 발을 앞으로 내밀어 유연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연주하는 자태는 약간 미소를 머금은 단아한 표정이며, 비파를 타는 두 손의 표현은 섬세하고 사실적이다. 어깨에 걸친 옷은 바람에 날리듯이 좌우로 구불거리며 흩날려서 매우 율동적이다. 아랫도리에는 주름이 져 있으며, 윗도리 속에서부터 늘어지는 끈이 좌우로 바람에 날리듯 표현되었다.
공양상은 오른손으로 연꽃 봉우리를 받쳐들고 오른쪽을 향해 있는 모습을 표현하였는데, 자연스럽고 동적으로 묘사되었다.
두 석상이 어디에 쓰였던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옷차림은 당시 복식(服飾)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며, 만들어진 연대는 8세기경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