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謝衡(? ~ 300)
서진의 인물. 자는 덕평(德平). 사찬의 아들, 사곤, 사부의 아버지, 사안의 백조부.
2. 생애
예주 진국 양하현 사람으로 278년에 건립된 벽옹비에서 박사로 언급된다.280년에 동평상 왕창이 아버지의 전처이자 계모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알고 사직하려 했는데, 사마무가 왕창의 아버지 왕비가 처자식을 두고 있다가 중원에 출사해 나라가 조위와 동오로 나뉘어 전처와 헤어져 왕창의 어머니와 결혼했다는 사정을 상소로 알렸다. 이에 왕창이 통일된 후 이전의 어머니가 오래 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의논을 요청했고, 사형은 왕비에게 두 명의 아내가 있지만 그 이유가 있으니 도덕에는 지장이 없지만 왕창이 애도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왕창이 왕비의 전처와 서로 친척 관계도 아니고 만난 적이 없다는 이유로 애도해서는 안된다고 했으며, 무제는 애도를 허락하지 않는 칙령을 내렸다.
291년에는 국자박사를 지냈고 조정에서 진서의 연대 제한을 논의해 순욱이 연호 정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으며, 왕찬은 가평 이후부터라고 했지만 정하지 못했다. 혜제가 즉위해 이 일을 논의하면서 태시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정하고 이 때 정시 또는 가평을 기년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사형은 태시부터 시작하는 것에 찬성했다.
이후 국자좨주, 태자소부 등을 지냈으며, 302년에는 산기상시를 지냈고 3월에 황태손 사마상이 죽자 어복을 상복으로 1년간 입는 것을 상주하자 혜제가 이를 논의하게 했는데, 사형은 이에 대해 제후의 태자, 천자의 책봉 여부는 존비가 같지 않다. 상복에 따르면 적자의 옷은 장상의 상이라 한다. 천자에게 책봉되지 않은 것이고, 천자에게 책봉되면 문제삼을 필요가 없다고 상주했다.
300년에 사망해 태상경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