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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6 22:33:37

Cyr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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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stalgia Nerds가 설명하는 Cyrix의 역사
Cyrix Instead.
-Cyrix가 잘 나가던 시절, 인텔의 "Intel Inside"에 대응하여 내놓은 슬로건.
1. 상세2. 제품 목록

1. 상세

1988년부터 1997년까지 존재했던 CPU 팹리스 반도체 회사이다. 인텔과 AMD의 사이에서 486 시대를 풍미했던 업체중 하나.

텍사스 인스트루먼츠 출신이었던 톰 브라이트먼과 제리 로저슨이 창업했다. 당시 x86 마이크로아키텍처 CPU의 FPU 보조 프로세서였던 인텔 80387을 리버스 엔지니어링해 FasMath 프로세서를 개발하면서 시작했다.

이후 인텔 80486를 내놓았을 때, 1992년 Cyrix는 인텔 80386의 소켓과 호환되면서 80486의 명령어 세트를 넣고 80386보다 더 빠른 성능의 염가형 프로세서 Cx486SLC와 Cx486DLC를 발매하고 이를 IBM, 내셔널 세미컨덕터 같은 수많은 회사들에게 라이선스를 허용하면서 사무용 컴퓨터 시장에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후에도 같은 방식으로 5x86 프로세서 제품군을 내놓아 염가형 컴퓨터로 인기가 좋았다.

이에 분노한 인텔은 Cyrix에 상표권과 특허 침해로 소송을, Cyrix는 반독점 위반으로 반소하면서 맞섰고, 이 소송전에서 Cyrix가 승리하면서 인텔에게 합의금을 받아낼 수 있었다. 오히려 인텔의 펜티엄 2와 펜티엄 프로가 Cyrix의 특허를 침해한 것을 인정받았고, 그 결과 인텔은 Cyrix와 상호 라이선스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Cyrix는 3D 게임 패러다임 전환에 대한 적응에 실패하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당시 CAD 같은 전문 도구 프로그램을 제외한, 게임을 비롯한 대부분의 응용 프로그램은 주로 정수 연산에 의존하였고, 그렇기 때문에 Cyrix는 정수 연산 성능 개선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상대적으로 부동소수점 연산 성능 개선에는 등한시하였다. 1996년 퀘이크가 등장해 3D 게임의 시대가 되면서 FPU 사업으로 시작한 Cyrix는 아이러니하게도 부동소수점 연산 성능이 뒤쳐진 것이 큰 약점이 되었다. 게다가 펜티엄은 부동 소수점 연산 명령이 정수 연산 명령과 중첩해 실행(Pipelining)할 수 있었는데, 이를 알고 있었던 존 카맥은 텍스처 매핑 작업 중 막대한 부동 소수점 연산 성능이 필요한 원근 보정(perspective correction) 연산 작업을 어셈블리어를 이용해 최적화하였다. 그러나 Cyrix의 CPU들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비슷한 성능 등급의 펜티엄과 비교해 절반도 안 되는 성능을 보여 주었다. Cyrix는 경쟁을 위해 가격을 크게 인하해야 했고, 그 결과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손실을 감당하지 못한 Cyrix는 결국 1997년 내셔널 세미컨덕터에게 인수합병 됐다.

Cyrix를 인수한 내셔널 세미컨덕터는 몇 가지 문제점에 봉착하게 되었다. 첫 번째는 옛 Cyrix 개발진들과 내셔널 세미컨덕터의 갈등이었다. 내셔널 세미컨덕터는 임베디드 기기용 CPU를 만들기를 원했으나, 옛 Cyrix 개발진들은 여전히 사무용 PC를 위한 CPU를 만들고 싶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제 인텔과 AMD에 비해 경쟁에 많이 뒤쳐지기 시작했다. 1999년에 인텔과 AMD는 펜티엄 3 애슬론 프로세서로 1GHz 경쟁을 시작했지만, 옛 Cyrix 개발진들은 6x86 MX의 후속작 MII의 MII-PR433 제품을 그것도 이듬해인 2000년에 내놓는 것이 고작이었다. 게다가 MII-PR433의 동작 클럭은 고작 300MHz에 불과했다. 또한 인텔은 사무용 컴퓨터 시장을 위해 1998년부터 셀러론 제품군을 내놓기 시작했고, AMD 역시 2000년부터 듀론 제품군을 내놓기 시작해 MII 프로세서의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

또한 당시 인텔이나 AMD는 메인보드의 정규 클럭으로 주로 66, 100, 133MHz를 썼고, 메인보드는 이에 대해 적절한 클럭 분할기(clock divider)로 33MHz 클럭을 생성해 PCI를 비롯한 입출력 하부 장치들을 위해 썼지만, Cyrix의 MII 프로세서는 75, 83, 95MHz의 비정규 클럭으로 구성한 제품이 일부 있었고, 이는 1/3 클럭 분할기를 쓰는 경우 느려지는 단점이 있었다. 그렇다고 성능을 위해 1/3 대신 1/2 클럭 분할기를 썼다가 PCI 또는 하드디스크 등 입출력 하부 장치들이 고장나기 십상이었다. 또한 1997년 Cyrix는 6x86 MX-PR200 CPU의 불량으로 1만개나 리콜하기도 했다. 또한 옛 Cyrix의 사업들로 인해 내셔널 세미컨덕터까지 재정난을 겪기 시작했다. 결국 내셔널 세미컨덕터는 2년만에 CPU 사업 부문을 1999년 인텔과의 특허 침해 소송에 x86 관련 특허를 확보하려고 분주했던 VIA 테크놀로지에 매각했다.

옛 Cyrix 개발진들은 MII 프로세서의 후속작인 Cyrix III PR500, PR533 프로세서도 2000년 2월 22일 출시했으나, 시장에서 평가가 나쁘자 VIA 테크놀로지는 2000년 6월 6일, IDT에게서 인수한 Centaur 테크놀로지의 WinChip[1]의 후속작으로 대체했다. WinChip의 후속 CPU는 여전히 인텔과 AMD에 비해 성능은 떨어졌지만, 소비 전력이 훨씬 적고 크기도 작아 가격도 저렴하게 내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Cyrix의 계보는 WinChip의 후속작으로 대체되면서 끝났다. 이에 대해 Centaur 테크놀로지의 CEO 글렌 헨리는 "Cyrix는 좋은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대기업(내셔널 세미컨덕터)에 인수되면서 그들의 가치는 부풀려졌습니다. VIA 테크놀로지가 Cyrix를 사들였을 때 그들은 400달러짜리 제품을 만들었지만, 우리는 60달러짜리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더 좋은 제품을 만들었음을 인정 받았습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VIA 테크놀로지는 비판받던 성능 등급(Performance Rating, PR) 정책도 없앴다.

6년 후인 2003년, 내셔널 세미컨덕터는 옛 Cyrix MediaGX의 후속작인 Geode 사업 부문을 AMD에 매각했다. Geode 사업 부문을 인수한 AMD는 지오드 시리즈로 출시한 적이 있으나, 2019년에 단종하고 라이젠 임베디드 시리즈 제품군으로 대체했다.

2. 제품 목록


[1] 펜티엄 호환 CPU로 1995년부터 2년 정도 생산하다 중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