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 1881년[1] |
강원도
울진현 서면 후곡동 (현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후곡동마을)[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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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12년 12월 18일 |
경성감옥 |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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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의병장. 199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사문성은 1881년 강원도 울진현 서면 후곡동(현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후곡동마을)에서 태어났다.그는 일찍이 의병에 가담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를 입증할 기록은 없으며, 1911년 9월 경상북도 봉화군 일대에서 김병일(金炳一) 등 동지들과 함께 화승총과 곤봉을 휴대하여 부호들의 집에 잠입, 군자금을 모집하여 독립운동에 쓰고자 했다.
이 때문에 곧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그해 8월 1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강도 및 살인 혐의로 대구지방법원의 공판에 회부되었으며, 일부 혐의는 공소가 면소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2일에는 대구지방법원에서 위 혐의로 결국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이에 공소하였으나 10월 1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었고, 이에 상고까지 했지만 1912년 11월 27일 최종적으로 조선총독부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원심 판결이 그대로 적용되었다.
결국 그해 12월 18일 경성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사문성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1912년 당시 판결문에 1912년 당시에 31살이었다고 기재되어 있다.
[2]
독립유공자
백수영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