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1-21 13:02:30

사마종

<colbgcolor=#800080><colcolor=#fff> 司馬宗
사마종
작위 남돈왕(南頓王)
성씨 사마(司馬)
이름 종(宗)
연조(延祚)
부친 사마량
생몰기간 ? ~ 326년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진나라(晉)의 황족으로 자는 연조(延祚).

2. 생애

선제 사마의의 손자로 여남문성왕 사마량의 아들이다. 원강(元康) 연간에 남돈현후(南頓縣侯)로 봉해졌다가 작위가 공(公)으로 올라갔다. 유교(劉喬)를 토벌할 때 공을 세워 작위가 왕으로 올라갔고 식읍이 10,000호가 되었으며, 정로장군(征虜將軍)에 임명되었다. 이후 영가의 난으로 중원이 혼란에 빠진 가운데 형인 사마양과 함께 장강을 건너 건업에 당도하였으며, 산기상시(散騎常侍)로 임명되었다. 민제가 장안에 있을 때 평동장군(平東將軍)으로 임명되었다.

원제 사마예가 즉위한 뒤 무군장군(撫軍將軍)으로 임명되고 좌장군(左將軍)을 겸임하였다. 명제 사마소가 즉위한 뒤 장수교위(長水校尉)가 더해졌고 좌위장군(左衛將軍)으로 전임되었으며, 우윤과 함께 명제의 신임을 받았고 금군을 거느렸다.

사마종은 왕도, 유량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측근을 많이 두어서 왕도와 유량의 불만을 샀다. 명제는 사마종이 종실의 일원이기에 사마종을 용서했지만 명제가 병으로 누우면서 상황이 달라져 사마종은 우윤과 함께 몰래 반란을 모의하였다. 하지만 유량이 명제의 침전에 이르러 눈물을 흘리며 이 사실을 알리면서 명제는 비로소 깨달았다.

결국 사마종은 표기장군(驃騎將軍)으로 전임되고 우윤은 대종정(大宗正)으로 전임되었는데, 사마종은 여기에 분노와 원망을 품었다. 326년, 어사중승 종아가 사마종을 탄핵하고 유량이 우위장군(右衛將軍) 조윤(趙胤)에게 사마종을 체포하도록 명했다. 사마종은 조윤을 막으려고 했으나 도리어 패배하여 살해당했다. 사마종은 황실 족보에서 삭제되고 성도 마(馬)가 되었으며, 처자는 진안군(晉安郡)으로 유배되었다가 사면을 받았다. 슬하에 사마작(司馬綽), 사마초(司馬超), 사마연(司馬演)이 있었지만 모두 폐서인되었다. 사마종은 함강(咸康) 연간에 와서야 황실 족보에 다시 이름을 올렸으며, 사마작을 봉거도위(奉車都尉), 봉조청(奉朝請)으로 삼았다.

성제 사마연은 사마종이 처형된 사실을 몰랐으나 소준의 난이 평정된 뒤에 유량을 불렀다. 다음은 성제와 유량의 대화이다.
성제: 평소의 그 백두공(白頭公)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유량: 반란을 모의해서 처형되었습니다.
성제: 외숙께서는 남이 모반하여 곧바로 죽였다고 말씀하셨는데, 만약 사람들이 외숙께서 모반하셨다고 한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말을 들은 유량은 두려워서 낯빛이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