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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5 17:42:40

사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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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사르후 (2022)
1619, The Battle of Sarhū
<colbgcolor=#dddddd,#010101><colcolor=#000000,#dddddd> 장르 역사, 전쟁, 액션
감독 이영상
각본 이성주
제작 이영상, 김명훈(기획)[1]
촬영 이영상
제작사 우라웍스, 국립진주박물관
개봉일 2022년 9월 27일[2]
상영 시간 23분
국내 스트리밍
[[유튜브|
YouTube
]]
상영 등급 미정
공식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시놉시스3. 등장인물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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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2022년 역사, 전쟁 단편 영화이다. 감독은 이영상이다.

국립진주박물관이 박물관 영상 목적으로 연재한 화력조선 시리즈 시즌3 콘텐츠의 2번째 영상으로 제작했다.

2. 시놉시스

1619년
누르하치 무순성을 점령하자 명은 더 이상 후금의 발호를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산해관 총병 두송(서로군), 개원 총병 마림(북로군), 요양 총병 유정 등 지휘관들을 뽑아 후금을 공격하기로 결정합니다. 이때 문제가 됐던 게 후금의 팔기였습니다. 당시 팔기는 동북아시아 최강의 기병이었고, 이를 상대할 자신이 없었던 명군이 선택한 건 바로 조선의 총병이었습니다.

“후금의 팔기를 상대하는데 총병 만한 게 없다.”

명은 조선에 총병을 요청합니다.
당시 조선에는 광해군 임란 직후 키워낸 정예 포수들이 있었습니다.
명의 출병 요청을 거절하지 못한 조선 조정은 1619년 2월 평안도 창성에서 부대를 편성하게 됩니다.

도원수 강홍립은 전군 1만 3000명을 중영, 좌영, 우영의 세 전투부대로 나눴습니다. 이들의 행적을 살펴보면,

2월 19일 조선군은 압록강을 건너기 시작했고,
2월 24일 본격적인 행군을 시작.
2월 26일 진자두(榛子頭)에서 유정의 명군과 합류

행군은 계속 이어졌고, 조선군은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2월 29일 조선군은 군량이 고갈 됩니다. 3월1일에야 수 십 석이 도착했지만, 1만 3,000여명 군사의 주린 배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죠.

그리고 3월 2일 허기진 배를 움켜잡은 조선군 앞에 후금의 기병 500기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날은 춥고, 배는 허기진대 조선군은 선전합니다. 중영장 문희성의 분전(奮戰)으로 후금 기병을 물리치지만, 이들의 진격을 후금은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조선군은 팔기의 저돌적인 공세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1만여명의 조선군이 부차 들판의 먼지와 함께 사라집니다.

패배한 전투였기에 사르후 전투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짧습니다.

단편영화 '사르후'는 역사 속 사르후 전투의 의미나 배경을 설명하기보다는 이 전투에 참여했던 이름 모를 군인들에 대한 추적이며, 추모를 위한 작은 노력입니다. 이 마음이 시청자들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 유튜브 영상 코멘터리

3. 등장인물

4. 기타



[1] 국립진주박물관의 학예연구사이다. [2] 유튜브 공개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