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史 料 / Historical records역사 연구에 필요한 문헌이나 유물. 문서, 기록, 건축, 조각 따위를 이른다.
2. 분류
분류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사료의 형태에 따라 기구, 유골, 기념물, 예술품, 민속품, 유적 등을 이르는 물적 사료와 고문서, 석판, 혹은 민요나 시가와 같은 구전 등을 이르는 기록 사료로 나누는 방법이 있고, 사료를 작성한 주체에 따라 국가 사료, 기관 사료, 개인 사료로 나누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현재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분류법은 1차, 2차, 3차로 나누는 방법이다. 당대에 사는 사람이 직접적으로 남긴 기록을 1차 사료, 당대 또는 후대에 1차 사료를 기반으로 정리한 사료를 2차 사료, 2차 사료를 취합하여 정리한 3차 사료로 나눈다.그런데 이러한 원론적인 서술과 달리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1차 사료는 '해당 시대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기록'과 동일시되어 판단된다. 고대사는 당대의 자료가 매우 희박한 관계로 먼 후대에 기록되어 원론적으로는 2차 사료에 해당함에도 가장 오래되고 날 것에 가까운 자료라면 1차 사료로 간주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들 수 있다. 삼국시대를 살았던 사람이 직접 기록한 사료는 체계적으로 정리된 사서가 아니라 각종 비석이나 목간 등 적은 양의 내용이 들어있는 자료밖에 남지 않았기에 엄밀한 의미로서의 1차 사료만 가지고 이야기하기에는 양적인 면이 너무 부족하다. 따라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삼국시대로부터 먼 미래에 쓰인 사서임에도 사실상 1차 사료의 위상을 지니는 것이다. 가야사는 워낙 사료가 없어서 심지어 신증동국여지승람까지도 1차 사료로 간주하고 연구를 진행할 수도 있다.
학술적 가치는 1차 사료>2차사료>3차사료 순으로 높다. 다만 신뢰성을 묻자면 거꾸로 1차 사료<2차사료 순으로 신뢰성이 높다. 1차 사료는 기록자의 주관이 개입되는 경우가 많으나,[1] 2차 사료가 여러 1차 사료를 교차검증하여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다만, 광개토대왕릉비처럼 2차 사료가 작성될 때 참고하지 않았던 1차 사료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새롭게 발견된 1차 사료를 포함해서 연구를 진행하면 된다. 예를 들면 광개토대왕이 삼국사기에는 주몽의 13세손으로 되어 있고 광개토대왕릉비는 17세손으로 되어 있는데, 그러면 한쪽이 틀렸고 다른쪽이 맞다고 할지, 아니면 둘 다 맞다고 할 수 있는 설을 만들지 등의 해석이 연구자의 몫이 되는 것이다.
3차 사료는 2차 사료에서 나타나는 역사가들의 주장을 검증하지 않고 그저 중립적인 관점에서 모아놓기만 하는 경우도 많아서 2차 사료보다 신뢰성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간혹 이 신뢰성을 오해해서 본질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위키 계열 사전을 가리켜 3차 사료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분류상으로는 3차 사료이다.
3. 관련 문서
[1]
프로파간다 요소는 예사이고, 그런 의도가 없었는데도 기록자가 은연 중에 지닌
편견이 작용하거나 해당 기록자 개인은 미처 알 수 없는 영역의 정보에 대해서는 누락되거나 곡해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