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비를레(virlai)는 중세의 프랑스에서 유래한 운율을 가진 시작법이며 이 비를레 시를 바탕으로 한 음악을 가리키는 용어이기도 하다. 원래 비를레는 춤출 때 부르는 무도가(舞蹈歌)였는데, 후에 이 무도가가 독자적인 문학/음악 장르로 발전하였으며 르네상스 초기까지 유행하다가 이후 쇠퇴하였다. 기욤 드 마쇼가 이 장르에서 뛰어난 시인이자 작곡가로 유명하며, 마쇼보다 100년 후에 태어난 기욤 뒤파이(Guillaume Du Fay)는 비를레 형식을 잘 활용한 최후의 음악가로 유명하다.2. 시(詩) 형식 비를레
시 비를레에서 독특한 것은 후렴구가 맨 처음 등장하고 2개의 운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형식은 다음과 같다.후렴구(A) - Refrain
1소절(B) - Stollen
2소절(b) - Stollen
3소절(a) - Abgesang
후렴구(A) - Refrain[1]
아래의 시는 기욤 드 마쇼의 명랑하고 사랑스러운 여인(Douce Dame Jolie)이라는 비를레이다.[3]
<Refrain>
Douce dame jolie,
Pour dieu ne pensés mie
Que nulle ait signorie
Seur moy fors vous seulement.
<Stollen1>
Qu'adès sans tricherie
Chierie
Vous ay et humblement
<Stollen2>
Tous les jours de ma vie
Servie
Sans villain pensement.
<Abgesang>
Helas! et je mendie
D'esperance et d'aïe;
Dont ma joie est fenie,
Se pité ne vous en prent.
<Refrain>
Douce dame jolie,
Pour dieu ne pensés mie
Que nulle ait signorie
Seur moy fors vous seulement.
이 시는 일종의 각운시인데 후렴구(refrain)와 abgesang은 각 절의 끝 철자가 e/e/e/t로 끝나고 stollen은 e/e/t로 끝난다. 이처럼 refrain과 abgesang은 운율이 같고 내용이 다르며 stollen은 refrain과 내용과 운율이 모두 다르다.
이 Douce Dame Jolie는 비를레의 가장 간단한 예이며 변격과 복잡한 구조를 갖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stollen의 소절이 2개가 아니라 여러 개가 있거나 stollen 각 소절의 운율이 BCb, BbCc 이런 식으로 바뀌거나 주기적으로 반복되기도 하고 abgesang이 2개 이상이 있거나 생략되기도 하는 등, 상당히 많은 변격이 가능하다.
3. 음악 형식 비를레
음악 비를레는 시(詩) 비를레를 노래로 구현하기 위한 음악형식이다. 아래 그림처럼 같은 운율을 갖는 후렴구와 abgesang은 선율 A로, stollen은 선율 B를 갖는다. 즉, 기본적으로 내용과 관계없이 같은 운율을 가진 구절은 같은 선율을 갖도록 작곡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규칙도 많은 변격이 있기 때문에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형식의 비를레 음악이 존재할 수 있다.[4]- 비를레의 기본 구조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다면 아래의 악보를 보면서 음악을 들어보자. 앞서 소개한 Douce Dame Jolie를 작자가 직접 음악으로 옮긴 작품인데 A, B 선율에 적혀 있는 가사를 살펴보면 전술한 내용이 이해가 될 것이다.
- 비를레 형식으로 작곡된 Douce Dame Jolie
비를레는 주로 단선율로 연주되며 무반주 독창으로 연주하거나 독창에 류트나 비올, 피리와 같은 기악반주를 동반한다. 중세기 음유시인들이 많이 사용했던 음악형식이기도 하다.
4. 발라타(Ballatta)
비를레와 관련하여 언급할만한 형식으로 발라타가 있다. 이 발라타 라는 용어는 라틴어로 춤추다(ballare)는 뜻에서 유래한 것으로 원래 이탈리아에서 춤을 출 때 부르는 무가(舞歌)였다. 이 발라타는 프랑스에서 발달한 비를레와는 지역적 기원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중세 후반기에는 비를레와 거의 유사한 형식을 갖는 세속가요로 정착하였다.[5]몇몇 사소한 차이가 있긴 하지만 발라타는 사실상 '비를레의 이탈리아어 버전'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로 시와 음악 모두 형식이 거의 동일하다. 발라타에서는 비를레의 후렴구에 해당되는 부분을 리프레사(ripresa), 스톨렌은 피에디(piedi), 아브쥐상은 볼타(volta)라고 명명한다. 다만 노랫가사에서 대체로 엄격한 율격을 준수한 비를레와 달리 발라타는 상대적으로 율격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음악의 반복 규칙만큼은 똑같이 지켰다.
이 발라타 양식으로 뛰어난 시/음악 작품을 남긴 사람으로 프란체스코 란디니(Francesco Landini)가 가장 유명한데, 란디니의 발라타 '오 사랑이여, 이 여인이 내게 자비를 베풀어 주도록(Questa fanciull', Amor fallami pia)'을 보자.
(ripresa)
Questa fanciull', Amor, fàllami pia,
Che m'ha ferito 'l cor nella tuo via.
(piedi 1)
Tu m'a', fanciulla, sì d'amor percosso,
Che solo in te pensando trovo posa.
El cor di me da me tu a' rimosso
Cogl'occhi belli et la faccia gioiosa.
(volta 1)
Però al servo tuo, de'!, sie piatosa:
Merçè ti chero alla gran pena mia.
(represa)
Questa fanciull', Amor, fàllami pia,
Che m'ha ferito 'l cor nella tuo via.
(piedi 2)
Se non soccorri alle dogliose pene,
Il cor mi verrà meno che tu m'a' tolto.
Che la mia vita non sente ma' bene,
Se non mirando 'l tuo veçoso volto.
(volta 2)
Da poi fanciulla che d'amor m'a involto
Priego ch'alquanto a me benigna sia.
(represa)
Questa fanciull', Amor, fàllami pia,
Che m'ha ferito 'l cor nella tuo via.
이 시를 보면 전체적으로는 비를레와 비슷한 율격를 보여주고 있지만 piedi 1과 2의 운율이 같지 않다. 또한 volta 2의 운율도 후렴구와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발라타는 비를레처럼 율격을 엄격하게 지키기 보다는 좀더 자유롭게 창작되었다.
한편 중세 후기 이후에는 이 발라타로부터 규칙성이 많이 거세되고 좀더 자유로운 형식을 추구한 프로톨라(frottola)가 발달하였으며, 이 프로톨라는 르네상스 마드리갈(madrigal)의 기원이 된다.
[1]
괄호안의 알파벳은 운율과 관계가 있는데 이전에 나온 구절과 운율과 내용이 모두 같으면 같은 같은 철자의 대문자로 표기하고 운율이 같으나 내용이 다르면 같은 철자의 소문자로 표기한다. 운율과 내용이 모두 다르면 다른 철자로 표기한다.
[2]
Refrain은 보통 후렴구로 번역하는데 stollen과 abgesang은 적절한 번역어가 없기 때문에 그대로 인용한다.
[3]
정확하게는 비를레의 일부이다.
전체 시는 해당 형식을 1부(part)로 해서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로 끝나는 짧은 비를레를 따로 베르제레트(Bergerette)라고 부르기도 한다.
[4]
해당 그림은 위키백과의 virelai 항목에서 가져온 것이다.
[5]
참고로 발라타를 이름이 비슷한
발라드(ballade)와 같거나 유사한 형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발라타와 발라드는 엄연히 다른 음악이므로 혼동하지 않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