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 |||
病 | 入 | 膏 | 肓 |
병 병 | 들 입 | 염통 밑 고 | 명치끝 황 |
1. 개요
병이 고황까지 들었다는 말로, 본디는 난치나 불치병에 쓰던 말이었다. 지금은 의미가 확장되어 어떠한 상황이 이리 꼬이고 저리 꼬여 회복 불능에 빠진 상태를 비유하는 데도 쓰인다. 줄임말인 고황(膏肓) 역시 이제는 같은 의미로 사용되나, 간혹 '남은 물론 자신도 도저히 어쩔 수 없을 만큼 무언가에 깊이 빠져든 상태'를 뜻하기도 한다.[1] 출전은 관우의 애독서였던 춘추좌씨전.2. 설명
춘추시대의 진(晉)나라 군주였던 경공(景公)의 일화에서 유래되었다. 경공은 즉위한 후 대장군 도안고(屠岸賈)를 사구(司寇)[2]에 임명했다. 문제는 도안고가 진의 호족이었던 조씨 문중[3]과 원한관계에 있었던 것. 경공의 선선대 군주였던 영공(靈公)이 재상 조돈(趙盾)[4][5]의 간언에도 불구하고 방탕한 폭정을 하자 빡친 조돈의 동생 조천(趙穿)이 영공을 시해하고 영공의 숙부였던 흑둔(黑臀)[6]을 성공(成公)으로 옹립한 일이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조씨와 도안고 사이가 벌어진 것. 당장 성공의 치세에서는 조돈의 아들 조삭(趙朔)이 성공의 누이와 결혼하여 부마가 되는 등 조씨 가문이 잘 나갔으나, 경공이 즉위한 후 정세가 일변했다. 도안고가 영공 시해의 책임을 물어 조씨 가문을 습격해 멸족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임신 중이던 조삭의 아내는 공실의 여인이었던 까닭에 목숨을 건졌는데, 이후 유복자로 태어난 것이 조문자(趙文子) 무(武)이다. 조무는 공손저구(公孫杵臼), 정영(程嬰), 한궐(韓厥)[7] 등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세력을 길러 복수에 성공했으며, 이를 그린 작품이 중국 고전 4대 비극의 하나로 꼽히는 조씨고아이다.세월이 흘러 10여년 뒤, 경공이 잠을 자는데 꿈에 귀신이 나와 '어째서 너는 나의 자손을 죽였는가! 용서할 수 없다'고 쫓아왔다. 꿈에서 깬 경공이 점쟁이를 불러 대체 어떻게 된 조화인지 물어보자 점쟁이가 해몽했다.
"죄 없이 죽은
공신의 조상이 저주를 내렸습니다. 그의 혼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를 달랠 수 있겠는가?"
"그게 말입니다... 실은 이게 보통 원한이라면 달랠 수 있지만 이 원한은 여간 사무친 원한이 아닙니다. 소신이 감히 말씀드리건대, 아무리 길게 잡아도 내년 햇보리를 맛보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를 달랠 수 있겠는가?"
"그게 말입니다... 실은 이게 보통 원한이라면 달랠 수 있지만 이 원한은 여간 사무친 원한이 아닙니다. 소신이 감히 말씀드리건대, 아무리 길게 잡아도 내년 햇보리를 맛보실 수 없을 것입니다."
불안해진 경공은 근심하다 결국 병이 나고 말았는데, 병이 깊어 위중해지도록 진의 의사들은 '시간을 더 주셔야'라는 말 외엔 똑같이 속수무책이었다. 국내에서 답이 나오지 않으니 외국의 의사들을 초빙할 수밖에. 마침 이웃 국가였던 진나라가 이 소식을 듣고 딱히 여겨 자국의 고완(高緩)이라는 명의를 보내주겠다고 연락해왔다. 당대의 명의가 왕진을 온다는 말에 경공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지만, 이대로 병이 나았다면 고사성어로 성립될 리가. 경공의 꿈에 병이 두 동자로 변하여 자기들끼리 대화를 하는 것이었다.
"큰일났다. 진의 의사인 고완이 여기로 온다는데, 고완은 명의야. 그가 손을 쓴다면 우리는 끝장이야."
"큰일이네, 가만! 그럼 어딘가로 도망가면 되지 않을까? 이봐! 심장과 횡격막 사이에 숨는 건 어때?"
"그거 좋겠다. 그리 들어가서 숨어 있기로 하자."
"큰일이네, 가만! 그럼 어딘가로 도망가면 되지 않을까? 이봐! 심장과 횡격막 사이에 숨는 건 어때?"
"그거 좋겠다. 그리 들어가서 숨어 있기로 하자."
괴이한 꿈도 다 있다고 생각한 경공이었으나, 곧 고완이 도착해서 진맥을 한 후, 쓴 얼굴로 입을 열기를,
"이거... 아무래도 치료가 어렵겠습니다. 하필이면 병이 심장과 횡격막 사이로 들어가서 말입니다. 여기는 약도 듣지 않고 침도 닿지 않는 곳이라 명의인 제 능력으로도 미치지 못합니다."
하고 진단을 내리자 '과연 고완은 천하의 명의로구나. 후히 대접해 보내주거라.'고 말할 뿐 뭔가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포기하고 편해진 경공은 마음이 안정되니 오늘 내일 하던 병의 진전도 멎고 건강을 되찾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듬해 봄이 되자 햇보리가 수확되어 맏물이 임금인 경공의 수랏간에 올라왔는데, 숟가락을 들던 경공에게 '햇보리도 못 먹고 죽을 것'이라던 점쟁이의 예언이 떠올랐다. 햇보리가 올라온 밥상이 눈 앞에 놓이자 작년 점쟁이의 예언에 새삼 빡친 경공은 요망한 점쟁이을 참하라는 명을 내리고 돌아와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뱃 속이 꾸르륵거리며 난리가 난 것 아닌가. 아픈 배를 쥐고 화장실로 달려가 배변작업을 시작할 때까지는 좋았지만, 갑자기 변소 바닥이 무너져버렸다! 소리를 듣고 놀란 시위가 헐레벌떡 달려왔을 때는 이미 경공이 화장실에 빠져 죽은 다음이었다[8][9]. 결국 점쟁이의 말대로 경공이 햇보리를 맛보는 일은 없었다. 역대 왕들의 사인 중 최악으로 당당히 이름 올릴 수 있을 듯...[10] 베개에 눌려 죽은 동진의 효무제 사마요는 그나마 침대에서 죽기라도 했지... 이 처참한 광경을 본 신하들은 경악과 황당함을 금치 못해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여담으로, 경공의 환관인 강충은 그날 아침에 '경공을 업고 하늘로 오르는 꿈'을 꾸고 이를 동료들에게 자랑했는데, 말이 씨가 되어 순장당했다. 꿈을 떠벌이다 결국 입이 방정으로 순장당해 경공을 진짜 모신 것.
[1]
예를 들어 자연 풍경을 사랑하는 태도가 지나침을 자조적으로 표현할 때 쓰는 천석고황(泉石膏肓)이라는
사자성어가 이런 용례에 해당한다.
[2]
오늘날의 법무장관
[3]
후일 진을 갈라
조나라를 세우는 바로 그 집안이다.
[4]
진문공이 공자 중이로 열국을 편력하던 시절의 가신인 조최,趙衰,의 아들이다.
[5]
盾의 보편적인 독음은 '순'이지만(
모순의 순이 바로 이 글자이다), 사람 이름에 쓰일 경우에는 돈으로 읽는다.
[6]
여담이지만 사람 이름이 진짜로 검은 엉덩이다. 춘추오패의 한 사람인
진문공의 아들인데, 대체 진문공은 무슨 생각으로 아들 이름을 검은 엉덩이라고 지은 걸까나... 진짜 엉덩이가 까맸다 보다
[7]
한나라를 세운 집안의 인물이다.
[8]
판본에 따라서는 즉사하지는 않고 변소에서 구조되었지만 똥독이 심하게 올라와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사망했다는 얘기도 있다.
[9]
1184년
신성 로마 제국의
에어푸르트에서도
에어푸르트 변소 사고라 하여, 60여 명의
귀족들이 정치적인 문제로 회의를 하다가 바닥이 꺼지면서 똥통에 빠져죽은 사건이 있었다(...). 옛날 화장실의 구조 상, 황당하긴 해도 충분히 있음직한 사고였던 듯 하다.
[10]
다만, 변소에 빠져 죽지는 않고 변소에 가려다가
갑자기 쓰러져서 죽었다는 판본도 있다. 여기서도 햇보리밥을 먹지 못했다는 건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