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때의
승려. 태종 정관(貞觀) 연간에 장안(長安) 회창사(會昌寺)에 가서 현장(玄奘)의 문인이 되었다. 외모가 당당하고 밝았고, 젊어서부터 높은 절개를 보였다. 장안 대총지사(大總持寺) 살파다부(薩婆多部) 도악법사(道岳法師)의 제자가 되었다. 19년(645) 현장이 서역(西域)으로부터 돌아오면서 범문경본(梵文經本) 6백여 부(部)를 가지고 와 장안 홍복사(弘福寺)에서 역경(譯經)할 때 역장(譯場) 안에 항상 대소승 경론을 암해(諳解)하는 사람이 12명, 철문(綴文)하는 사람이 9명, 자학(字學) 및 범어(梵語)를 증명하는 사람이 각각 1명, 필수(筆受)하는 사람이 약간 명 있었다. 스님은 철문하는 사람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는데, 현장대사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12권은 스님의 철문을 거쳐 완성되었다. 고종(高宗) 영휘(永徽) 3년(652) 모반 사건에 휘말려 피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