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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복스/활동/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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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지
이희진
심은진
간미연
윤은혜


{{{-2 {{{#!folding [ 전 멤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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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1집

EQUALIZEHER
1997.07.07
정규 2집

Baby V.O.X II
1998.09.15
정규 3집

Come Come Come Baby
1999.07.21
정규 4집

Why
2000.05.15
정규 5집

Boyish Story
2001.06.14
스페셜 5.5집

Baby V.O.X Special Album
2002.04.24
정규 6집

Devotion
2003.04.03
정규 7집

Ride West
200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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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결성 과정2. 베이비복스의 시작 (1집 활동 및 차유미의 탈퇴)3. 팀 개편 (정현전, 정시운의 탈퇴와 간미연, 심은진의 영입)

1. 결성 과정

1996년, 영국에서 데뷔해 전세계적으로 걸파워 신드롬을 이끌어냈던 5인조 걸그룹 스파이스 걸스의 영향력은 국내에서도 거셌는데 여자 가수 시장이 열악했던 틈새 시장을 공략해 국내 가수의 공연 매니지먼트를 주로 맡고 있던 DR뮤직의 대표 윤등룡은 춤도 잘추고 노래도 잘하는 여성그룹을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한국판 스파이스 걸스를 기획한다. 우선 부산에서 모델로 활동하며 무용을 전공했던 정시운을 비롯해 팀의 리더 정현전을 영입했으며 평소 친분이 있는 작곡가에게 소개받았던 캘리포니아 출신 재미교포 차유미를 리드보컬로 영입했다. 이어서 서울 동대문에서 이희진을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픽업했고 1996년 겨울 김이지도 길거리 캐스팅으로 픽업하며 다섯명의 라인업을 만들어냈다. 이들의 첫 앨범은 미국 현지에서 녹음했으며 전체적인 음반 컨셉은 '걸파워 신드롬'에 걸맞은 '여성들을 대변한다' 라는 것으로 채택했다. 실제로도 <머리하는 날>, <남자에게 (민주주의)>, <미혼모> 등의 앨범 수록곡들은 (그 당시를 기준으로) 현대 여성의 진솔한 생각을 대변하고 있다. 1집 앨범의 제목인 <Equalize Her> 역시 '여성들에게 평등하라'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파일:HDg8QRK.jpg

1집 시절 베이비복스. 왼쪽부터 김이지, 차유미, 정현전김민정?, 정시운, 이희진 어서 와 이런 베이비복스는 처음이지? H.O.T. 전사의 후예? 이희진만 정상인거 같다 정현전은 째려보고 있다 우리가 아는 섹시한 김이지가 아니다
이들 다섯명은 베이비복스라는 팀명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는 'Baby Voice of Expression'의 약자이다. 사실 1집 당시 인터뷰에선 앞에 있는 'Baby'는 1집에서만 사용하는 서브 타이틀이며 '귀엽다' '상큼하다'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고 팀명에 대해 설명할땐 'V.O.X'의 약자인 'Voice of Expression'의 뜻 '목소리로 표현하다' 라고만 언급했다. 팀명에 대한 세부적인 계획이 따로 있었던거 같은데 결국엔 무산된듯하다. 이후에도 팀명에 대한 정확한 뜻은 멤버들도 소속사도 딱히 정의하지 않았다. 두 단어를 최대한 이어서 생각해볼때, 본래 'Baby'의 사전적 의미는 '아기; 새끼', '(집안・단체의) 막내', '아이 같은 사람' 등으로 정의되지만 여기서 쓰인 'Baby'는 그러한 '사전적 의미'로 보기보다는 'Baby'라는 단어가 상징하는 '주변적 의미'('아이 같은, 순수한, 깨끗한, 맑은' 등)로써 해석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즉, 'Baby V.O.X'란, '순수하고 깨끗한 목소리로 표현하다'는 의미로 보는게 맞는듯 하다.

2. 베이비복스의 시작 (1집 활동 및 차유미의 탈퇴)

이들은 1997년 7월 3일, 1집 EQUALIZEHER로 가요계에 출사표를 던졌다.
남자에게 (민주주의)

매장된 첫번째 타이틀 곡 《남자에게 (민주주의)》

1집 앨범의 첫번째 타이틀곡은 원상우 작곡의 <남자에게 (민주주의)>였다. 이 곡은 표면적으로 남성 중심 사회를 비판한다고 한 것 같기는 한데, 곡의 내용을 살펴보면 남성을 비판하는 내용보다는 여자 친구들끼리 수다 떠는 내용이 많다 . 소녀시대 I GOT A BOY의 원조? 다나&선데이의 나 좀 봐줘 아니면 조혜련의 아나까나 일수도 ' 민주주의'라는 부제도 정치적인 뜻이 아니라, 이름이 '민주'인 친구한테 남자친구를 뺏길 수 있으니 민주를 주의하라(…)는 뜻이다. 이 곡은 전달하는 메세지가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 없을 정도로 따로노는 가사, 난해한 장르와 더불어 무대에서 선보인 기괴한 스타일링(…)과 컨셉은 대중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했다. 결국 <남자에게 (민주주의)>는 SBS와 KBS에서 정시운의 랩 가사가 문제 되어 방송 금지 처분을 받게 되었으며 활동을 한 데는 쇼 뮤직탱크에서 선보인 게 전부였다. MBC와 KBS의 예능프로그램 엔딩무대로 활동을 한 적이 있으며 가사가 약간 수정되었던 것으로 보인다.[1] 거기다가 한국판 스파이스 걸스로 기획됐지만 당시 절대적인 인기를 얻고 있던 H.O.T.와 컨셉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일명 여성판 H.O.T.로 홍보하면서 이쪽팬들에게 욕을 먹었다. 악연은 이때부터

<남자에게 (민주주의)> 활동은 불가피하게 접고 8월부터 부랴부랴 <머리하는 날>을 타이틀 곡으로 변경해 새로운 프로모션을 시작했다. <남자에게 (민주주의)>보다는 대중적인 디스코 넘버의 곡이었기 때문에 어느정도 소소한 반응을 얻긴 했지만 큰 주목을 받기엔 무리였다. <머리하는 날>의 안무는 대략 4번 정도 바뀌었는데 베이비복스 항목에 서술한 대로 초창기 안무가 너무 격렬했던 나머지 리드보컬 차유미가 연습 도중 부상을 당해 활동 초창기 댄스 브레이크 부분에서 혼자 멀뚱히 서있어야 했으며 이 때문에 안무가 여러 번 수정되면서 차유미의 건강은 갈수록 악화됐고 열악한 활동 여건을 견뎌내지 못한 차유미는 결국 10월 초 아무 말도 없이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팀의 중심적인 보컬을 맡던 멤버가 사라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당시 소속사측은 차유미의 탈퇴를 발목 부상으로 인한 하차라고 보도했다.

3. 팀 개편 (정현전, 정시운의 탈퇴와 간미연, 심은진의 영입)

멤버 탈퇴라는 위기를 맞은 베이비복스는 당시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던 SBS <기쁜 우리 좋은 날>을 제외한 모든 스케줄을 취소하고 차유미를 대신할 멤버 찾기에 나섰다. 이 때 놀이공원에서 베이비복스 원년 멤버들이 ENG 촬영을 하고 있던 와중 개교기념일을 맞아 친구들과 놀러왔던 간미연(당시 고교 1학년)을 한 캐스팅 매니저가 픽업해 DR뮤직으로 연결 시켜줬는데 당시 베이비복스 매니저가 노래방에서 간미연을 오디션[2]한 결과, 고등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음정 박자가 꽤 정확했으며 노래 실력도 곧잘하는 편이었고, 거기다 눈에 띄는 외모까지 더해져 간미연을 베이비복스의 새멤버로 합류시켰다. 당시 노래방 오디션에서 불렀던 곡은 김현철 & 이소라의 <그대와의 블루>였다고.

머리하는 날
1997년 11월 23일, 간미연 합류 후 첫 방송 무대 《머리하는 날》

간미연이 합류되면서 베이비복스는 안무 동선을 전면수정하기 위해 한달 반 가량 하루에 8시간 씩 안무 연습을 하는 강행군을 했다. 그리고 이전에 보여줬던 보이쉬하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에서 보다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컨셉도 새롭게 재정비했다. 1집 녹음에 참여하지 않아 개인파트가 없었던 김이지는 부재한 차유미의 부분을 립싱크했고 새롭게 영입된 간미연과 이희진이 커플 댄스를 추면서 보다 외적인 부분을 어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의상 스타일도 크게 바뀌었는데 무려 스키복을 입고 무대에 등장한다.[3] 간미연이 영입된 베이비복스는 11월부터 활동을 재개했는데 이때 <머리하는 날>이 가요차트 50위권 안으로 데뷔하는 성과를 냈다. 그리고 새롭게 영입된 간미연이 팬들 사이에서 예쁘다라며 찬사를 받았다.물론 소수였지만.. 이 후 두달정도 활동을 이어갔지만 큰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1집 활동을 종료했다. <머리하는 날> 활동 이후 <비밀>이라는 곡으로 후속곡 활동을 했다는 얘기가 있지만 정확한 자료가 남아있지는 않다. 1집 활동이 끝나고 초창기 멤버 정현전, 정시운이 개인사정으로 탈퇴했고 그 해 말 심은진이 영입되었다.

참고로 이희진의 프로필에 올라왔던 1980년은 호적 상 생일이다. 이는 김이지도 마찬가지. 비슷한 경우로 핑클 이효리도 프로필 생일과 실제 생일이 다른 거로 알려졌다. 70년대 후반생까지만 해도 호적상 생일과 실제 생일이 차이 나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이희진은 실제생일이 1979년 5월 16일이기 때문에 1년 차이도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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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악방송 말고 예능 오프닝 무대는 몇 번 지상파에서도 선보였었다. [2] 지금에야 생소하지만 그 당시에는 노래방에서 오디션을 보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 같은 팀의 이희진도 그런 식이었고 핑클의 이효리도 역시 노래방 오디션을 봤다고 밝혔다. [3] 남자를 도도하게 차버리는 노래를 부르면서 "나랑 같이 데이트하러 가자 뿌잉뿌잉"스런 스키복을 입고 등장한 모양새부터 이미 1집 제작 단계의 기획은 처참히 버려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