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2-07 22:27:34

베이가르 귄나르손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30px-Veigar_Pall_Gunnarsson_2006_06_06.jpg
이름 베이가르 파우들 귄나르손
Veigar Páll Gunnarsson
생년월일 1980년 3월 21일 ([age(1980-03-21)]세)
신체조건 175cm
국적 아이슬란드
출신지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프로입단 1996년 스탸르난
소속팀 스탸르난 (1996~2000)
스트룀스고세 IF (2001)
KR 레이캬비크 (2002~2003)
스타베크 포트발 (2004~2008)
AS 낭시 (2009)
스타베크 포트발 (2009~2011)
볼레렝아 포트발 (2011~2012)
스타베크 포트발 (2012)
스탸르난 (2013~2017)
FH (2017)
비킹귀르 (2017 / 임대)
KFG 가르다바이르 (2018~2019)
국가대표 파일:아이슬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원정 로고.svg 34경기 6골 (2001~2011)
1. 개요2. 선수 시절 경력
2.1. 2011년 이적 스캔들
3. 국가대표 경력

[clearfix]

1. 개요

아이슬란드의 전 축구선수다.

아이슬란드 국가대표급 선수였지만, 정작 후술할 다른 사건 때문에 유명세를 탄 인물이다.

2. 선수 시절 경력

1996 시즌 아이슬란드 스탸르난에서 데뷔했으나 이 해에는 대체선수로 1경기만을 뛰었다. 1998년부터 제대로 출장하기 시작하여 주전으로 발돋움, 1999년 17경기에서 7골을 넣으며 팀을 1부 리그로 승격시키는 데 일조했다. 이때부터 해외에서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여 2001년 노르웨이의 스트룀스고세에 입단했으나 주전 자리를 얻지는 못한 채 1시즌만을 치른 후 다시 아이슬란드로 돌아온다.

2002년 KR 레이캬비크로 이적한 귄나르손은 17경기에서 포풍 7득점을 쏟아내며 팀을 우승으로 이끈다. 이듬해에도 7골을 기록하며 아이슬란드 프리미어 리그 2연패에 성공, 커리어 전성기를 구가함과 동시에 자국팬들에게도 높은 인기를 얻게 된다. 여세를 몰아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볼튼 원더러스 트라이얼에 참가했으나 선발되지는 못했다.

EPL행은 실패했으나 노르웨이의 스타베크 포트발에서 그를 영입했다. 그러나 많은 출전기회를 잡지는 못했고 스타베크는 2004년 2부 리그로 강등당했다. 귄나르손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2005 시즌부터였는데, 새로 부임한 얀 존슨 감독의 지도 아래 다니엘 난스코그와 막강 듀오를 형성하여 맹폭격을 퍼붓게 된다. 귄나르손의 도움에 힘입은 난스코그는 2006년 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팀은 다시 1부로 승격했다. 2007년에는 그야말로 포텐이 폭발해서 리그 어시스트 1위, 득점 4위를 기록하며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귄나르손 본인도 2005 시즌 리그 13골을 넣었고, 1부리그로 복귀해서도 18골, 15골, 12골로 3년 연속 두자릿수 득점을 올리며 스타베크의 주포로 올라섰다.

스타베크 1기, 5년간 120경기 60골을 몰아넣었으니 유럽 빅리그의 관심이 자연스레 따라왔다. 이 호성적을 바탕으로 2008-2009 시즌 프랑스의 AS 낭시로 이적했으나 여기서 폭망하며 5경기 출장에 그치고 다시 노르웨이로 돌아가게 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저 흔하디 흔한 해외 진출 실패 사례로 남는 것 같았는데...

2.1. 2011년 이적 스캔들

이 시기 잘못된 한 번의 이적이 귄나르손에겐 흑역사인 동시에 이로 인해 골치아픈 문제를 안게 된다.

2010년부터는 다시 스타베크에서 선수생활을 계속했지만 전성기만큼의 활약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그러던 와중에 2011 시즌 볼라렝아로 이적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있었다. 원래 스타벡은 귄나르손을 5백만 크로네(한화 약 9억 5천만 원)에 노르웨이 리그 명문팀 로센보르그 BK로 이적시킬 생각이었으나, 이를 거절당하자 1백만 크로네(한화 약 1억 9천만 원)의 이적료를 받고 볼레렝아 포트발로 인도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스타베크과 볼레렝아 두 구단이 서로 짜고 AS 낭시가 받아야 할 25만 유로 지분을 갈취했다는 혐의를 받았고, 낭시가 귄나르손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노르웨이 축구협회가 개입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두 구단이 벌금을 물었고, 노르웨이 경찰이 조사에 나서 이적 관련 당사자들이 기소당하는 일까지 벌어진 끝에야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이 사건으로 스타베크의 이미지는 크게 손상되었고 리그에서의 경쟁에 대한 공정성마저 의심받게 된다.

2012년에는 다시 스타베크으로 복귀했다. 2013년 아이슬란드 리그의 스탸르난 FC로 이적해 국내에 되돌아왔고, 4년간 주전으로 활약했다. 이후 2018년 아이슬란드 하부리그로 옮겨가 2년간 뛰며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3. 국가대표 경력

아이슬란드 국가대표에도 선발되어 통산 33경기에서 6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국대가 유럽에서 워낙 약체에 속하는지라 큰 주목을 받진 못했다. 당시 아이슬란드가 유럽 축구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전이기도 했고, 사실 해외에서는 커리어보다도 저 위의 이적사건으로 더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