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가 건조한 화물 수송용 범선은 성능이 상당했다. 1300년경에 만든 선박이 이미 100톤이 넘는 상품을 선적할 수 있었고 1400년 무렵에는 150톤 이상으로 늘어났다. 베네치아 범선의 우위는 1500년대에도 큰 변화 없이 이어졌다.
시기
길이
너비
깊이
수송량
1300년
40.5m
5.5m
2.5m
110t
1400년
41.0m
6.0m
2.5m
170t
1550년
48.0m
8.0m
3.0m
280t
무역을 하기 위해 개척한 경로도 선구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베네치아는 다른 지역에서 선박으로 수송한 상품을
키프로스로 운반하고 다시 그것을 본국을 거쳐서
플랑드르에 공급하는 항해 체계를 완성했다. 키프로스는 다른 지역에서 오는 상품이 거쳐가기 쉬운 위치에 있었지만 범선을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해 베네치아에 의존했고 당시 서유럽에서 가장 큰 상업 중심지 중 하나였던 플랑드르는 직접 상품을 가지고 지중해까지 오기에는 거리가 멀어서 역시 베네치아에 의존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상당한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베네치아는 동지중해에 여러 무역 거점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지역은 서유럽에서 가장 많은 설탕을 공급하고 있었던 키프로스였다. 키프로스는 1450년 무렵에 연간 800톤의 설탕을 생산했는데 베네치아는 무역을 독점해 상당한 이득을 보았다. 이 정도의 설탕은 당시 베네치아가 건조한 범선 몇 척이면 모두 실어나를 수 있는 분량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노력도 많이 들이지 않으면서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베네치아는 나중에 아예 키프로스를 정복했지만 1500년 무렵에는 설탕 생산이 연간 400톤으로 떨어진 데다가 다른 국가들도 설탕 무역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경쟁력을 잃게 되었고 결국 키프로스까지 빼앗기고 만다.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기 직전까지
후추를 비롯한 여러가지 인도산 향신료는 가까운 베네치아로 모였다. 당시 후추는 대항해시대의 대명사였던 만큼 그야말로 귀족들이 너도 나도 사려고 했던 물품이였다. 베네치아가 이런 황금알을 낳는 향신료 무역루트를 독점하기 위해 베네치아 공화국 해군을 증강시켜 타 세력이 이 루트를 넘보지 못하게 만들며 사실상 독점을 하였다.
이렇게 13세기에서 동로마 제국이 망하기 전 15세기까지 향신료 무역 독점으로 부와 위상이 높았지만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이 향신료 루트를 끊어버림에 따라 서유럽 상인들의 발길이 줄어들었고 뒤이어 포르투갈이
희망봉을 넘어
인도양 개척에 성공하며 자연스럽게 쇠락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