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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원(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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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문인초상일괄(한광회외15인)11.jpg
1. 개요2. 생애

1. 개요

박준원(朴準源, 1739~1807)은 조선후기의 문관이다. 반남 박씨이며 자는 평숙(平叔), 호는 금석(錦石)이다.

2. 생애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여 육경(六經)과 백가(百家)의 글에 두루 통달하였으며, 맏형 박윤원(朴胤源)과 함께 서로 학문을 강론하였다. 1786년( 정조 10) 사마시에 합격하고, 그 이듬해 박준원의 3녀가 정조의 후궁( 수빈 박씨)으로 뽑히자,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을 거쳐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공조좌랑·보은현감이 되었다.

1790년에 수빈이 원자(元子: 후일의 순조)를 낳자 박준원은 호산(護産)의 노고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호조참의에 임명되었고, 항상 대궐 안에 머물면서 원자를 보호하고 보도(輔導)하였다.

1800년에 순조가 즉위하자 수렴청정하던 정순왕후 김씨에 의하여 호조·형조·공조의 판서와 금위대장(禁衛大將) 등 삼영(三營)의 병권(兵權)을 8년 동안 잡았다. 경기도 여주시에 있는 신도비(神道碑)는 순조가 친히 지은 것이다. 영의정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헌(忠獻)이다.

저서로는 『금석집(錦石集)』 1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