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E61E2B><colcolor=#ffffff> 박일남 Park Ilnam | 朴一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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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박판용 |
출생 | 1939년[1] ([age(1939-01-01)]세) |
경상남도
동래군
기장면
송정리 (現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송정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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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울산 박씨(蔚山 朴氏) |
가족 | 배우자, 딸 3명 아들 1명[2] |
신체 | 175cm[3], 83kg, A형 |
소속 | 김앤리엔터테인먼트 |
학력 | 동국대학교 (졸업 / 58학번) |
종교 | 불교 |
병역 | 대한민국 해병대 병장 만기전역 (병 205기) |
데뷔 | 1963년 '갈대의 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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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원로 가수.2. 가수 활동
1963년에 '갈대의 순정'으로 데뷔하자마자 당시 30만장이라는 엄청난 앨범 판매량을 기록하며 국민가수 톱스타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성격 때문에 여러 차례 싸움에 휘말리며 세 번의 수감 생활과 6년간의 수배 생활을 하며 자연스럽게 가요계에서 멀어지게 되었고, 잦은 폭행 사건으로 건달 가수라는 불명예스러운 낙인까지 찍혔다. 한국연예협회 부이사장과 제11대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3. 특징
박일남의 가장 독보적인 특징이라면 대한민국 남자 육성 중에 가장 적은 베이스 성종을 가졌기 때문에 역시 저음이 최고의 장점이다. -1옥타브의 음을 보컬 프라이 없이 깨끗한 진성으로 다루는 그의 음역은 베이스 중에서도 매우 드물 정도로 낮다. 이 영상에서, 박일남의 동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22초쯤에서 -1옥타브 라♯(A♯1)을 진성으로 내며, 이 영상에서도 46초쯤에서 -1옥타브 라♯(A♯1)을 진성으로 낸다.4. 논란 및 사건사고
4.1. 폭행 사건
1974년 3월 25일, 배우 하명중을 구타하여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제명된 적이 있다.4.2. 두 번의 사기 사건
1984년에는 가수협회장으로 서울특별시 구로구에 가수아파트를 짓는다고 하였으나, 시공도 하지 않아 사기죄로 피소되었다. 아파트를 짓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가수들을 모아 구로구 주민 위문 공연을 하였다. 가수 공연을 본 선량한 시민들이 사기에 많이 속아 돈을 갈취당하였다. 1988년에도 연예인 아파트 설립을 추진한다고 사기행각을 벌였다.5. 여담
- 병역 또한 해병대를 다녀왔고, 여러 사건사고에 많이 휘말리다 보니 싸움꾼 이미지가 굳어졌으며, 스스로도 '나는 젊을 적에 복싱, 태권도, 레슬링 등 운동을 배웠기 때문에 한때 나에게 1대1로 붙으면 상대가 안 됐다'라고 말할 정도로 싸움에 능했다. 파티에 참석을 제안받았으나 박일남이 거절하자 건장한 사람 두 명이 강제로 죄수 호송하듯 박일남의 양팔을 꽉 끌어안고 차에 태워서 데려간 일이 있었는데, 차에 탄 뒤 전말을 알게 된 박일남은 그 상태에서 '다 부숴버렸다'고 한다.
- 박일남과 남진은 해병대 실무에서 같이 군생활을 함께 한 선/후임 관계로 알려졌다. 특히 박일남은 해병대 군 생활 당시 본인보다 한 기수 높은 선임이었던 남진에게 몇 번 맞았다고 말했다. 박일남은 "허리를 잘못 맞아서 지금도 비만 오면 시큰시큰하다."라고 말해 남진을 웃음 짓게 만들었다. 단, 박일남은 1939년 생이고 남진은 1945년 생이므로 나이 자체는 박일남이 더 많고 데뷔도 박일남이 남진보다 2년 빨라서[4] 지금은 남진이 박일남을 '형님'이라고 부른다.
- 연예계 대선배인 송해와도 알려진 이야기가 있는데, 박일남이 직전 예능 프로그램인 도전천곡에 출연했을 때 직접 한 말인데, 박일남이 이미 연예계의 건달로 유명할 때 송해가 이 사건을 접한 후 건방지다며 박일남의 뺨을 후려쳤다고 한다. 그 사람 좋은 송해조차도 직접적으로 손찌검을 했을 정도면 박일남의 인격이 얼마나 개차반이었을지 짐작이 갈 것이다.
- 20대 대선을 앞두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지지를 공개 표명했다.
- 2023년 근황이 공개됐는데, 농가에 일손을 보태는 등 하면서 떠돌이 생활을 하는 중이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