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박영한 朴榮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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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47년 9월 14일 |
미군정 조선 경상남도 합천군 | |
사망 | 2006년 8월 23일 (향년 59세) |
대한민국 경기도 고양시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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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소설가 |
학력 |
부산고등학교 연세대학교국문학과 |
등단 | 1977년 머나먼 쏭바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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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소설가.2. 생애
경상남도 합천군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가세가 기울어 부산으로 이주해서 성장했다. 어머니의 질병과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사글셋방을 전전하며 불우한 소년 시절을 보냈다. 부산고등학교 졸업 후 3년간 가정교사, 막노동, 거리의 악사 등의 부랑생활을 보냈고 자살시도도 했다.1970년에 연세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한 후 곧바로 휴학, 군에 입대한 후 파월을 자원하였다. 제9보병사단 보도병으로 복무하면서 글 쓸 기회를 가졌다. 귀국한 후 1973년 복학하였다.
1977년 세계의 문학에 자신의 베트남전쟁 체험을 담은 중편소설 머나먼 쏭바강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이듬해 1978년 제2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경기도 일대를 전전하며 속편인 인간의 새벽과 자전적 장편소설 노천에서를 출간하였으며, 그 뒤 서울을 떠나 남양주군 덕소, 김포 고촌, 안산 등 경기도 일대와 부산 변두리 등지를 전전하는 삶을 살았다. 이 시절에 체험한 생활을 바탕으로 왕룽일가와 우묵배미의 사랑을 잇달아 출간했다. 초기의 장편에서는 전쟁과 집단 횡포의 문제를 인간 삶의 문제와 더불어 진지하게 탐구하였으며, 왕룽일가 이후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현실의 주변과 일상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형상화하려는 데 관심을 보인다.
이후 장편 장강과 중편 카르마를 출간했다. 사이버 소설 창작캠프를 운영하였으며 추계예술대학교 겸임교수를 지냈다. 동의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중 위암으로 2006년 세상을 떠났다.[1] 사망하기 전에 남긴 유언은 "문학이 암보다 고통스럽다." 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3. 작품
- 머나먼 쏭바강 (1977) - 등단작, 오늘의 작가상 수상
- 인간의 새벽 (1980)
- 노천에서 (1981)
- 왕룽일가 (1988)
- 지옥에서 보낸 한철 (1988) - 동인문학상 수상
- 지상에서 방 한 칸 (1988) - 연암문학상 수상
- 우묵배미의 사랑 (1989)
- 장강 (1996)
- 카르마 (2002)
4. 여담
- 생전 술과 담배를 즐겼다. 통음과 하루에 2갑씩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 데뷔 초창기부터 1989년까지 떠돌이 생활을 했다. 주로 김포, 안산등 수도권 주변에서 옮겨가며 생활했다. 1989년 북한산 기슭에 자신만의 작업실을 만들었다.
[1]
2002년부터 판정받고 수술로 호전되었으나 재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