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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7-10 12:00:43

박명빈



1. 개요2. 생애3. 참고문헌

1. 개요

북한의 정치인, 의료인.

2. 생애

1932년 3월 25일에 평양시 순안구역 순안읍에서 농민의 아들로 출생했다. 1948년 순안초급중학교를 졸업했으며, 1951년 평안남도 보건간부양성소로 진학, 1955년에 평양의과대학을 졸업한후 평안남도 인민병원 비뇨기과 의사로 배치되었다. 그러던 중 1959년부터 김일성은 신장염으로 인해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었는데, 처음에는 중국 한의사들을 초빙해서 치료를 받았으나 전혀 차도가 없었다. 결국 소련에 도움을 요청해서 소련 의사들이 파견되어 치료를 지휘하였는데 다만 수술은 북한 의사가 집도하게 하였으니 그게 바로 박명빈이었다. 1985년 김정일과 소련 대사의 대화에 따르면 무려 1년 6개월간 준비한 끝에 김일성의 신장결석 수술을 매우 성공적으로 집도했고 수술의 성공을 위해 소련 외과의사들의 조언을 받는 한편 미리 160명의 신장결석 환자들을 수술해보았다고 한다. 김일성의 수술을 성공적으로 집도한 공으로 1962년 로력영웅 칭호를 받았으며 1965년 박사학위를 취득, 이후 1968년 김일성고급당학교를 졸업하였다.

1974년 6월, 리락빈의 뒤를 이어 정무원 보건부장에 임명되었다. 1977년, 6기 최고인민회의에서도 유임되었으며 대의원에 당선되었다.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되었으며 1982년 4월, 김일성 칠순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1982년 4월, 7기 최고인민회의에서도 보건부장에 유임되었으며 1983년 원사, 1986년 인민의사 칭호를 받았다. 그리고 자신이 수술에 집중하고 싶다면서 보건부장 면직 신청을 3차례나 냈고 결국 정치국에서 이를 수락하면서 1985년 11월 19일 정치국-중앙인민위원회 연합회의에서 마침내 보건부장에서 해임, 리종률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보건부장 퇴임 후, 조선적십자종합병원 비뇨기전문병원 원장으로 재직하였다. 하지만 중앙위원회 후보위원 직함은 계속 유지하였다. 1984년 11월, 김만금 장의위원을 지냈고 1990년 5월, 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1990년 10월 31일 19시 50분에 58세를 일기로 오랜 병환으로 사망했다. 당중앙위원회, 정무원은 공동명의로 부고를 발표, "동지는 다년간 보건부문의 중요한 초소에서 우리 나라에 세워진 우월한 사회주의보건제도를 공고히 하며 인민들의 건강을 보호증진시키기 위하여 정력적으로 사엽하였다."라고 짤막하게 칭송했다.

이후 시신은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 김정은 시대 들어서 북한의 의료기술을 끌어올린 공을 세웠다고 소개편집물이 제작되었다. 2023년 7월 8일자 로동신문에 박명빈의 후손들의 근황을 전하는 기사가 소개되었는데, 3녀 박경희는 현재 조선적십자종합병원 류마치스연구실 의사로 일하고 있으며, 박사, 부교수, 공훈의사 칭호를 받았다. 그외에 네명의 형제자매들도 모두 평양의학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로 사업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박경희의 자녀들을 비롯한 박명빈의 손자손녀들도 의대를 다니고 있다.

3.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