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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0 20:54:01

박광선(1914)



1. 개요2. 생애3. 루머4. 참고문헌

1. 개요

항일 빨치산 출신의 북한 정치인, 외교관.

2. 생애

1914년 1월 28일 빈농집안에서 태어났다. 북한에서 딱히 고향을 언급하지 않는 점, 1930년 중국 료하현 동명사립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을 봐서는 간도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31년부터 중국 각지에서 공청사업을 하였으며 1934년 12월, 빨치산 중대정치지도원 및 청년사업 부관으로 근무했다. 1935년 6월, 소련으로 유학을 갔으며 1939년에 귀국하여 다시 빨치산 활동을 전개했다.

해방 이후 귀국, 1950년 전선사령부 부장에 임명되었으며 1951년 8월, 사회안전성 고급군관학교 교장에 임명되었다. 1953년 1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부국장에 임명, 이후 국장과 비서장을 거쳐 1957년 5월, 홍동철의 뒤를 이어 주 몽골 북한 대사에 임명되었다. 1958년 10월, 한일무에게 이임하고 귀국 후 1958년 11월, 외무성 제1부상에 임명되었다. 다시 민족보위성 부상 겸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총장으로 이동하여 다시 군 업무를 보았으며 1962년 10월, 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1964년 11월, 군사대표단장으로 인도네시아를 다녀왔다.

하지만 뭔가 잘못했는지 1965년에 구분대장, 다시 체신성 부상으로 강등되었고 1967년 10월, 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및 수매량정상에 임명되었으나 1969년 2월에 해임되고 실종되었다.

한참 있다가 1989년 9월 21일에 사망하였으며 시신은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

3. 루머

검증되지 않은 루머라는 것을 전제하고 이야기하자면, 박광선이 박정희의 형인 1910년생 박한희라는 설이 있다. 1989년 월간지 세계여성에서 이 설을 주장한 자는 빨치산 외팔이 부대장 최태환인데, 이 사람의 주장에 따르면 박광선은 경북 선산 구미가 고향이며, 월북 후 이름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한희(박한생이라고도 한다)에 대해 조갑제를 비롯한 이들이 조사한 바 있는데 언급한 자료도 없고, 박씨 일가도 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고 조갑제가 본인의 책에 적었다. 생김새가 박정희와 닮았다는 주장도 있는데, 박정희와 그 형제들이 서로 닮기는 했지만 일가친척이 아니어도 닮은 이들은 충분히 많다.

그러나 이 설을 처음 제시한 것은 1963년도 당시 박정희의 대선 맞상대였던 윤보선인데, 윤보선은 박정희의 남로당 경력, 박상희 등을 가지고 박정희에게 지금 기준으로 봐도 심한 빨갱이 몰이를 했다. 더군다나 박한희가 공산주의 운동에 가담했다면 당연히 형인 박상희의 영향을 받았을 터인데, 박상희는 죽을 때까지 국내에서 좌익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했고 해외로 나간 적이 없다. 박상희가 1931년 신간회 활동을 할 때 박한희가 중국으로 갔다가 동아일보 구미지국에서 일하던 1935년 소련 타슈켄트로 유학을 갔다는 것은 어떻게 끼워맞춰도 박상희가 도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윤보선과 최태환이 가지고 있었던 근거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근거가 박광선이 박한희라고 인정할 만큼 결정적이라 보기도 어려울 것이다.

4. 참고문헌